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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잔

소주 한 잔

: 원재훈 푸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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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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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4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66g | 188*254*20mm
ISBN13 9788996864332
ISBN10 899686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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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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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그것은 움직이는 구름 같은 것이다. 오고 있다. 내가 걸어서 가지 않아도 온다. 나는 여기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으면 된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돈 벌고 애 키우다 보면, 그것은 몇 년 만에 만나 호들갑을 떨며 삼겹살을 사주는 다감한 선배처럼 온다. 지나온 삶이 밥상처럼 잘 차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소박할수록 좋다. 정 많고 따뜻한 추억들로 채워지기만 했다면.
우리 옛사람들은 장례의식을 축제처럼 치르지 않았던가. 때가 되면 누구나, 태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저마다의 운명대로 죽음의 길을 떠난다. 그런 거다. 죽음이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지상의 마지막 선물이다. 죽음을 기억하라. 매일매일 죽는다는 것을 상기하라.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중세 수도승들의 이 염불소리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자. ---「소주 한 잔」에서

내가 그때 먹은 싸리버섯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할머니 때문이다. 싸리버섯이 깊은 산속에서 자생하는 것처럼,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내 가슴속 깊은 어딘가에서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모습과 집, 그리고 그 모든 분위기가 뱀이 알을 삼킨 것처럼 내 기억 속에서 싸리버섯을 꿀꺽 삼킨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싸리버섯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내 가슴이 조금 넓어진 것이다. 이제는 그 할머니와 싸리버섯을 나란히 가슴속에 담아둘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이십 년,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할머니는 산속에 있는 나무나 뱀처럼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싸리버섯」에서

양은냄비 뚜껑을 열고 금방 한 밥을 한 숟가락 그득 푼다. 그 위에 굴비 한 조각을 얹는다. 꼭꼭 씹어 먹을 겨를이 없다. 연속동작으로 마치 걸신들린 거지새끼처럼 입천장이 데는 줄도 모르고 밥을 ‘빡빡’ 긁어 먹고 나면 갈증이 난다. 배가 고파 급히 먹으면 이상하게 그렇다. 벌컥벌컥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킨다. 그리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청자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성냥을 켜댄다. 연기는 가능한 한 길게 마시고 길게 내뿜는다. 행복하다. 비록 조금 전에는 거지였지만, 배가 부르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왕자가 된 기분이다. 스르르 잠이 온다. 아, 행복해. ---「쌀밥」에서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 하나를 들어올리기는 것이 만만한 게 아니다. 그 밥을 위해 일을 하고, 치욕을 참고, 자신의 꿈도 포기한다. 친구는 그것은 바로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다 내 머릿속에는 그가 무심히 웃으면서 던진 말이 돌멩이처럼 날아왔다. 그날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내 삶의 숟가락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숟가락 무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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