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감동을 주어 변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그 감동은 솔직함을 바탕으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상적 언어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전달이 될 수 있을까?’ ‘문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말 문학적 재능은 유전자로 인하여 생리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노력으로 문학적 재능을 얻을 수는 없을까?’ ‘문학적 소양과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문학적 능력은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을까?’ 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떤 모습 어떤 빛깔일까? 나의 문학적 현주소는 어디일까? 항상 궁금하면서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쓰지 않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졸작이라도 써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포함하여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움 그리고 재생에 대한 의지 또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보장해주는 일련의 행위이다. 나 역시 이 범주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시는 늘 촉촉한 물기가 있기를 바라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이미지가 읽는 이 서로에게 스며들도록, 자주 들려도 늘 정겨운 길처럼, 채워져 있는 욕심도 떠나보내도록, 낯익은 말투지만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것처럼, 바리바리 고향의 정을 느끼도록, 시선이 닿는 곳마다 물을 닮은 사람처럼 심심하게, 햇살 접고 잠시 휴식하는 편안한 길이 있는 그러한 시 세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
신병은 시인에 의한다면 내 시가 추구하는 시적 의도는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생활 주변의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본질은 결국 바다로 가는 길이며, 그 바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며, 화해와 용서 그리고 포용 혹은 풀림의 공간으로서 때론 삶의 시작이자 끝이 될 수 있고, 추억의 공간이자 현실적 공간이면서 재생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학부 때 시 밥을 함께 먹은 선배인 김광원 시인은 나를 보고 꼭 ‘초록섬’ 같다고 한다. 겨우내 얼룩진 상처를 기우며 동지나 해 싱싱한 전설을 꿈꾸더니 늘 일상을 비우며 하얀 깨꽃이 피어나는 바다 한가운데 와서 키가 큰 해초와 더불어 귀를 씻는 그리하여 초록섬 달맞이꽃 같은 삶을 살면서 일상 속에 얽혀 있는 매듭들을 은밀하게 풀어내어 그리움을 통해 재생의 의지로 승화시키는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특정한 시 세계를 정해 놓고 그 한계에서만 작품을 쓰진 않는다. 그때마다 아프거나 절실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주로 산문시로 형상화한다. 일반적으로 연과 행이 구분되는 시는 각 연과 행마다 리듬과 이미지 그리고 메시지 전달의 중요성을 강조하나 산문시의 특징은 리듬이나 이미지 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와 메시지 전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쓴다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창작이란 갇혀 있는 나로부터의 해방과 그 해방에 대한 무한대의 확장과 심화에 이르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다. 과거나 현재에 얽매이지 않고 지극히 가벼우면서도 작은 것 일지라도 소중히 여기고, 놀래킴으로 경련이나 발작을 일으킬 만큼 기발하고 낯선 그러한 시를 쓰고 싶은데 그게 너무 어려워 절망하곤 한다.
시인은 거짓말로 참말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거짓말이란 시 쓰는 기교로써 사상이나 사물, 사건 등을 거꾸로 보고, 반대로 보고, 뒤집어 보고, 비틀어 보고, 삐딱하게 보는 등의 예술적 기교를 말한다. 그래서 시상을 잡을 때 일반 시인들처럼 역발상을 하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예술적 기교 즉, 낯설게 하기, 독특한 제목 붙이기, 첫 줄과 제목은 좀 다르게, 시에서 내가 먼저 웃거나 울어버리는 마음을 먼저 보이고 싶지 않다. 즉, 모습 뒤로 숨기려 한다. 그러나 어렵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내 시는 삶의 변두리에 있는 구질구질하고 허술한 풍경을, 버려진 것들에서 삶의 진실을 읽어내고자 하며, 유년의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척도가 되고, 헐거운 현실을 애정으로 그리고 묶여 있는 삶의 편견들을 용서와 화해가 담긴 포용성으로 풀어 그 풍경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읽어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의미가 깊어지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삶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절실한 삶의 이야기가 물씬 풍기는 시, 소외된 버려진 것들에 대한 시, 비바람 치는 날 유리 창문에 악착같이 붙어 있는 낙엽 같은 시,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물론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한 구절의 시가 입안에서 맴돌기를 희망하면서…….
--- 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