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은 오히려 사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자들은 쥐를 더 괴롭힐 방법을 고민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쥐불놀이’이다. 쥐불놀이는 쥐꼬리에 불을 붙이고 몸까지 불이 번지기 전에 물대야까지 뛰게 하는 놀이였다. 포악한 사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쥐고기’를 간식으로 개발하라고 명령했다. 쥐포는 이렇게 탄생했다.
쥐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스트레스로 죽거나 미지의 세계로 도망치거나! 살아남은 쥐들도 출산을 꺼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쥐들은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살을 하는 쥐들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마을에서 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쥐들이 사라지자 친구인 두더지와 다람쥐도 덩달아 자취를 감추었다. 마을은 황폐해졌다. 먹잇감이던 쥐와 그 친구들이 사라지자 고양이와 여우도 사라졌다. 사자들은 쥐가 없어지자 심심해졌고 고양이와 여우가 사라지자 굶주렸다. 그러는 중에 가뭄이 닥쳐 오래 지속되었고 사자들은 먹이를 찾기가 더욱 힘들게 되었다.
“아 심심해! 쥐포라도 있었으면!”
이제야 사자들은 쥐가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자들은 쥐들을 그리워하며 후회했다. --- p. 07
“그래, 사자가 아니라 양이 우리를 잡아먹은 거야!”
울타리 안의 행복한 양을 보면서 마을의 옛 친구들은 양이 사자를 충동질해서 자신들을 쫓아냈다는 생각을 굳혀 갔다. 분노가 일었다. 이때부터 돼지는 양이 사는 쪽을 향해 ‘꿀꿀’이라고 울었는데, 이것은 ‘내가 지금 얼마나 꿀꿀한지 알아?’라는 뜻이었다. 닭은 아침마다 울타리 너머까지 소리가 들리도록 “꼬끼요!”라고 울었다. 이것은 사자에게 양의 고기를 먹으라는 원한 맺힌 울부짖음이었다. ‘꼬끼요’는 ‘고기요’라는 소리의 된발음이다.
양은 냉담하고 원한에 가득 찬 옛 친구들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결백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찜찜한 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사자가 이발사와 멋진 옷을 입은 신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 p. 21
“우리더러 죽으라는 것이냐?”
어떤 용감한 소들이 격하게 항의를 하자, 호랑이는 그들에게 몸에 맞는 침대를 제공해 주겠다고 하며 침대 가게로 오라고 했다. 규격 침대에 한 소를 눕혀 보니 침대보다 키가 컸다. 그 소는 다리가 잘렸다. 침대보다 키가 작은 한 동물은 키가 강제로 늘려지는 고통을 당했다.
이제 소들에게 침대는 더 이상 안전하게 쉬는 공간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었다. 검열과 억압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이렇게 호랑이는 맞춤형 침대정책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소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
“적응만이 살길이다!”
소들은 그해에 제시될 침대의 규격을 미리 알아내려고 했다. 거기에 미리 몸을 맞추기 위해서. 그러나 몸을 완벽하게 맞추었다는 소를 들어 본 적은 없다. 호랑이가 또 이상한 침대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 pp. 30-32
“그런데 더지야, 호랑이가 죽고 나서 법이 바뀌었어. 이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어. 시민의 조건은 재산이다. 석탄과 다이아몬드를 가져오면 시민이 될 수 있게 해볼게.”
두더지는 실망했고 찜찜했지만, 법이 바뀌었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두더지는 이전보다 더 근면하게 더 깊이 더 넓게 굴을 팠다. 광석이 나오는 대로 여우에게 갖다 바쳤다. 그러나 여우는 가격이 떨어졌다느니, 품질이 좋지 않다느니, 양이 부족하다느니 하면서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두더지는 오늘도 일한다. 언젠가는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꿈을 부여잡고서…. --- p.44
“너희들은 이래서 가난한 거야. 의존성만 늘었잖아. 땅속에 사는 이유가 다 있는 거야!”
신사가 두더지들을 경멸했지만 두더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 빵을 얻어야 했고 어떻게 생각해 보면 신사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을의 분위기 조성에 성공하자 신사는 새로운 법을 입안했다. 가난한 두더지들 구제하는 내용의 ‘두빈법’이었다. 이 법은 원조 받는 두더지는 열등한 동물로 다룬다는 내용이다.
열등동물은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일명 ‘열등처우의 원칙’이 핵심이었다. 신사는 두더지들이 부지런히 일해서 부자가 될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 홍보하면서, 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했다.
사실 이 신사는 ‘울렌마을’에서 사자를 고용해서 양털을 취하고, 닭과 돼지를 ‘베드타운’으로 데려가 일을 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자선사업가가 되었을까? --- pp. 63-64
“여러분,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지 않나요?”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두더지들은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웃이 돌봐 주어야 하고, 정부가 학교를 지어야 하며,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 부인 띠쥐가 물었다.
“부자는 어떻게 될까요?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기만 하면 되나요?”
“아니오. 일하는 우리 같은 두더지가 있어야 해요.”
두더쥐의 말에 부인 띠쥐가 맞장구쳤다.
“맞아요. 한 명의 부자가 만들어지려면 하나의 사회가 필요해요.”
“왜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두더지에게 남편 띠쥐가 말했다.
“여러분처럼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정부의 기업지원정책이 있어야 하며, 도로와 철도 등 사회적 인프라가 있어야 해요. 누구도 혼자서는 부자가 될 수 없어요.”
듣고 보니 그랬다. 일할 사람이 없는 공장이 가능할까? 노동자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노동자는 늘 천대받고 굽실거려야 하고 가난할까? 왜 여우는 자기가 잘났다고 하면서 사회에 감사하지 않을까? 두더지 대표단의 마음속엔 이런 의문들과 함께 뭔가 꿈틀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 pp. 76-78
“가난이 제 탓이지 어떻게 남의 탓입니까?”
그럴듯했다. 동물들이 똘똘 뭉칠 수 있었던 것은 가난을 사회 탓으로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면 열심히 일만 하지 않았겠는가.
하이에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동물의 길은 내 탓, 노예의 길은 남 탓』이라는 제목의 하이에나가 쓴 책이었다. 일명 ‘탓탓론’이라는 이 책은 남 탓하는 자는 노예로밖에 살 수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호랑이와 포악한 사자에겐 복음과 같았다. --- pp. 96-97
고양이는 쥐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잔뜩 만들어냈다.
‘쥐는 시속 20km 이상 달리면 징역 6개월에 처한다.’
‘쥐구멍은 직경 30cm 이하로 파면 징역 1년에 처한다.’
이 모든 조치들은 고양이가 쥐를 잘 잡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우스랜드’의 주민들은 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새로운 고양이를 통치자로 뽑았다.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누런 고양이, 얼룩 고양이…. 그래도 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마다 쥐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에 띠를 두른 쥐 부부가 나타나 다른 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쥐를 대표로 뽑지 않는 거지?”
마을이 술렁거렸다. 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점점 심상치않게 변해가자 고양이 정부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쥐들에게 자신들이 먹다가 남은 식량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했다.
“역시 고양이는 달라.”
--- pp. 11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