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은 숭고한 민족애의 표상 같기도 하고 사상적 이견자와 정적을 멸절시키는 잔인한 단두대 같기도 하다. 주체사상에는 자기가 믿고 따르는 사상에 대한 순결한 헌신과 봉사가 있는 반면 그것을 뒤흔드는 현실을 무시하는 무서울 정도의 완악성과 자기기만이 섞여 있으며, 힘겨운 국제역학 관계 속에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미망과 안일의 도피처일 수 있다. …… 궁극적으로는 김정일식 수령론 중심의 주체사상은 남한 사회가 성취할 성숙한 민주주의 앞에서 그 마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남한 사회가 계급분열과 적대로 끊임없는 파시스트적 폭력으로 얼룩져 경화된다면 ‘주체북한’의 모습은 더욱 확신 있게 경색될 것이다. 한국 기독교회는 김정일식 ‘주체북한’은 조금만 더 가혹하게 체제 경쟁으로 밀어붙이면 무너질 것이라는 흡수통합론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남한 사회의 성숙한 민주주의화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 --- pp.58~59
독일 통일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를 잊지 않고 방문한다. …… 1989년 여름까지는 100명 정도가 모이는 소규모 집회였으나, 가을에 젊은이들이 동유럽을 통해 탈출하는 사건이 진행되면서 참석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곳에서 9월 11일, 목사, 재야 민주 운동가들이 모여 ‘새로운 논단’이라는 운동단체를 조직했다. 10월 2일에는 2만 명, 9월에는 7만 명, 16일에는 20만 명, 23일에는 36만 명, 30일에는 57만 명이 모였다. 라이프치히 인구는 당시 55만 명이었다. 이 반정부 시위는 드레스덴을 포함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11월 4일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100만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여기서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자유 언론,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이 모든 과정이 비폭력과 무혈로 이루어졌다. ……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는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변혁의 과정에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통일 독일의 역사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 pp.80~81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도적 위치가 상실된 이후 따라온 정신적·영적 공황 상태에서 나타난 좌절감과 당혹감은 사회적 불안을 격증시켰고, 다층적 체제전환의 혼돈 속에서 정치 및 사회 기관이 보여준 갈등과 무능의 모습은 체제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교회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안정의 상징으로, 또한 흔들리는 도덕과 가족의 가치를 지키는 마지막 요새로 인식되었다. 동시에 개혁이 몰고 온 사회·경제적 고통은 다수의 러시아인이 시민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가부장적 사회 및 강력한 국가의 회복을 갈망하도록 만들었다. --- p.167
오늘날 헝가리에서는 모든 교회가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정치와의 관계이다. 가톨릭, 루터교단, 개혁교단이 종종 사회당이나 다른 당들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교회는 교인들이 정당과 동일시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오늘날의 헝가리에서 교회의 위치를 생각하며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 현재 헝가리 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안적 시민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치 닫힌 체제처럼 정치는 정치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의사소통과 만남이 없는 상황이다. 니클라스 루만의 표현대로 하면 자기회귀적인 체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즉, 서로 만남은 있지만 상호 영향이 없는 그러한 상태이다. 의회는 의회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서로 간에 소통의 의지가 없다. --- pp.236~237
한국 교회는 현재 내적으로 매우 분열되어, 외부로부터 저평가받고 있다. 위에서 검토한 일부 나라들과는 달리 기독교는 한국적 상황에서 전통 종교라 할 수 없으므로 민족 또는 국가 전체를 통합하는 기능이 약하다. 따라서 급변기에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신뢰받는 집단으로서의 이미지’를 시급히 확보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이로부터 거리가 멀다. …… 한국 교회는 통일의 방식에서 기독교적 원칙과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분단 상황을 기독교적으로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하여 통일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적어도 통일이라는 쟁점 앞에서는 초교단·초교파적으로 뭉칠 수 있도록 하는 조직적 정비가 필요하다. 또한 유사시 북한에 투입할 수 있는 인적·재정적 자원을 한국 교회가 축적해야 한다.
---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