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중국고전문학과 정
(1) ‘정’의 함의
중국고전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서정성이라면 ‘정’은 바로 중국고전문학의 핵심내용이 된다. 중국고전문학에서 말하는 정은 매우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시의 본질과 정의를 논함에 있어 ‘시언지(詩言志)’와 더불어 ‘시연정(詩緣情)’이란 말을 사용하였으며, 이로부터 정은 위진남북조시대 유협(劉?)을 비롯한 중국문학 비평가들의 주요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철학에 있어서도 정은 성(性), 심(心), 욕(欲) 등과 함께 선진시대 이후 철학 연구의 주요 명제가 되기도 하였다. 선진시대부터 등장한 정의 논의를 통해 필자는 중국문학에 나타난 정의 원초적 함의를 파악하고자 줄곧 노력해 왔으며, 이런 정의 함의가 시대를 거치는 동안 어떻게 수용되고 발전변화하게 되는가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테면 선진시대 유가와 도가 등의 문헌들을 통해 보면 당시 사람들은 정을 대개 ‘진실’이나 사람이 지닌 ‘순수한 본성’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지만 양한시대로 접어들면서 정은 이젠 욕(欲)과 점점 동등시되는 정욕이란 말로 변화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경계하는 대상으로 변하게 된다. 그 후 이런 정의 함의와 수용은 위진남북조시대와 명청의 교체기에 이르면 정은 인간이 지닌 감성 중의 하나로 긍정적으로 수용되고 심지어 그 어떤 도덕적 가치보다 중시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정의 함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황조걸(黃兆杰, Wong Siu-kit)은 중국문학에 나타난 정을 13가지로 분류하여 정의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지(志)’의 동의어로 쓰이는 의미이고, 둘째는 이성(理性)과 구별되는 보편적인 인류의 감정의 의미이고, 셋째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이기적인 감정으로 격정(激情)과 같은 것이고, 넷째는 색정을 위주로 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천성(天性)과 무지(無知)와 같은 감정이며, 여섯째는 도덕적으로 구속하는 감정이며, 일곱째는 현실과 진리, 그리고 내재적 정신의 의미로 허위와 대립되는 의미이며, 여덟째는 상상(想像)의 진실로 순수한 사실과 대립되는 의미이며, 아홉째는 시의 형식이 아닌 시의 내용을 지칭하는 의미이며, 열 번째는 시의 개성과 특징을 말하며, 열한 번째는 풍경(風景) 이외의 시의 요소를 말하며, 열두 번째는 보통 성정(性情)으로 칭해지는 예술적 감수력(感受力)의 의미이며, 열세 번째는 정취(情趣)의 의미로 지적인 취미와 유사한 의미를 말한다. 이에 대해 미국 학자 마람 엡스타인(Maram Epstein)은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생리학적인 것으로 정감 자체를 가리킨다. 이는 주변의 환경에 대한 사람의 반응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감정’을 말하며, 간혹 남녀 간의 애정으로도 사용된다.
둘째, 정신적인 것으로 실존하는 내재적 정신을 말한다. 이는 언제나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며, 외재적인 허위와 상대되는 의미이다.
셋째, 현상학적인 것으로 도덕상으로는 중성적이고 보편적이며, 정해진 리(理)와 대립되는, 이산(離散)적 독특한 현상을 말한다. 이를테면 중국어 구어체에서 사용되는 ‘사정(事情)’ 혹은 ‘정황(情況)’을 의미한다.
넷째, 미학적인 것으로 미감(美感), 성정(性情), 흥취(興趣) 등을 말한다. 이는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중국어 구어 속의 ‘정취(情趣)’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실 엡스타인의 정의 함의도 따지고 보면 결국 정감, 진실, 정황, 정취의 4가지 함의를 포함하고 있을 뿐으로 중국고전문학 속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의 함의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하기 에는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
정의 함의를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정의 함의와 문학적인 정의 함의를 구분해서 논의할 필요가 보인다. 우선 철학적으로 보면, 정이 처음 출현하는 선진시대 문헌들을 살펴보면 정의 함의는 전술한 바와 같이 사물의 실정과 거기서 발전된 진실의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논어』에서 말하는 정이나 『맹자』에서 말하는 정은 거의 모두 ‘실정’과 ‘진실’의 의미로, 선진시대의 정은 성과 확연한 구분이 없이 통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사실은 『장자』에서도 나타난다. 다시 말해 『장자』에 나타난 정의 기본적인 함의도 유가문헌 속의 함의와 같이 진실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차별이 없는 순박하고 진실한 본래의 정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자는 선진제자 가운데 순자보다 앞서 정을 희로애락의 감정의 의미로도 사용하였으며, 표면적인 희로애락의 정을 초월해 ‘성정(性情)의 정’으로 승화해야 함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