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북한 지원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체는 정부,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다. 북한 지원사업 주체들의 사업은 대체로 네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중앙정부의 식량, 비료 등 직접지원이다. 정부는 1999년 북한에 비료 15.5만 톤을 지원한 이래 2009년 현재까지 매년 지원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비료 지원은 규모가 크고 기초적인 농업 개발지원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둘째, 중앙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이다. 1996년부터 2008년 9월까지 8개 국제기구의 대북 지원사업에 대해 총 1,934억 원을 지원하였다. 그중 농업분야의 대북 지원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옥수수, 분유 지원이 가장 많다.
셋째, 민간단체의 독자적인 북한농업 지원사업이다. 대북사업에서 역사가 오래되고 경험이 풍부한 민간단체들은 초기에는 단순한 지원사업을 했지만 자체모금 또는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받아 현재 다양한 농업 개발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넷째,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의 협력지원이다. 이는 대북사업 경험이 풍부한 민간단체와 자금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협력모델로서 일회성 지원이 아닌 지속성 개발지원을 가능케 하였다.
1991년 250억 원으로 설치된 남북협력기금은 2009년 8월 말까지 총 9조 4,175억 원이 조성되어 총 8조 4,108억 원이 집행되었다. 2000년부터는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정부, 국제기구, 민간단체, 기업체의 대북사업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부터 지원된 정부의 남북협력기금 예산의 대부분은 긴급구호형태의 식량 지원, 비료 지원 등의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발표된 후 남북협력기금 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정부, 민간단체, 기업체의 대북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남북관계를 맞이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양대 정부를 옭아맸던 북핵문제가 잘 풀리면서 국제정세가 호전되던 가운데 오히려 이전 정부가 체결한 정상회담 선언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동안의 협력적 남북관계를 부인하였다. 대북 지원과 관련해서 북한의 지원요청이 있을 경우 검토하여 지원하도록 하고, 식량사정이 심각하거나 재난 상황일 경우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하여 지원하며 북한도 우리 측의 인도적 지원협력에 대해 이산가족이나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조건부 지원을 주장하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대북 실적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김대중 정부의 지원금은 노무현 정부 지원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대립적 남북관계를 협력적 남북관계로 전환해내고 서울-평양 사이에 핫라인을 개설, 운영하는 등 괄목한 성과를 내었다. 김영삼 정부는 2,0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사용했음에도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북한농업 지원사업은 농업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는 북측의 요구에 따라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사업 추진과정에서 중앙정부에 비해 보다 다양한 형태로 남북한 지방의 주민들을 동참시킬 수 있어 상호 이질성을 극복하는 데 큰 효과를 창출하며 둘째, 정책적인 남북 경색과 무관하게 지속적인 사업진행으로 신뢰를 구축할 수 있으며 셋째, 지정된 지역 간의 지속적인 사업진행으로 남북한 지역 간 통합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넷째, 내구성 물자 지원, 산림병충해 방제 사업 등을 통해 농업생산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보전 측면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평가해보건대 그간 진행되어온 북한농업 지원사업의 목표에는 매우 높은 타당성이 있다. 먼저 인도적 식량 지원이 개발지원의 형태로 발전된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전개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도 매우 구체적이었다. 비료가 요구되었고, 농기계 수리공장이 필요했으며, 종자와 기술이 요청되었다. 이러한 지원은 남측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한편 굶주린 아이들의 눈망울에 대한 연민은 대북 인도적 지원, 나아가서는 농업 지원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대외 개방에 소극적인 북한정부도 농업 생산을 복구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두벌농사(이모작) 확대, 감자농사혁명, 종자혁명 등 새로운 기치를 내세우며, 적어도 이 분야만큼은 남한의 지원이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남북의 사업 당사자들은 매년 초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사업계획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이와 같은 이유들을 바탕으로 한 대북 농업 지원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잽현 가능성이 높은 목표였다. 구체성도 있었고, 국민적 합의도 충분했고, 북한의 수용의지도 드높았다.
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한농업 지원사업은 아직까지 많은 측면에서 극복되어야 할 한계가 있다. 첫째, 남북 간의 모든 행위가 그러하듯 정치적 상황 변화로 인해 사업이 예기치 않게 중단되거나 진행에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특히 핵문제와 미사일 발사로 대표되는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은 남북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며, 불안정성을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획기적 조치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를 극복하기란 매우 어렵다. 문제는 한번 중단된 사업은 재개 자체가 불투명하며 대부분의 경우 사업 중단으로 귀결되는 데 있다(권태진 2009b). 북한농업 지원사업 추진은 2009년 현재 몇몇 기술 지원을 제외하면 모두 중단된 상태다. 정치적 긴장 국면에서도 북한농업 지원사업이 ‘독립하여 지속적으로’ 추진될 숭 lT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통일농수산사업단 2009).
한편 그동안 북한농업 지원사업을 진행해온 우리 정부의 주관부처 문제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 내에서 북한농업 지원사업과 관련한 사업심의, 사업결정, 사업평가 등은 통일부가 주도해 왔다. 또한 통일부는 대북 지원 민간단체협의회를 통해 북한농업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민간단체와의 협력관계를 다졌다. 사실 농업분야의 주관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보조하는 역할, 다시 말해 농업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한 자문 및 협의에만 국한된 활동을 해왔다. 향후 북한농업 개발지원사업을 본격화하는 데는 사업진행의 형식적인 측면보다는 사업의 내용과 농업에 대한 전문성이 보다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므로, 그동안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던 농림수산식품부의 역할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이태호 외 2009).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