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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내가 나일 수 있는 것들
1부 오래된 통증 새끼손가락 옴망눈 못난이 손톱 잔인한 등 흉터 - 왜 그랬을까 엿듣다 아파하라 또 다른 엄마 찬란한 다리 목소리 손가락 흔들리다 2부 오래된 조각들 황금빛 시절 나는 아이러니다 꼭 그런 날이 있다 혹시 그는 베토벤이었을까 책에 대하여 꽃그늘 밑반찬 그 아이는 때때로 어떤 영화 봄비 오십니다 윗집 소리 신용 부적격자 그때 처음 비로소 나는 기뻤다 3부 이방인일 때 다가오는 것들 지금 나는 - 고요하다 이상할 만큼 익숙한 길의 왼쪽 아이셰 빈집 낯선 도시에서 - 부쿠레슈티 소피아 학교에서 어떤 발걸음 - 베를린 애니메이션 영화제 옥스퍼드에서 알프스 하이킹 늘 서툰 사람이라서 동화에는 마법의 힘이 있는 것 같다 |
저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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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의 왼쪽 모퉁이를 돌면
거기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의 왼쪽에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왜 나는 한가지 길밖에 몰랐을까. 익숙하고 편리한 게 전부가 아닌 줄 그때 이미 알았으면서 나의 오른쪽이 무너지고 있는 줄은 이렇게 몰랐다니.“ - 본문 중에서 오십대. 무너져가는 몸을 긍정하기 어렵고 믿기 힘든 나이 앞에서 작가는 말한다. 담담하게 이게 내 나이란다, 하고. 몸의 불균형은 진작부터 시작되었건만, 오른쪽 몸이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지고 나서야 몸이 내지르는 비명을 비로소 마주한다. 똑바로 걸어도 늘 다른 모양으로 닳는 신발 축처럼 내 뜻대로 제어할 수 없는 몸의 휘청거림들을.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독의 시간 안에 던져 놓는다. 다시는 이런 외로움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또다시 스스로를 유배하는 길로 떠난다. 어느 날 낯선 타지에서조차 늘 익숙한 길로 향하던 자신을 발견하곤 편리하고 익숙하던 오른쪽 길을 버리고 왼쪽 길의 생경한 풍경 쪽으로 향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주는 두려움은 도리어 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작가의 사유를 빛나게 한다. 낯선 길의 경계심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은 것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익숙한 길의 왼쪽 모퉁이를 돌아 펼쳐질 세상 앞으로 한걸음 더 내디딘다. “오른손잡이로 너무 오래 살았다. 이제부터는 왼쪽의 삶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겠다. 서툴고 느리고 두렵고 어색할 테지만 왼쪽 길에도 역시 도전할 만한 뭔가가 있지 않겠나.” - 본문 중에서 엄마를 긍정하지 않고도 쌓아 올릴 수 있었던 자존의 시간들 “정말 왜 그랬을까.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없다. 징글징글하게 말 안 듣는 년. 고집 센 년. 지 애비 닮은 년. 심지어 ‘넌 친구도 없지?’까지. 엄마에게 나는 이런 애였다.” - 본문 중에서 총 맞은 심장처럼 무너지던, 한겨울 들판에 벌거숭이로 홀로 서 있는 것처럼 평생 가슴이 아리고 슬픈 상처였던 엄마와의 불화. 지독하게 혼자였던 그때 그 상처를 다시금 헤집으며, 작가는 우리를 자신의 심장 한가운데까지 끌고 들어간다. 늘 내면의 자아를 웅크리게 하고 외롭게 만든 원인은 바로 엄마. 자식을 보듬는 품이 넉넉한 사람이 아닌, 기어코 가족을 지켜내려 싸워야 했기에 아픈 손가락이던 장녀를 제일 먼저 외면했던 엄마. 그의 솔직한 이야기와 아픈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슬픈 내면을 보호하고자 벽을 쳤던, 한 개인의 가장 깊숙한 속마음을 읽어내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날카로운 기록들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허구 속으로 도망치며 자신을 위로했던 작은 아이를 만난다.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관계는 잘못 꿰어진 단추처럼 어색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내가 엄마의 새끼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엄마의 나이가 되어갈수록 이토록 가슴이 저미는 모양이다. 내 살과 뼈가 엄마의 것이라서. 혹시 하필이면 내가 엄마를 가장 아프게 한 상처라서 엄마가 평생 그 흉터를 확인하며 살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이방인일 때 다가오는 것들 스웨덴 레지던스, 베를린 애니메이션 영화제, 한국·터키 수교 60주년 기념행사 등 작가는 세계 곳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사람들을 만났다. 터키에서 한글 편지를 건넨 한 명민한 젊은 여성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낯선 도시 부쿠레슈티의 호텔방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방송되고, 곳곳의 해외 젊은이들에게서 한류를 실감한다. 스웨덴 소피아 학교에서는 그의 요청으로 미리 한국 작품을 읽은 아이들과의 특별한 만남도 있었다.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어떤 동물을 가장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조금은 불순한 요청이 섞인 초대로 홀로 힘들게 알프스에 오르기까지, 작가는 만나는 모든 풍경을 낯설게 마주한다. 두고두고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은 남았고, 어디론가 다시 떠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은 되살아난다. 이렇게 가장 오래된 통증이었던 유년의 조각과 낯선 체험은 그의 뼈와 살이 되어 몸 어딘가에 남았다가 모두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었다. 『익숙한 길의 왼쪽』에서 작가 황선미는 우리 모두에게 아직 가지 않은 길을 나와 함께 걸어 보자고 뜨거운 손을 내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