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생님이라고 할 때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인물들은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고정된 인물상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린이집에서부터 출발해 유치원, 초중고, 대학교를 단계별로 거치며 만나게 되는 교사, 혹은 교수의 이미지로 말이다. 그러나 규격화된 지식보다 갈수록 창의력과 상상력, 인성이 강조되는 현대 교육에서 선생님의 범주는 비단 기존 제도권 교육에 종사하는 이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청소년 지도사는 바로 그런 전통적인 선생님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는, 아니 그 개념을 더욱 확장시킨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 p.17
이러한 분야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향후 평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 부분들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창의력과, 비판적으로 지적된 사항을 기꺼이 수용해 고쳐나갈 수 있는 개방적인 자세도 필수 덕목이라 하겠다. 물론 여러모로 고생스러운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람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개성과 성장 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다독이고 이끌어 서로 한데 어우러지게 만드는 건 한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 비길 만하며, 그 과정에서 청소년 지도사는 제작자이자 연출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p.20
어른이 되고 난 뒤에는 마치 성장판이 닫히듯 미래의 가능성들이 차례로 닫혀가는 현실을 깨닫는 반면, 그 시절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동시에 그 무엇도 되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바로 그럴 때 “보라야, 넌 할 수 있어. 힘을 내!”라는 누군가의 격려 한 마디에 나의 인생이 바뀌기도 하고, 유독 나에게는 그런 말을 해줄 그 누군가가 없다고 느낀 이들은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상실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청소년 지도사는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러한 격려를 말과 행동으로 전해주는 바로 그 ‘누군가’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가까운 가족이라서, 하루 종일 수많은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모와 학교 선생님을 대신해, 생활 속에서 아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인생의 조력자로 기억되고픈 이들이 우리 청소년 지도사인 것이다. --- p.31
일단 청소년 지도사 자격을 취득하면, 국가 정책, 교육, 민간 차원의 청소년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가장 일반적인 경로로는 국가가 청소년활동 진흥법에 근거해 설치, 운영하고 있는 전국의 청소년 수련 시설에 채용돼 일하는 방법이 있다. 해당 시설들은 아무래도 법령에 의거해 설치되고 운영되는 시설들이다 보니, 국가에서 발급하는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의 보유 여부를 최우선적인 채용 기준으로 삼는 게 일반적이다. --- p.70
인간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 건, 자신이 쏟은 것에 비해 돌아오는 애정이 적다고 느낄 때다. 그런 점에서 사람 간의 사랑과 관심은 저울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가 많다. 특히 한 명이서 수십 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청소년 지도사는 그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을 종종 느낀다. 나는 여러 명을 동시에 바라보지만, 아이들은 오직 나 하나만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최대한 그 아이들에게 그런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의 애정을 잘게 쪼개고 또 쪼개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자 애를 쓴다. --- p.102
자신이 다수에 속한다고 해서 우쭐댈 이유도 없고, 소수라고 해서 움츠려들 필요도 없다. 다수가 소수를 차별하거나 그들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것은 더더욱 안 될 노릇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다수와 소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그런 사회를 만들어내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는다. --- p.124
“현재 여러분이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만큼 아이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잘하고 있는 건가를 고민하니까 힘든 법이지요.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의 그런 고민이 아이들에게는 밑거름이 되고, 그 거름으로 성장한 청소년들이 언젠가 꽃을 피우게 되면, 그게 다 우리가 감내한 시간들의 결실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고민하는 당신은 옳습니다.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힘내시길, 우리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청소년 지도사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p.131
이럴 때는 그야말로 서류와의 전쟁이 벌어진다. 인간이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청소년들에게 돌아가야 할 에너지 중 상당부분이 행정 업무로 소진될 수밖에 없다. 물론 공공 기관이든 기업이든 문서로 된 근거 없이 일이 진행될 수 없다는 건 충분히 잘 안다. 그러나 굳이 꼭 필요한 서류와 절차가 아니라면, 간소화하고 줄일 필요가 있다. 가끔은 내가 청소년 지도사인지 행정 업무를 하는 사무직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 p.138
결혼과 동시에 가정을 꾸려나가야 할 입장에 처한 선배 지도사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결국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살 길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나 역시 언제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 열정과 희생만으로 버틸 것을 강요하는 열정 페이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청소년 지도사에 대한 투자는 곧 청소년들을 위한 투자다. 낮은 급여와 처우의 개선을 요구하는 우리 청소년 지도사의 목소리가 괜한 투정일 수 없는 이유다. --- p.141
청소년 지도사의 이러한 잦은 이직과 고용 불안은 서비스 대상자인 청소년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옮겨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울고 웃으며 활동을 이끌던 청소년 지도사가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창 사람과의 관계 형성과 신뢰를 배워갈 시기의 아이들이 느끼게 될 상실감은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 p.156
오래 전 그 ‘형’으로부터 받은 긍정적 영향을 나는 이제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또 다른 ‘형’이자 ‘선생님’으로서 되돌려주고 있다. 그리고 샛별이 같은 아이들도 언젠가는 내게서 받은 도움을 후배들에게 똑같이, 아니 몇 배의 크기로 대물려 주리라 굳게 믿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청소년 현장에서 지도사로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자 근거이다.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고민하고, 그들이 삶의 건강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청소년 지도사들을 응원하며, 우리가 좀 더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가 마련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해본다.
---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