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자본주의
2007년에 시작된 금융 위기에 직면해 일부 경제 평론가들은 "좀비 은행들"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즉, 긍정적 구실을 전혀 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의 금융기관들 말이다.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21세기 자본주의 자체가 좀비 체제라는 점이다.
주류 경제학의 약점과 한계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무능하다는 것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사건인 1930년대 대공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자 주류 경제학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 위기 전문가 중 한 명인 벤 버냉키는 "대공황을 이해하는 것은 거시경제학의 성배(聖杯)"라고 인정했다. 달리 말하면, 대공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정설 경제 이론은 시장 체제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정설 경제 이론은 그들의 폭리 행위를 공익에 기여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치켜세우는 반면 뭔가가 잘못돼도 그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 현존 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은 무조건 배제한다. 이것은 교육기관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데, 이 교육기관들은 자본주의의 모든 기구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
19세기 말의 신고전학파 창시자들(오스트리아의 멩거와 뵘바베르크, 영국의 제번스와 마셜, 프랑스의 발라, 이탈리아의 파레토, 미국의 클라크)은 정태적 체제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구축했다. 그들은 경제 전체를 길거리 시장과 비슷한 것으로 봤다. 즉, 구매자는 주머니에 든 돈으로 가장 값어치 있는 상품을 사려 하고 판매자는 자신이 가진 상품을 가장 비싼 가격에 팔려고 하는 시장 말이다. …
이런 이론에는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매우 비현실적인 견해가 내재해 있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이든 자본주의는 결코 정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길거리 시장에서 사람들은 판매 가격이나 구매 가격에 즉시 합의하지 않는다. … '가격 신호'는 생산이 끝날 때 사람들이 어떤 상품을 원할지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시작되기 전에 어떤 상품을 원했는지를 알려 준다. 신고전학파 이론에서 주장하는 동시성은 신화일 뿐이고, 그런 가정을 바탕으로 발전한 연립방정식은 실제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
정설 경제학은 사실상, 왜 어떤 것은 생산되고 어떤 것은 생산되지 않는지, 왜 누구는 부유하고 누구는 가난한지, 왜 어떤 상품이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데도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은 그것을 가질 수 없는지, 왜 어떤 때는 호황이고 어떤 때는 불황인지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냥 지금 어떤 것이 구매되고 어떤 것이 판매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타당성과 ≪자본론≫을 넘어서기
마르크스의 저작은 단순한 경제학 저작이 아니라 다른 경제학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이 체제에 대한 비판, 즉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그의 출발점은 자본주의가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는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 조건의 부단한 교란, 끝없는 불확실성과 동요", 끊임없는 변화 과정을 일으키는 동역학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성숙기 마르크스의 경제학 … 연구들은 오늘날 이 세계가 어디로 향하는지 이해하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필수적 출발점이 되고 있다. …
마르크스 자신의 설명이 불완전하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때는 마르크스 사후의 자본주의 변화를 다룰 때다. 그가 ≪자본론≫에서 지나가듯이 언급한 것들, 즉 독점의 성장, 자본주의 생산과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복지 서비스의 제공, 경제적 무기로 이용되는 전쟁이 지금은 매우 중요해졌다. 20세기 초 몇십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시 상황 때문에 이런 쟁점들 중의 일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창조적 사고가 새롭게 분출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논의들에서 "≪자본론≫을 넘어서는" 데 필요한 개념들을 도출하고 마르크스 자신의 설명에서 나타나는 간극을 채우고자 했다. …
과거의 어떤 생산양식과도 달리 자본주의는 전체화하는 체제로서('전체주의' 체제라고 쓰고 싶을 정도다), 전 세계를 경쟁과 축적이라는 광란의 리듬에 맞춰 춤추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체제 전체는 개별적 과정들(그 체제를 떠받치는)에 끊임없이 반작용한다. 자본주의 때문에 개별 자본은 노동자가 계속 일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노동력의 가격을 최대한 낮출 수밖에 없다. 자본들 간의 충돌 때문에 개별 자본은 끊임없이 축적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인 이윤율 저하 압력에 짓눌린다. 그래서 어떤 자본도 가만히 앉아서 현?을 유지할 수 없다. 때로는 자신들이 대대적인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더라도 말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을 주기적으로 큰 혼란에 빠뜨리는 체제이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드라큘라가 뒤섞인 끔찍한 잡종이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자신을 창조한 사람들의 통제를 벗어나서 그 창조자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간다. 바로 이런 통찰이야말로 마르크스와 다른 모든 주류 경제학파(정설파든 이설파든)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이런 통찰이 뜻하는 바는 오직 마르크스의 이론만이 21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려면 마르크스의 개념들을 이용해서 마르크스를 넘어서야 한다.
자본주의의 물신성 꿰뚫어 보기
사람들은 흔히 "돈의 힘" 운운할 때 마치 돈의 힘이 인간의 노동에서 나오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돈은 인간의 노동을 나타내는 징표인데도 말이다). 또는 "시장의 필요" 운운할 때 마치 시장이 다양한 인간의 구체적 노동 행위를 서로 연결하는 방식 이상의 그 무엇인 양 말한다. 그런 신비주의적 관점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악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를 두고 청년 마르크스는 "소외"라고 불렀고, 마르크스 사후의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화"(物化)라고 불렀다. …
자본주의는 소외된 노동이 계속 확대되는 체제라는 인식이 마르크스의 경제 저작을 관통하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사람들의 활력을 빼앗고 사물들의 체계로 변모해 사람들을 지배한다. 자본은 노동이 괴물로 변한 것이고, 자본의 목표는 오로지 자기 증식뿐이다. "자본은 죽은 노동인데, 이 죽은 노동은 흡혈귀처럼 산 노동을 흡수해야만 활기를 띠고, 산 노동을 많이 흡수할수록 더욱더 활기를 띤다." 바로 이것이 이전 사회들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성장의 동력을 자본주의에 제공한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끝없는 충동, 즉 축적을 위한 축적 드라이브에는 한계가 없다. 자본주의는 유럽 북서부 지역에서 출현한 이후 계속 촉수를 뻗쳐서 전 세계를 집어삼켰고, 그 과정에서 산 노동을 점점 더 많이 지배하게 됐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