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식민주의적 제국(국가)이 인종화된 식민 주체와 소수자를 다루는 방법을 아주 유사하게 조정했다는 것이며, 이는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한 물질적이고 이념적인 필요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 가장 중요한 사실은, 미국과 일본의 총력전 체제가 공히 인종주의를 부인하고 거부하면서, 경멸당하는 인구들을 그 국가 공동체 안에 포섭하는 전략을 향해 결정적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는 총력전을 운영하며 나치 체제가 취했던 인구 관리의 해결책과 대조된다. 나치는 영토를 공격적으로 확장했으며, 배타적으로 분절되고 생물학적으로 상상된 ‘인종적인 복지국가’에 게르만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포섭시켰다. 그리고 이는 독일제국의 지리적 경계 내부와 외부에 사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구를 멸종시키면서 그들을 강제 노동자로 사용하는 일과 짝을 이루고 있었다. --- p.40~41
두 나라 정부가 이 유색인 병사들을 모집한 목적 중 하나는 그들이 인종적 평등을 신봉함을 세계에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차별적인 정책들을 철폐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조처를 취함으로써 인종주의에 저항한다는 증거를 선취할 필요가 있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극상, 탈영, 징병 기피, 군대 내의 인종이나 민족 갈등 등이 발생해 군의 효율성과 선전 계획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 p.59
나는 그러한 문화생산자들이 단지 일본의 식민 담론에 응답했던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 조선인들을 이미 완성된 일본의 담론에 대한 수동적인 수용자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협력자’라는 약한 말로는 일본의 국가적/식민주의적 담론의 윤곽을 이루는 데에 그렇게도 활발히 관계했던 주체들을 지칭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의 안정적인 위치를 위해 일본 내셔널리즘의 보편주의적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포용적인 차원을 최대한 확장시키면서 그 담론 생산에 참여했다. 미국 국내의 소수자들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전시 및 전쟁 직후에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미국의 내셔널리즘에 대항하면서 국가 공동체의 외부보다는 그 내부에서 나타났다. --- p.75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보완하면서도 각자 자신들이 예외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두 나라의 유사성을 충분히 고찰하지 못했다. 만일 우리가 계속 ‘미국학’이나 ‘일본학’ 등과 같이 국민국가에 초점을 맞춘 규범적인 지식 형태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나는 포개지고 얽힌 장들로 그러한 지식 형태를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시종일관 그러한 틀 너머를 바라보면서 상호 관여하며 서로 겹쳐진 국민국가들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p.79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을 전쟁영웅으로 만드는 일은 할리우드와 학자들이 가세하면서 전후에도 계속되었다. 통전기 전체에 걸쳐 일본계 미국인들 및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에 대한 기억을 재현하고 생산하는 정치학은 미국 내의 인종관리 정치학뿐 아니라 미국이 전 세계, 특히 아시아 유색인종과 맺은 관계와 지속적으로 연동되어 왔다. 내가 이미 이야기했듯이, 그리고 이 장에서 더 자세히 밝히겠지만, 우선 전쟁에서 이기고 그 후 계획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유색인 동맹국들을 획득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일본계 미국인들은 모범적인 병사이자 미국인으로 쉽사리 복권되었다. 이런 이미지들의 생산은 전후에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특히 냉전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 p.360
냉전 근대화론이 미국의 제국주의와 연결된 것이었음은 냉전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폭로되었다. 그러나 열전 시기부터 싹튼 미국의 아시아 헤게모니 쟁취 계획과 냉전 근대화론 사이의 통전기 연관성을 논한 연구는 이보다 훨씬 적다. 독자들은 2장에서 상당히 길게 분석된 1942년 9월의 메모에서 라이샤워가 이미 한 가지 계획을 제시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 계획에 의해 미국은 도쿄에 ‘괴뢰 정부’를 세우는 한편, 인종주의를 비난하는 국가로 스스로를 내세움으로써 평화를 쟁취할 것이었다. --- p.394
일본계 미국인이 모범적인 소수자라는 담론이 공적인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일을 설명해 주는 부차적인 요인은 국내의 상황을 넘어선 곳에서 찾아야 한다. ‘거의 백인이지만 완전한 백인은 아닌’ 우수한 소수자로서 일본계 미국인들을 평가한 것은 일본을 일종의 명예직 백인 국가로 구성했던 논리 및 그 역사적 시점과 일치한다. 우리가 보아 왔던 것처럼, 이미 1942년 여름이나 가을쯤에는 에드윈 라이샤워 같은 조언자들뿐 아니라 몇몇 민간과 군의 관료들도 일본을 미국의 동아시아 헤게모니 쟁취 투쟁의 잠재적인 동맹국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둘러싼 앞뒤의 시기를 지나면서 이 개념은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들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했으며, 이는 전후와 냉전기에 가속화되었다. --- p.393
그러한 담론은 젠더화된 위계로써 남자들끼리 여자들을 교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리고 이 여자 교환과 더불어, 젠더화된 관계를 통해 민족적 차이를 초월하는 일은 「너와 나』의 핵심 주제다. --- p.585
이광수의 미완 소설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말로』는 원래 1940년에 식민지 잡지 [녹기]에 5회에 걸쳐 연재된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은 「너와 나』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다. 히나츠의 영화 대본 및 이 책에서 논의된 다른 텍스트들처럼, 이 소설의 플롯은 천황과 국가를 위한 군 복무와 내선일체, 그리고 젠더화된 유대를 통한 민족적 차이의 초월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 「너와 나』와 마찬가지로, 민족을 넘어선 사랑과 우정이 식민지와 제국의 융합 수단이자 그 상징으로 작용한다. --- p.590
일본의 식민주의와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자에서 광신자로 쵸 카쿠츄(장혁주)가 전향한 것은, 그가 일본 여성에 대한 비판자에서 찬미자로 변모한 일 및 여성이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일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비전이 축소되는 일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조선인 남성들이 일본 내셔널리즘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그는 점점 더 조선인 여성들을 경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일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전전과 전시의 필요에 따라 내셔널리즘 및 식민주의를 젠더, 인종, 민족, 계급과 서로 얽히게 했었음을 밝히는 일은 지나간 과거와 관련해 중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와 관련해서도 중요하다. 그러한 시도는 탈식민주의적인 세계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식민주의적이고 내셔널한 근대성에 대한 우리의 질문을 심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 p.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