본서는 일본어를 중심으로 한 어휘의미론 연구로 언어 표현과 형태, 통사, 의미 등과의 상관관계를 유기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예전에 본 연구자가 자발문, 중간문을 대상으로 한 어휘의미론 관련 저서를 출간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사역문을 주제로 세 번째의 저서를 출간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사역문을 연구 주제로 하게 된 것은 사역문이 자발문, 중간문과 마찬가지로 형태와 의미(통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특정 사역문을 형태, 통사, 의미라는 별개의 독립된 영역에서 별도로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을 유기적으로 고찰하려는 어휘의미론적 연구 방법을 채택하면 복잡한 구조를 지닌 사역문의 해명이 가일층 용이해진다. 이는 본 연구자가 일찍이 자발문, 중간문을 고찰한 데에서 얻은 지견을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자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본서에서는 사역문을 어휘의미론적 연구 방식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자동사(비대격 자동사, 비능격 자동사), 타동사, 재귀 동사, 수동(직접 수동, 간접 수동), 사역(직접 사역, 간접 사역), 주어, 목적어(직접 목적어, 간접 목적어), 사역주, 피사역주, 형태소, 부사(부사절, 시간 부사, 장소 부사), 행위자, 피행위자, 피영향성, 완결성, 시제, 상, 의미 해석 등의 개념을 시야에 넣어 사역문을 분석하였다. 이들 다양한 개념을 사용하여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의 사역문에서 나타나는 언어 현상(이의적 해석이 발생하는 현상)이 모든 인간 언어에 보편적일 것이라는 가설 하에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와 같이 본서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매우 광범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가지 주제로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그것은 문법 연구에서 최대의 난제로 알려진 형태와 의미의 불일치이다. 즉 형태와 의미가 어떻게 일치하지 않으며, 왜 일치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법 연구에서 특정 표현에 대한 설명의 용이함을 위해 형태와 의미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는데(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형태와 의미가 일치하는 것만 보는데), 이것은 언어 연구자가 형태와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사실을 의도적으로(비의도적으로) 무시(혹은 간과)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 연구자는 생각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여러 언어에서 사역문이 술어인 사역 동사의 성립에 관여하는 접미사(혹은 기저 동사)의 형태와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본서는 모두 2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먼저 사역문에서 발생하는 이의적 해석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의 언어에서 관찰되는 것임을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 현상이 발생하는 이면에 ‘의미수동화조작’이라는 의미 통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이러한 의미수동화조작이 일견 형태와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즉 이의적 언어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원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의미수동화조작이 기존의 선행 연구에서 드러난 다양한 문제점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를 할 것이다.
제2부에서는 의미수동화조작의 존재를 뇌에서 찾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최근의 뇌신경언어학에서는 연산처리와 연상기억을 이용한 처리에서 그 뇌내 기반이 다르다는 단어형성이중메커니즘 가설이란 것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가설을 사역문을 예로 들면 사역 동사는 연산처리에 의해서, 기저 동사는 연상기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가설이다. 본 연구자가 일관되게 그 존재를 주장하는 의미수동화조작은 단어형성이중메커니즘 가설과 부분적으로 대치된다. 왜냐하면 연산처리를 받는 사역 동사와 받지 않는 사역 동사에 대해서는 의미수동화조작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지만, 단어형성이중메커니즘 가설로는 설명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2부에서는 실어증 환자를 대상으로 의미수동화조작의 존재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몇 가지 실험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부와 제2부의 내용들은 제7장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필자가 국내외의 일본어학 관계 학술지(박사학위 논문도 포함)에 발표한 것이다(제2장은 본 연구의 이론적 배경에 대한 예비지식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위하여 다른 문헌에서 논의된 내용을 해당 연구자의 동의를 얻어 인용한 것이다.) 제4장과 제5장은 기존에 발표한 내용에 다른 내용을 대폭 가필한 것이며, 제6장과 제9장은 기존의 학술지에 발표한 내용을 수정 가필하였으나 전체의 내용은 기존의 학술지에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 저서를 집필하기까지 본 연구자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두 분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구로다 시게유키교수님(본 연구자가 유학하고 있을 당시 미국 샌디에고 대학교수로 재직하시다가 일본 도호쿠대학에 3년간 파견교수로 계셨다. 그때 본 연구자는 구로다 교수님에게 3년간 수학하였다.)과 히라노 히데유키(일본어과 언어학전공) 교수님이시다.
구로다 시게유키 교수님은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사역문과 관계사 연구의 대가이시다. 일본어라는 언어의 개별적 특성뿐만 아니라 일본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에 존재하는 보편적 특성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분의 평소 지론은 언어 간의 차이점만큼이나 공통점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히라노 히데유키 교수님(이미 세상을 하직하신 분이시기에 이 저서를 직접 건네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애석하다.)은 본 연구자가 유학하는 동안 자상하고 엄격한 모습으로 본 연구자를 지도해 주신 분이다. 박사학위논문(제4장)을 제출하고 10년이 지나기 전에는 절대 저서를 발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본 연구자가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한 지가 올해로 13년째이므로 약속은 나름대로 지켰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많이 보강하여 재고에 재고를 거듭하여 보다 더 나은 내용으로 저서를 세상에 내놓으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겠지만, 본 저서의 내용과 수준이 두 분의 교수님에게 커다란 누가 되지 않았는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무척 염려가 된다. 미미하지만 본서가 언어학 연구에 조금이나마 일조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