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미술가들과는 대조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미술가들은 죽음보다는 삶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경기(기원전 776년에 최초로 기록됨)를 통해 신체적 기량 못지않게 정신적 발달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자신을 갈고닦는 데 목적을 두었고, 미술가들은 이런 대중의 열망을 반영하면서 완벽한 인물의 모습과 결함이 없는 환경을 묘사했다. 그들은 이렇게 미와 완벽함을 숭배했기 때문에 신이 이상적인 인간을 닮았다고 믿었다. 아테네에서는 미술이 공공장소와 종교적인 장소를 장식하기 위해 생겼기 때문에 창의성이 넘쳐났다. 건물들은 부조나 벽화, 조각상으로 장식되었고 신화, 영웅, 신과 여신 등이 그 주제가 되었다. 인물상들은 균형이 잘 잡힌 몸과 날씬하고 근육이 발달한 팔다리를 갖춘 젊고 원기왕성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미술의 이면에 있는 관념들은 획기적이었다. 이전에는 전반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미술을 양식화하고 간소화하는 문화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는 미술이 주제를 가까이에서 연구하여 실물과 똑같이 표현하려고 했던 최초의 시기였다. 단축법(foreshortening)과 질감 같은 사실적인 요소들이 처음으로 탐구되었고 미술가들은 실물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정확한 세부 묘사 기법을 미술에 도입했다.---고대 그리스 미술 pp.20~21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는 17세기에 ‘양식(style)’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era)’에서 유래했다. 이는 못마땅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가능한 사실적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모방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성기 르네상스의 완벽함을 목격한 매너리즘의 미술가들은 이를 거부하는 대신, 실물이 아닌 다른 미술에서 모방을 했다. 그들은 좋아하는 미술가들의 방식을 모방하고 그 방식을 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은 특히 극적이며 감정을 자극했던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 때문에 촉발되었다. 몇몇 미술가들은 미켈란젤로 후기의 웅장하고 곡선을 이루는 형식을 주로 따르면서 그의 양식을 훨씬 더 극적인 이미지로 장식했다.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또 다른 미술가는 전성기 르네상스에서 또한 명성을 떨쳤던 안드레아 델 사르토였는데, 그는 회화에서 인물의 다양하고 복잡한 자세와 색상을 통해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로는 코레조가 매너리즘의 미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그는 종교적인 작품에서 온화함과 감정의 묘사와 더불어 포괄적인 장엄함을 나타내면서 화려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효과를 창출한 또 한 명의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가였다.---매너리즘 p.58
우키요에라는 명칭은 미술에서 표현된 세상 위를 날아다니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미지는 사실상 쇼군에 협력하지도 않고 불복종하지도 않는, 삶의 유쾌한 측면을 관찰하고 즐기는 생각을 감상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묘사된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특이한 원근법이 우키요에의 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관이나 어떤 사건 위로 직접 떠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이미지는 대부분 사진술이 발명되기 전에 만들어졌지만 넓은 관점으로 그림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얼핏 한 장면이 지나가는 인상을 주면서 사진에서처럼 흔히 그림의 일부가 잘려진 듯 보인다. 이 특이한 구도는 꿈을 꾸는 듯한 공상의 느낌을 더해주었다. 또한 그림 전체가 대각선 구도이며 유동성이 돋보이고 지면의 편평함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색조와 질감과 이미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사실성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화가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여백이 강렬한 색상과 무늬로 메워진 부분과 균형을 이루었다.---우키요에 pp.99~101
