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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62g | 128*205*20mm
ISBN13 9791196396930
ISBN10 1196396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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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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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가 흐느끼는 줄만 알았지
키를 높이려 애쓰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건너편 강둑에서 누가 손짓하는지 보려고
가는 목을 자꾸 빼드는 동안
다 부질없는 일이라며 강물은
아래로 아래로 깊어지며 흘렀고
바람결에 몸을 누이면서도 갈대는
속으로 도리질을 치곤 했다
엎드려 우는 일은 마지막에 할 일이라고
아직은 강 저편의 일이 궁금하다고
강둑 끝으로 걸어간 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여린 마음이 자꾸만 키를 높이며 조바심쳤다
흔들릴 때마다 서로 바짝 기댄 채
한사코 강 저편의 소식을 끌어당기는 자세로
갈대는 하얗게 늙어갔다 ---「하얀 갈대」중에서

미황사 배롱나무 아래서 비를 그었다
긋지 않아도 될 만큼 살살 뿌렸지만
굳이 배롱나무 아래서 그었다
배롱나무 붉은 꽃이 나 대신 빗방울을 영접했다
미황사가 고맙고 배롱나무가 고마웠다

내려주신 비가 고마웠다는 얘기는 덤이다 ---「덤」중에서

딸 잃은 아빠는 40일을 굶었고
언니 잃은 동생은 앙상한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팔이 왜 이렇게 얇아?

식탁에 수저를 가지런히 놓는 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몇 줄의 시로 끄적인 적이 있었다

40일 동안 수저를 들지 않은 손에 대해 말하라면
이제 어떤 언어를 가져와야 할 것인가

굶지도 않고 수저보다 얇아진 내 언어는
40일 굶은 아빠의 팔에서 힘없이 미끄러진다 ---「아빠 팔이 왜 이렇게 얇아?」중에서

골짜기는 깊어서
물도 소리도 맑다

그 깊은 속으로 들어가
지금도 나오지 않는 한 사내

맑은 소리 아직 얻지 못했는가
묻고 싶어도
골짜기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동안
반백 년이 흘렀다

골짜기는 여전히 깊고
물도 소리도 변함없이 맑은데

내 마음이 거기 가 닿으려면
반백 년이 더 흐를지도 모른다

골짜기 끝에 있다는 아득한 벼랑을
아직 마음에 걸어두지 못한 탓이다
---「상강霜降무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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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쉽지 않으리. 박일환 시인의 관심은 뜨거운 광장과 고요한 숲, 너훈아와 알파고까지 뻗치지 않는 곳이 없다. 시란 자고로 보는 법을 일깨워주는 것. 무엇을 볼 것인가를 배우다가 어떻게 볼 것인가를 성찰하게 된다. 시인의 시선은 어떤 권위나 관습이나 불문율도 뒤집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위하여!’ 술잔을 드는 건배사에서도 인간이 위하다가 망친 것이 얼마나 많으냐, “그냥 냅둬!”라고 옆구리를 찌른다. 새끼를 핥는 어미 소를 보고 “혀의 쓸모는 말을 할 때보다 핥아줄 때 더 빛난다”고 일갈한다. 시를 읽으며 무릎을 치다가 먹먹하다가 퍽 부끄럽기도 했다.
- 조향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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