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정신분석포럼(SFP)과 위고가 함께하는 SFP-위고는 프로이트-라깡주의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국내외 정신분석학 저술을 출판합니다.
우리에게는 프로이트 읽기의 역사가 없다
프로이트에 대한 철학사적·사상사적 편식을 넘어,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을 관통하는 사유의 패러다임을 포착한다
무의식, 억압, 성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환상, 나르시시즘, 죽음 충동…….
프로이트가 제시한 모든 정신분석 개념들은 완결된 개념이 아니라 그의 사유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의 구성 요소들이다. 따라서 프로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들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저술을 구성하는 다양한 패러다임들, 그리고 그 패러다임 속 개념들의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사유에 존재하는 ‘도약’과 ‘단절’의 지점에 주목하면서 프로이트를 네 개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한다. 『프로이트 패러다임』은 프로이트의 저술 속에 들어 있는 패러다임들을 프로이트의 분석 경험 속에서 이해하며, 이를 통해 프로이트에 관한 새로운 독법을 선사한다.
왜 프로이트를 읽어야 하는가
올해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디딘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프로이트의 첫 저작인『히스테리 연구』(1895)의 출간은 인간이 미지의 영역인 무의식에 첫발을 디딘 하나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프로이트는 무엇인가
저자는 프로이트의 혁명은 단순히 인간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개념적으로 알게 해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지 못한 우리 자신의 목소리, 즉 무의식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아는 것과 존재하는 바가 통합되어 우리의 소외된 삶이 근원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다. 저자는 지식의 양적인 측면에서 우리 시대는 프로이트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삶이란 측면에서 결코 프로이트보다 더 진보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그러한 소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프로이트의 언어, 정신분석의 언어를 익히는 것은 인간이 자신에 대해 성찰해온 역사의 최정점을 경험하는 것인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자신을 시험하는 기회, 우리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정신분석의 언어가 필요한 이유이다.
프로이트 읽기의 어려움
프로이트에 대한 책도 많고 강의도 많다. 하지만 정작 프로이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다. 프로이트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막상 프로이트를 읽으면 프로이트가 안 읽힌다. 프로이트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막상 프로이트를 펼쳐보면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른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프로이트가 왠지 계속 말을 바꾸는 것 같고 일관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프로이트 패러다임』은 “우리에게는 프로이트 읽기의 역사가 없다”는 조금은 도발적인 전제에서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프로이트를 읽고 싶어 하고 실제로 읽기를 시도하지만, 우리는 미로와 같은 그 땅에서 거듭 길을 잃고 마침내 탐험을 포기하고 만다. 프로이트는 왜 읽히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프로이트의 예각을 포기하고 뭉툭한 부분에 대해서만, 또는 뭉툭하게 만들어서만 읽는가 저자는 우리가 프로이트의 개념에 현혹되어 정작 중요한 그의 사유의 흐름은 놓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글은 군더더기도 없고 평이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 잘 읽히지만 반면 문장의 관계라든가 단어의 연결이 굉장히 긴밀해서 연결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면 문장 위를 쭉 미끄러져 나가고 만다고 지적한다. 읽었지만 읽은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불연속적인 프로이트 사유의 핵심에 다가가는 방법
저자는 프로이트는 개념이 아니라 현상에서 출발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가설에서 출발해서 개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현상에서 출발해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만들고 그 개념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가설을 제시했다. 개념 이전에 개념이 요청되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환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관점에서 어떤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그러한 한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관점을 전환하면서 새로운 개념들을 고안해냈다. 한마디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사유는 불연속적이며 끊기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같은 용어라고 해도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에서 사용되는 기능, 의미가 다르다. 때문에 프로이트를 제대로 읽으려면 사유의 분절점들을 알고, 맥락 안에서 사유의 흐름을 따라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개념에 현혹되는 순간 아주 빈약하고 단순한 프로이트만이 남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연속적인 프로이트 사유의 핵심에 다가가는 방법으로 네 가지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패러다임으로서의 프로이트
패러다임이란 인식이나 생각이 만들어질 수 있는 틀이다. 그 틀 덕분에 어떤 특정한 생각이나 개념을 가질 수 있지만, 바로 그 틀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사유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 한계를 규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 속에서 개념들은 서로를 규정하면서 어떤 의미들을 만들어내고, 그러면서 개념들이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프로이트의 개념 역시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프로이트에게는 그 패러다임이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용어가 가지고 있던 기능이나 역할 역시 자연스럽게 바뀔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점을 포착해야 프로이트를 읽을 수 있다. 어차피 제한된 어휘로 사유하기 때문에 같은 용어라도 그 용어가 품고 있는 의미의 용적이라든가 부피가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저서는 어떤 개념을 미리 규정해놓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위치하는 장(場)이나 패러다임에 따라 유동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에게는 최소 네 개의 패러다임이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게 될 내용이 바로 그런 패러다임으로서의 프로이트이다.
첫 번째 패러다임: 히스테리의 시대, 1895-1905
: 무의식의 형성물을 탐구하는 시기. 병리적인 범주로 히스테리 모델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시기. 무의식, 억압된 것의 회귀, 욕망 등과 같은 개념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두 번째 패러다임 _성충동의 시대, 1905-1911
: 충동의 문제틀이 제기되는 시기. 아이들이 쾌락 지향적인 활동을 한다는 이론(유아 성욕설)이 등장하면서 충동, 쾌락, 승화, 오이디푸스 등과 같은 개념이 중요하게 기능한다.
세 번째 패러다임-나르시시즘의 시대, 1911-1920
: 나르시시즘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는 시기. 병리적인 범주로는 정신병과 멜랑꼴리를 다룬다. 주요 키워드는 자아 이상, 충동의 운명, 전이, 거세 등.
네 번째 패러다임-죽음 축동의 시대, 1920-1940
: 삶의 충동(성충동)과 대비되는 죽음 충동(자아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성향)의 개념이 도입되는 시기. 초자아가 등장하면서 논의가 일차 토픽(의식, 무의식)에서 이차 토픽(자아, 이드, 초자아)으로 전환된다. 원초적 마조히즘, 초자아 등이 주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