표현 양식과 주제 종류가 서로 다르기는 했지만 인상주의자들은 모두 미술의 현대화에 나섰다. 그들은 먼저 전통을 거부하고 쿠르베와 들라크루아 같은 미술가를 따랐다. 주로 밝은 순색으로 붓자국이 뚜렷이 남게 그렸고, 여러 유화를 야외에서 완성했으며, 일시적 느낌을 포착하면서 빛의 변화에 집중했다. 그들은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의 장면도 그렸는데, 꼼꼼히 묘사하기보다는 전체적 시각 효과를 간추려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 공기와 빛이 사람과 사물에 미치는 극적 효과를 연구하며, 다양한 색을 이용해 그런 효과를 캔버스 위에 재현하려고 애썼다. 그들의 어두운 색조는 대개 순색을 조합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색을 혼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아이디어는 대부분 새로운 과학적 색채 이론에서 비롯했다. 예를 들어 회색 이외의 색으로 그린 그림?는 전체적으로 일렁이는 느낌의 ‘색 진동’ 효과를 낳았다. 어떤 사물이든 하나의 색으로 단조롭게 전체를 칠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고유색(사물 자체에서 보이는 색)만 쓰는 것이 아니라 보색을 병치하여 각각의 색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했으며 반사색(주변 사물들이 해당 사물에 비쳐 나타난 색)도 그렸다.---인상주의 p.120
다다이즘은 하나의 양식도 아니었고 미술로만 표현된 것도 아니었다. 다다 카바레와 다다 전시회도 있었고 다다 음악과 다다 저술도 있었다. 다다이스트들은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리려고 대중에게 불손한 언행을 남발했다. 부르주아 가치관을 거부한 그들은 예술을 근절하고자 애썼고, 반사회적이며 부도덕한 행위를 대체로 옹호했다. 이전의 예술 운동에서 아이디어(입체주의의 콜라주, 막 개발된 필름 사진술, 미래주의의 홍보 개념과 역동성 등)를 차용하기는 했지만, 전쟁을 일으킨 사회에서 예술이 수행한 역할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다다 예술가들이 이를 표현한 방식 중 하나는 우연이었다. 예컨대 아르프는 찢어진 종잇조각을 아무렇게나 떨어뜨린 후 그것이 ‘우연의 법칙에 따라’ 떨어진 곳에 붙였고, 만 레이는 일상적 물건으로 아상블라주(3차원 콜라주)를 만들었고, 슈비터스는 길에서 발견한 쓰레기로 메르츠(Merz, ‘상업’이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에서 차용)라는 아상블라주를 만들었으며, 뒤샹은 ‘레디메이드’로 유명해졌다.---다다이즘 p.179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다양한 기하학적 추상주의가 발전하는 동안, 신즉물주의는 더욱 공공연하게 사회적 비판을 쏟아내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다다이즘과 마찬가지였지만, 신즉물주의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통해 국민의 공포와 사회의 타락을 더욱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는 당시 미국에서 지배적이던 사회적 사실주의에 비견될 수도 있으나, 예술적 성향은 전쟁과 그 여파로 워낙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독일에서 훨씬 더 공격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조국의 부패와 사치를 비판하고, 1933년까지 이어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함을 비판하기 위해, 신즉물주의 화가들은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했다. 베크만은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비슷한 방식으로 위협적인 장면들을 묘사했다. 샤드는 세밀하고 종종 관능적인 그림을 그렸고, 딕스와 그로스는 독일 사회의 분열을 공격적이고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그들의 그림에서는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요구조건과 주변 어디에서나 경험하던 이중성, 부패, 타락 등이 기이하고 불편하게 대조와 병치를 이루고 있었다.---신즉물주의 p.228
미술가들은 항상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해왔으므로 비디오, 컴퓨터, 인터넷 등도 누군가에게는 독창적인 예술을 창조할 수단으로 관심을 끌 것이 당연했다. 1960년대 중반에 뉴욕과 독일에서 컴퓨터로 만든 최초의 작품부터 21세기의 인터랙티브 인터넷아트까지, 뉴미디어아트는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어쩌면 뉴미디어아트는 15세기 미술가들이 처음 유화를 사용했을 때나 19세기에 사진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등장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뉴미디어아트’라는 용어가 없었다. 대신 이 용어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주로 기술적인 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예술을 가리켜 처음 사용되었다. 그 후로도 백남준 같은 작가들의 비디오를 이용한 실험 등을 통해 예술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뉴미디어아트는 처음 등장한 이래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 작품이 결국 어떻게 제작되고 인식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기술이 진보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미술가들이 늘어날수록, 많은 변화와 발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아직 뉴미디어아트에 일관된 개념이나 표준화된 관행이 없고, 뉴미디어아티스트들의 작업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그 주된 사상은 뉴미디어를 활용 및 실험하는 것이고, 이는 미술가들의 상상과 능력만큼이나 광범위해질 수 있다.
---뉴미디어아트 pp.30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