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손바닥이 글자 앞에서 팔랑팔랑 흔들렸다. 글자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 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영혼관리과’.
“어라, 감찰과가 아니었네요. 그런데, 영혼관리과라뇨?”
“그렇습니다. 전 영혼관리과 직원입니다.”
영혼관리과에서 나왔다는 자는, 밋밋하고 하얀 얼굴 위로 시커먼 구멍을 빠끔히 열며 그렇게 대답했다.
“저는 영혼들의 희망을 들어 드리고 있습니다. 당신, 영혼을 담을 그릇을 찾고 계시죠?”
“영혼의 그릇이요?”
“네, 영혼을 담는 그릇 말입니다. 전 ‘담당자’니까 한번 보는 걸로 영혼의 그릇을 찾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영혼의 그릇을 찾는 당신의 기운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는군요. 당신이 그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동안에는 이승에 있는 어떠한 물건에 깃들 수 있습니다.”
“이승의 물건?”
“네,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생각나는 걸 말해 보세요. 사물이 되어 한 번 더 이승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을 게 분명해요.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안됩니다. 살아 있는 것에는 이미 먼저 깃든 영혼이 있으니까요. 뭐,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영혼관리과 직원은 말을 마치고 구멍을 닫았다.
“알겠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지금 생각해 볼 테니.” --- p.11~12
와타루는 텅 빈 나를 곧 따뜻한 물로 조심스레 씻어 주었다. 와타루의 마디진 손가락이 내 몸 곳곳을 어루만진다. 손가락으로 컵의 바닥을 세게 문질러 스며들어 있던 커피의 색과 향을 깨끗하게 지워 주고 있었다.
나는 싱크대 위의 식기건조대 위에 조심스런 손길로 거꾸로 놓인 채 물방울을 똑똑 흘리고 있었다. 식기건조대 위에서라면 식탁도, 그 안 방에 있는 거실 소파도 잘 보였다.
와타루가 밥을 먹는다. 소파에서 TV를 보며 쉬고 있다.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들을 일은 거의 없었지만, 나는 그 옆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와타루는 매일 아침 머그컵으로 커피를 마시며 매일같이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내가 닿을 수 있는 건 와타루의 입술과 손가락뿐이었지만, 온몸으로 그 감각을 받아들이는 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머그컵이 돼서 다행이다. 와타루가 가장 좋아하는 트리케라톱스가 그려진 머그컵이 돼서, 정말 다행이다. --- p.29~30
나는 빛을 느꼈습니다. 서랍이 열린 거겠죠.
나는 유리창 너머에서 느껴지는 한낮의 태양빛을 온몸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오랜만에 뵙네요, 하마 선생님. 다시 한 번 여름이 찾아온 거로군요.
선생님은 나를 사랑스럽다는 손길로 살며시 쓸어 보고는 천천히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부쳐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오늘은 한층 더 무덥군요.”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으며, 희끄무레한 목덜미와 살짝 불그스레한 빛을 띤 귓불을 바라보면서 흔들흔들 움직였습니다. 목덜미께에 땀이 한 방울 반짝 하는 것이 보입니다.
“정말로 더워졌어요.”
사모님의 목소리입니다. 두 분 다 건강하신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
“올해 들어 처음이죠? 부채를 꺼낸 건.”
“그랬던가.” 맞아요, 선생님. 나는 바람을 만들어 보내며 살그머니 속삭였다. --- p.60~61
영혼관리국 직원은 손바닥에서부터 둥실거리는 종이를 꺼내들었다. ‘엄마’ 그리고 ‘보청기’란 문자가 보였다.
“이 종이에는 당신의 마음속에 담긴 단어가 쓰여 있습니다.” 영혼관리국 직원이 희미하게 웃는 듯 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엄마’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던 것마저 전부 다 꿰뚫어보고 있었던 걸까. 그런 거라면 당황해서 말을 바꾸거나 하지 말 것을. 더한층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항상 ‘엄마’라고 부르도록 강요했던 건 엄마다.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몸에 배어들어 지워지지조차 않도록.
강압적이고, 제멋대로에다가, 민폐뿐이던, 엄마.
그런데 어째서 나는 또 일부러 만나러 가려고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담당자가 말하는 대로 그 종이를 향해 숨을 불어넣었다.
--- p.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