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것만이 유행이 된다고 합니다. 그 말은 유행에 민감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근원을 살펴보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세습이 아닌 면면이 이어오는 유산heritage을 볼 수 있는 지식과 눈이 필요합니다. 논리로 구축된 언어가 아닌 상형문자로 그리는 지혜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람, 땅, 생활을 근원으로 두고 고민하는 여러 논의와 현장을 찾았습니다. 답습이 아닌 옛것의 교훈과 현재를 직시하는 직관을 가진 창의적인 도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도그마가 제거된, 한 그루 나무처럼 존재해야 합니다.
---「최 욱(도무스 발행인), [에디토리얼]」중에서
강들이 흘러가 바다에 이르는데 동해, 서해, 남해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깊은 산에서 발원하여 이 세 바다에 이르기까지의 경관을 옛 사람들은 산하의대형山下依帶型이라 하였고 산태극山太極, 물태극水太極이라 했습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경관,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아름다운 경관이지요. 우리 국토를, 도시를, 농촌마을들과,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곳을 상처투성이로, 쓰레기 더미로 덮어 씌우고, 토막내고 피부를 벗기듯 속살조차 없이 벗겨내는 것을 보면서, 괴롭고 가슴 아팠고, 여전히 괴롭답니다.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이러한 현상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 땅은 우리 삶의 터전이고, 반만년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야 할 땅입니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나,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혼란한 지금의 국토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루만지고 감사해 한 적이 있으신지요. 아마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아기자기한 분경盆景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수려하고, 여전히 생명력 넘쳐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낼 수 있어야 겠지요.
---「정영선(조경가), [조화로운 삶을 위해]」중에서
얼마 전 우연히 한 조각가를 만났는데, 마음이 갑갑할 때마다 저녁에 라디오를 가지고 선유도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선유도공원 작업 이후 쉬지 않고 받은 전화가 이 공원에 가서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예요. 자살하러 갔다가 기도하고 왔다고 편지 보낸 사람도 있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조경이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영감을 주는 장소여야 해요. 건축과 달라요. 도심지에 그런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욕심이죠. 얼마 전 폐경춘선 철길을 경춘선숲길공원으로, 옛 화랑대역 일대를 철도공원으로 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서울시청, 노원구청 모두 이곳에 사람이 많이 오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내 생각은 달랐어요. 오랜 시간 기차가 다니면서 피해를 봤던 지역 주민에게 평안한 정원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사람이 조용히 생각할 공간도 필요해요. 들길을 산책했던 철학자, 나무숲을 걸었던 수필가가 나올 수 있도록. 서울에서 선유도공원과 경춘선숲길만은 그런 장소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정영선(조경가), 임나리 포스트서울 대표와 인터뷰」중에서
수려한 산수를 택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경험하는 조경의 핵심에는 ‘터잡기’가 자리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터잡기의 본질이 명료하게 담겨 있다.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것이다. 살고 있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촌스러워진다. 그러나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 사람이 … 한갓 산수만 취해서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에 지세가 아름다운 곳을 가려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십리 밖 혹은 반나절 길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 생각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마련해둔다면, 그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방법이다.” 이처럼 ‘살 만한 곳 可居地’에 터를 잡을 뿐, 적극적인 조경 행위는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택과 궁궐을 막론하고 조선의 정원에는 사각형 모양의 연못, 즉 방지方池가 거의 유일한 특색으로 등장한다. 특별한 경물이 배치되지 않았고 수목도 식재되지 않았다. 건물 후면의 경사지에 화계를 조성한 경우가 드물게 있었을 뿐이다. 대신 산수 경치가 빼어난 곳을 집근처에서 찾아 정자와 누각을 짓고 즐기는, 이른바 산수 정원이 발달했다. 소극적인 주거 기능을 갖춘 산수 정원인 별서別墅는 세속을 피해 은일과 풍류를 즐기며 경관과 어우러지는 장소였다.
