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역적의 일당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알고말고! 내가 바로 역적 정여립의 오촌 조카라는 이유로 얼마 전 파직당한 전 전라우수사 안위요!” 상대가 안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수백은 두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위가 누구인가? 10여 년 전 역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일족이 폐족되다시피 한 정여립의 일가붙이, 그것도 오촌 조카라는 상당히 가까운 촌수의 친척이다. 그러니만큼 안위에게 있어 조정의 억지 역모 덮어씌우기와 그에 따른 연좌제 형벌은 실로 원한이 깊고 저주스러운 것이었다. 여기에 지난 전쟁 동안 안위가 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전란 후기, 안위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이순신의 심복이 되어 전투 때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명량에서 싸웠을 때 단 한 번 이순신을 두고 도주할 움직임을 보여 ‘안위야, 네가 군령 아래 죽고 싶으냐!’고 이순신의 질책을 받았지만, 그날도 결국 맨 앞에서 적진에 뛰어들어 용전분투한 바 있었다. 말 그대로 이순신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안위였다. --- p.17
좌수영 추격에 나선 우수영 전선들의 대열은 아까처럼 가지런하게 늘어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상선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각 전선이 최고 속도로 노를 젓다 보니 속도 차이가 생겼던 탓이다. 물러서는 좌수영 전선들이 방진을 해체하고 넓게 퍼지는 모습을 보면서 김억추는 신나게 호령을 내렸다. “역도의 수괴, 이순신의 좌선이 바로 저기 있다! 어서 뒤를 쫓아라!” 좌수영 군이 형성하고 있던 방진이 해체되면서 3열에 있던 통제사 상선은 이제 한 줄로 넓게 퍼진 다른 전선들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천자총통 최대사거리 바로 바깥 정도여서, 쏴도 맞히기 힘들었다. 김억추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이순신의 수자기를 가리키며 휘하의 장수들에게 추격 명령을 내리고 있는데, 이때 상대편 전선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병선군관이 느닷없이 고함을 질렀다. “아앗! 사또, 사또의 소집에 응하지 않았던 당진, 회령포, 가리포 전선들이 모두 통제사 진영에 있습니다!” “뭐야?” 김억추는 황급히 병선군관이 가리키는 왼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전라우수영 소속 군선 다섯 척이 좌수영 함대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잠시 입을 딱 벌리고 있던 김억추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안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