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뇌가 이렇게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은 뇌의 중요한 구성단위인 신경세포의 수가 늘어나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신경세포는 태아의 시기에 모두 완성되며, 출생 후에는 신경세포가 분열해서 수가 늘어나는 일은 없다. 또 손상되어도 결코 재생되지 않는다. 뇌를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의 세포는 사정이 다르다. 태어났을 때는 세포가 2조 개이지만 어른이 되면 50조 개로 늘고, 게다가, 평상시 언제나 교체되고 손상되면 바로 재생된다. 따라서 ‘변함없는 나’라는 것은 교체가 없는 신경세포에 있는 것이며, 결국 인간은 뇌 덕분에 ‘나’인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 인간 형성에 있다고 하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아이가 인간다운 정신을 갖고 인간다운 행동을 할 수 있게끔 신경세포가 형성되게 도와준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적이고 근대적인 보육, 교육이라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뇌에서 신경세포의 배선이 이루어지는 발달 단계에 맞춰 아이를 키워가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맞벌이가 많은 아파트 단지에는 손가락을 빠는 아기가 많다고 한다. 그러한 행위는 성욕이 충족되지 않을 때의 자위행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대상 행위이다. 직업을 가진 부모가 아기를 어린이집이나 시설에만 맡겨놓으면 스킨십이 부족해지기 쉽고, 그러다가 소위 호스피탈리즘에 의한 정신 이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스킨십이 결핍된 아기는 무표정, 무기력해지거나 도피적으로 되고, 말에 대한 이해력은 갖게 되지만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의 발달은 지체된다. 성격도 공격적으로 되며 쉽게 흥분하고 행동도 통제가 안 되게 된다.
지적 장애아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안아주고 뺨을 부비면서 하는 교육이라고 한다. 중증 소아자폐증인 아이도 부서질 정도로 꼭 끌어안아주면 이쪽으로 얼굴을 돌려 쳐다본다고 한다. 말의 기교만으로는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없다.
지능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능지수 검사로 측정되는 지능은 하드웨어로 영위되는 이해나 인식의 능력이다. 따라서 그러한 지능이라면 동물 또한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능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이라고 정의하면, 이때 말하는 지능은 의욕적, 창조적인 정신 활동을 기대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소프트웨어인 전두 연합 영역의 작동 능력을 의미한다. ‘좋은 머리’란 무엇보다도 이러한 창조적인 정신 활동의 지능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인간은 3세 때까지는 동물과 거의 다름이 없는데, 4세 무렵부터는 상황에 적응하여 ‘유효적절하게’ 살아가기 위한 학습은 물론이고, ‘더 잘’ 살아가려고 하는 학습을 의욕적,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마지못해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에서 ‘학습하는 기계’나 동물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지적 능력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뇌는 단지 지식이 집적된 백과사전 같은 것이 아니다. 백과사전을 찾아 활용하듯이 집적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사고력, 판단력이 바로 지적 능력이다. 즉 지적 능력이란 소프트웨어인 전두 연합 영역이 하드웨어인 정보 처리, 운동 발현의 구조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활용 정도를 말한다.
비행 청소년의 유형을 분류했을 때, 의지 결여성, 즉행성, 불안정성, 기분 이변성(변덕쟁이에 싫증을 잘 낸다), 자기현시성(제멋대로 행동하며 참을성이 없고,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폭발성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억지력이 결여되었거나 약해졌을 때 드러나는 특징이다. 억지력이 약한 청소년들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브레이크 없는 충동적 행동에 내몰린다.
뇌사자의 심장 기증이 계기가 되어 사망 시점의 판정을 둘러싼 엄격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인간을 조정하는 뇌의 비가역적인 기능 정지, 즉 뇌사 시점을 과학적으로 판정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뇌사가 곧 죽음이라고 즉단할 수 있을지, 인간으로서의 죽음의 인정은 한 명 한 명의 심정, 혹은 그 나라의 풍토에서 배양된 국민감정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조직 속에서 한 명 한 명은 삶의 보람을 추구한다. ‘조직 속의 삶의 보람’이라 할 때, 조직은 곧 집단이고 삶의 보람은 곧 개인의 삶의 보람인데, 이 말은 집단 속에서 어떻게 개체를 살릴까 하는, 집단과 개체의 대립에 대한 과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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