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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어도

날개가 없어도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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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2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52g | 118*188*30mm
ISBN13 9791189571016
ISBN10 11895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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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람에 풀럭대던 깃발이 멈췄다. 사라는 출발선에 섰다. 옆에는 후배 미키가 나란히 서있다. 미키와의 2백 미터 기록에서 패한 적은 없다. 그녀와 경쟁할 때면 늘 좋은 기록이 나온다.
‘On your marks.’ --- 첫 문장 중에서

올림픽. 그 단어만 들어도 사라는 가슴이 뛰었다. 아니, 사라뿐만 아니라 모든 육상선수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순위도 출신도 나라도 종교도 관계없이 자신의 육체만으로 전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인 인간이 되어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것. 그 영광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쾌락인지는 세계 정상에 가까이 가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 p.13~14

차는 그 움직임을 뒤쫓듯이 사라에게 접근했다. 닥쳐오는 위협에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마치 슬로 모션을 보는 듯했다. 자동차 보닛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찌그러지는 차체.
동시에 가로등도 맥없이 꺾여 사라 쪽으로 쓰러진다.
흉포한 파괴음에 청각이 마비된다.
몸이 담장과 가로등 사이에 낀다.
허리 아래로 맹렬한 충격을 받아 사라의 의식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 p.19~20

너는 네 육체를 단련할 자격을 잃었다.
너는 보통의, 아니 그 이하의 인간으로 전락했다. 맛좋은 음식과 맞바꿔 정점에 설 권리를 포기했다.
서서히 눈물샘이 또 헐거워졌다. --- p.53

지금의 나는 다이스케를 증오하고 있다. 그에 대한 증오로 간신히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증오해야 할 상대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건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성난 파도처럼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사라는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 p.64

희망은 있다.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로부터 한동안 사라는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달리는 모습을 넋을 잃고 봤다.
어느덧 그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포개어 본다.
저 다리만 있으면.
저 의족만 있으면 다시 바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98

사라는 마지막 엔진을 점화했다.
왼쪽 다리가 인공물이라는 의식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숨을 멈추고 전력으로 질주한다.
방금 전까지 만끽했던 자유가 갑자기 멀어진다.
신체의 무게를 실감한다. 두 넓적다리의 피로를 감지한다. 이상대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골인.
사라는 속도를 늦추고 양팔을 벌렸다. 순간 온몸에서 열이 뿜어져 나왔다. --- p.262

경기 중에 달려 보니 데이비드의 의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섬유강화 플라스틱인데도 불구하고 생체와 융합해 그 자체가 생명과 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뇌에서 전달되는 명령에 따라 착실히 땅을 차고 사라의 몸을 가뿐히 도약시킨다. 발뒤꿈치에 날개가 돋았다는 느낌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의족만 착용하고 있으면 한없이 멀리, 그리고 한없이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 p.301

믿는 것은 두뇌가 아닌 반사 신경.
의지할 것은 사고가 아닌 본능.
난 다키가와 사나에다.
들판에 풀어놓은 한 마리 육식동물이다.
탕!
신호와 동시에 의족이 블록을 찬다. --- p.304

어울리지 않게 신에게 빌고 싶어졌다.
왼쪽 다리를 잃었을 때 신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왜 하필 내가.
왜 하필 다리를.
하지만 이제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하지 않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편이 되어 주길.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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