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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 추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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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 동아 | 2019년 01월 2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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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444g | 128*188*30mm
ISBN13 9791163021384
ISBN10 116302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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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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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은 등불과 벽면의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암암했던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은은한 불빛과 달리 통나무집 안에 한가득 모인 사람들의 열기는 주체할 수 없이 활활 타올랐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어느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무로 만든 층계에 소희가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뛰어 올라왔다.
“여러분! 달이 밝아 왈츠 추기 좋은 밤이에요. 자, 둘씩 손잡으세요!”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신호로 몇몇은 능숙하게, 몇몇은 부끄러운 듯 눈치를 보다가 덥석덥석 손을 잡았다. 일부는 남사스럽다며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소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사분들은 오른손을 내밀고, 숙녀분들은 왼손을 위로 포개세요! 부끄러워 말구요!”
그 말에 못 이긴 척, 손이 비어있던 사람들까지도 서로의 손을 잡았다. 소희가 층계 옆에 있던 칠복에게 신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빠른 장단의 가락이 터지듯 들려왔다. 팔딱팔딱 사람들 사이를 신나게 헤엄치는 가락이 흥겨움으로 온몸을 덮쳐 눌렀다. 사람들이 천천히 어색한 발을 움직여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소녀들의 안내를 받아 통나무집에 들어온 수와 석의 얼굴이 멍해졌다. 수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난잡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지. 남녀가 유별한데 서로의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는 꼴이라니. 모두 머리가 돌아버린 게 틀림없다. 당장이라도 세자의 명으로 모두를 잡아 끌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수는 겨우 그 충동을 내리눌렀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우연히도, 겨우 찾아낸 그녀의 흔적. 어서 그녀를 찾아야 한다.
“도, 도련님.”
“석아, 찾는 것이 없으면 바로 나갈 것이니…….”
“정말 신납니다! 이곳은 대체 무엇이죠? 온 김에…… 조금만 놀아도 됩니까?”
황당한 수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 짝 없는 아낙에게 손이 붙잡힌 석은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곳곳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통나무집을 채운 공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지켜보는 소희의 가슴이 후끈거렸다. 앙베르의 ‘사람들과 함께 매일 왈츠를 춰 달라는’ 부탁으로 시작한 왈츠 교습. 소희는 날이 지날수록 매일 이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이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루하루 조금씩 실력이 좋아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뿌듯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행복에 소희의 얼굴 한가득 웃음이 피어났다.
“아, 더 이상 못 참아!”
소희가 사람들 틈에 뛰어들었다. 함께 발을 구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여러분! 긴장하지 말구요. 조금 더 빠르게 돌아볼까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에 수가 정신없이 고개를 돌렸다. 쿵짝짝, 쿵짝짝. 빙글빙글 도는 사람들이 수의 다급한 시야를 가로막았다. 또 무슨 말을 하지 않을까. 수가 귀 기울였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속이 타는 듯한 심정에 사람들 사이를 파고든 수는 곧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몰려오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휩쓸려버렸다. 수가 허우적거리며 정신없이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귀를 때리는 가락. 사방에서 부딪쳐오는 사람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혼이 날아가는 듯한 느낌에 수의 발이 꼬였다. 세상이 기울어졌다.
‘넘어진다!’
수가 반사적으로 손에 감겨오는 누군가의 소맷자락을 세게 붙잡았다. 곧 그 누군가의 몸도 크게 휘청이는 것을 느꼈다.
“어?”
당황한 소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자신이 넘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찰나.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소희의 놀란 얼굴과, 수의 당황하여 굳어진 얼굴이 서로의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더 이상 크게 뜰 수 없을 만큼 서로의 눈이 커진 순간. 촉, 입술에서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촉촉하고 말캉한 입술 사이, 서로의 숨결이 뜨겁게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촉촉? 말캉? 지금 뭐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소희가 수 위에서 눈을 깜빡였다. 흥겹게 터지던 가락이 들리지 않았다. 발을 구르던 사람들도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멍하니 서로의 깜빡이는 눈을 바라보던 수와 소희가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몇 걸음 거리를 둔 두 사람은 자신의 입술을 소매로 벅벅 문질렀다. 웅성거림이 커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최악이었다. 소희의 커다란 눈망울에 분노와 민망, 황당함이 감돌았다.
“비켜요, 비켜!”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한 칠복이 등불을 들고 뛰어왔다. 순식간에 주변이 밝아졌다. 낭패다, 싶은 수의 얼굴과 씩씩거리는 소희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이, 이! 턴 하다가 머리까지 돌아버릴 놈아!”
“뭐, 뭐?”
‘머리까지 돌아버릴 놈아’만 봐도 분명 기분 나쁜 말이 분명한데, ‘턴’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는 수가 바보같이 되묻고 말았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본 소희는, 정신없는 상황 탓에 머리까지 돌아버릴 놈이 누구인지 뒤늦게 떠올리고야 말았다. 개울가에서 만났던 성격 더러운 놈. 물에 젖은 자신을 보고 쫓아왔던 놈! 사색이 된 소희가 팔을 엑스자로 교차해 몸을 가렸다. 두 눈이 분노로 번뜩였다.
“으, 으으!”
‘답답해! 왜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거야!’
딱딱, 소희의 이가 부딪쳤다. 시원하게 욕 한 사발 하고 싶으나 마땅한 조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하는데. 소희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이상한 사람이야! 정신 나갔어요!”
소희의 말에 사람들이 수를 보며 수군거렸다. 수는 오해 살만한 상황임을 뒤늦게 알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선 입을 맞대기 이전의 오해부터 풀어야 했다.
“그, 그게 아니라……!”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서, 설마 나를 만나려고?”
수의 말은 조금도 들리지 않는지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수를 험악한 눈빛으로 쏘아보던 칠복은 주변에 빙 둘러선 사내 몇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그리고 너! 빨리 이 놈팡이 내쫓지 않고 뭐 해?”
칠복의 손짓에 빠르게 움직인 사람들이 수를 들어 올렸다. 당황한 수가 버둥거리며 빽빽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기웃거리던 석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수에게 달려왔다.
“무례하다! 함부로 손대면…… 꽥!”
수에게서 사람들을 떼어내기 위해 달려든 석은 내동댕이쳐졌다.
“흥! 또 나타나기만 해 봐!”
소희가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 애꿎은 바닥에 발길질했다. 장정들에 의해 들려 나가는 수가 뒤집힌 세상에 어지러움을 느낀 것인지, 치욕 때문인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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