---「배정한(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어우러지다, 한국 조경의 미감]」중에서
페드레갈은 대학 도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작업임을 과시하면서도 건축가가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인간임을 증명하는 개인적인 예술 표현을 담고 있다. 여기서 개성을 희생시키지 않은 개인, 바라간 바로 그 자신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오 폰티, [멕시코시티의 페드레갈 정원, 루이스 바라간, Domus 280, 1953년 3월호]」중에서
예술가와 건축가는 일상적인 지금을 창조적인 동력으로 바꿔낼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자연스러운 상상과 창의력만 필요한 게 아니라, 현대적인 프로젝트에서 문화유산을 활용해 연속성을 실현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 연속성이란 자신의 언어로 계속해서 쓰는 것과 같다. 나아가 용도를 의제에 맞추면 아이디어를 위한 공간을 더 많이 열어젖힐 수도 있다. 용도를 제쳐둘 때 생각의 연속성을 위한 여지가 많이 생긴다. 어쩌면 무용無用함은 예술적인 시도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플로리안 베이겔+필립 크리스토우, [어떤 삶의 예술, Domus 973, 2013년 8월호]」중에서
중국에서 ‘구축construction’이 갖는 함의는 정원과 전통 중국 회화 및 시와 관련 있다. 이 개념은 구축의 기원이 자연뿐만 아니라 축조술에도 관련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이는 전통적인 기억은 물론 현재의 문화적이고 자연 환경적인 위기에 따르는 응답에도 기초하며,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왕수, [디자인의 시작, 왕수, Domus 1001, 2016년 4월호]」중에서
80년대 초반, 열정적인 컬렉터인 건축주 칼-하인리히 뮐러Karl-Heinrich Muller는 그가 소유한 컬렉션 전시를 위해 뒤셀도르프 인근의 드넓은 공원을 사들였다. 공원은 에르프트 강과 닿아 있는 지역으로 운하와 작은 연못이 교차하며 풍광이 매우 수려하다. 이곳은 관목 지대 숲과 목초지, 나지막한 초목 사이를 흐르는 강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세 곳은 영국식 정원과 긴 에르프트 대지, 구릉지로 각기 다른 개성을 발산한다. 단일한 건물로 미술관을 건립하는 방식 대신 헤리히의 프로젝트로 완성된 개별 파빌리온에 컬렉션을 분산시키는 방식이 결정되었다.
---「리타 카페주토,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에르빈 헤리히, Domus 764, 1994년 10월호]」중에서
“상부 공원은 덮개가 아니다.” 당선안은 현재 만들어져있는 상부 공원을 ‘어울리지 않는 모자’에 비유하여 우선적으로 그것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실 우리가 주목하는 주상절리는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기둥이 아니라, 용출지점으로부터 흘러나온 용암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 형성 과정을 이해하려면 상부 공원 하부에 감추어져 있는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 가지 현장조사를 통해 획득한 사실에 기초하여, 현재의 공원 하부에는 단단하게 굳은 거대한 덩어리로서의 수평면이 존재하고 그것이 주상절리대라는 수직적 용암기둥들과 연결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다.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수평적 깊이와 트멍 경관, 김아연]」중에서
유이치와 치에는 섬을 거점으로 하여 노토 지역의 전통기술이나 1차산업의 지역자원을 찾아내, 일상생활 용품을 차례로 디자인했다. 또한 일본 전국에 있는 물건 만들기에 종사하는 동료들을 모아 공예 페어인 '노토지마 축제'를 매년 가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러한 행사로 섬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게 되었고, 섬의 브랜드 가치도 점점 높아졌다. 동시에 유이치는 작은 시계 브랜드와 계약하여, 지역의 소재나 기술이 활용된 히트 상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들의 감수성이 섬의 지역자원을 빛내기 시작한 것이다.
---「인나미 히로시, [노토디자인 - 이주와 정주]」중에서
레진은 투명한 듯 불투명하다. 흐릿하게 안쪽의 결합 구조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완전히 다 노출시키지는 않는다. 보일 듯 말 듯하다. 그의 가구들은 실용성을 갖지만 아트 오브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원민은 일부러 가구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능적인 가구라면 엣지를 둥글게 처리하기 마련인데, 날카롭게 내버려둔 것이다. 이 모든 노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기, 경계 위에 있기 하기가 아닌가 싶다. 그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그것을 ‘완벽성의 비완벽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디자이너가 너무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하면 차갑고 경직돼 보인다. 그래서 통제를 벗어나 어느 정도 내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박원민의 가구들은 흐릿하게 모호한 경계 위에서 춤을 춘다.
---「김신(디자인 저술가), [가구 디자이너 박원민]」중에서
클래식을 정의할 때 시대적으로 예전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수용되는 것’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바하 이후 현대까지 작곡가는 많았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지금까지 수용되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은 것처럼 뭔가 정수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 속에 들어 있는 표현의 방식보다는 오히려 안에 있는 코어가, 지금까지 연결될 수 있는 만큼의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로 귀결될 수 있으니까 그 고민이 남는 거죠.
---「송길영(마인드 마이너), [X12 N.01, 꿈꾸다, 만들다 그리고 묻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