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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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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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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50g | 110*183*20mm
ISBN13 9791186561584
ISBN10 118656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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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여기서 한 번 더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고) 나는 저런 놈들한테 맞았다고 해서, 맞는 게 지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진짜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한 번 더 흐느끼고) 역시 너무 분해. 그렇게 분한 주제에 맞서 싸우지는 못해. 무서워서 맞서지는 못해.”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을 때, 나는 그가 또 다시 통곡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목소리가 고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건넬 적당한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속이 타면서도 조용히 모래에 검게 비치는 우리의 그림자를 보며 걸었다. 그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나와 싸운 이후로 그는 줄곧 겁쟁이였다.
“강한 게 뭐고, 약한 게 뭘까, 대체 뭘까… 그러게, 정말.” ---「호랑이 사냥」중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멍청하게도 잘 모르겠다. 다만 공포에 질린 날카로운 비명이 귀를 파고들어 정신이 확 들었을 때 나는 보고 말았다. 눈앞에, 우리가 있는 소나무 가지로부터 3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광경을 보았다. 한 마리의 검고 노란 맹수가 우리에게 옆모습을 보이며 눈밭 위에서 허리를 낮추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5~6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몰이꾼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옆에 총을 내던지고 양손을 뒤로 짚고 다리는 앞으로 뻗은 채 앉은 자세로 쓰러져 정신 나간 눈을 하고 호랑이 쪽을 보고만 있었다. 호랑이는 평소 많이들 상상하는 것처럼 발을 좁게 모으고 당장에라도 뛰어들 자세가 아니라 고양이가 물건을 갖고 놀듯이 오른쪽 앞발을 올리고 휘젓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설 듯 말 듯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확 들면서도 아직 꿈속에 있는 기분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때였다. 내 귓가에 빵 하는 세찬 총성이 울렸고 추가로 빵, 빵, 빵 잇달아 세 발의 총성이 났다. 강렬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진하려던 호랑이는 그대로 입을 크게 벌리고 날뛰며 뒷발로 잠시 일어섰지만 바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눈을 뜨고 난 후 총성이 울리고, 호랑이가 일어서고, 다시 쓰러질 때까지 고작 10초 정도 사이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먼 곳에서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호랑이 사냥」중에서

그는 문득 그 사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후보를 청년과 비교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했다. 조선이라는 민족을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의 직업, 지금 돌아갈 곳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떠올렸다. 사실 최근 들어 그의 마음은 ‘뭔가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것 같은, 이유 없이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였다. 완수할 수 없는 의무가 주는 압박감이 언제나 머리 한구석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듯했다. 하지만 그 묵직한 압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따져볼 생각은 없었다. 아니, 두려웠다. 스스로 자신을 각성하는 게 두려웠다. 스스로 자신을 자극하는 게 무서웠다. 그렇다면 왜 무서운 거지? 어째서? 그 대답으로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한 처자식을 떠올렸다. 그가 직업을 잃는다면 가족은 어떻게 되는가. 하지만 ‘그렇군. 그건 그럴 만해. 하지만 그것뿐이야? 공포의 원인이 그것뿐이야?’라고 묻는다면…. ---「순사가 있는 풍경」중에서

그때였다. 갑자기 군중 속에서 하얀 옷에 헌팅캡을 쓴 남자가 달려 나와 곧바로 총을 쥔 손을 뻗어 앞 차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나가지 않았다. 남자는 당황해서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탄환이 뒤를 따르던 차량의 유리창을 깨고 사선으로 차 안을 가로질러 작렬했다. 놀란 두 대의 차량은 급히 속력을 높이고 질주해 갔다. 순간 군중은 넋이 나가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관들은 본능적으로 괴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괴한은 아직 총을 들고 있다. 괴한과 경관은 서로 노려보았다. 괴한은 스물 네다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마른 체형의 청년이었다. 그도 총을 꽉 쥔 채 충혈된 눈으로 잠시 경관들을 노려봤다. 그러다 갑자기 모자를 벗어 돌바닥에 있는 힘껏 내동댕이치더니 자포자기한 듯 껄껄 웃고는 갑자기 손에 쥔 무기를 군중 속으로 내던졌다. 사람들은 우르르 물러났다. 경관들도 순간 깜짝 놀라 몸을 사렸다가 내던진 총을 보고는 달려들어 괴한을 제압했다. 그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핏기가 가시고 미세하게 떨려오는 입가에 경멸을 담은 미소를 띠운 채 그는 경관들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이마에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왔다. 그의 눈에는 이미 당황과 흥분의 흔적이 사라지고 절망에 가까운 침착함과 연민의 조소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의 팔을 붙잡고 있던 조교영은 그 눈빛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범인의 눈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교영은 평상시에 느끼는 그 압박감이 스무 배는 되는 무게로 자기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체포당한 것은 누구인가?
체포한 것은 누구인가? ---「순사가 있는 풍경」중에서

이슈디 나부, 너는 보르시파의 지혜의 신 나부가 부리는 문자 정령들이 가진 무서운 힘을 모르는 것 같구나. 문자 정령이 어떤 사안을 포착해서 자신의 모습으로 바꾸면 그 사안은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된다. 반대로 문자 정령의 힘이 담긴 손에 닿지 않은 것들은 무엇이든 간에 존재를 잃고 말지. 태고 이래로 『아누 엔릴의 서』에 기록되지 않은 별이 왜 존재하지 않는지 아느냐? 그것들이 『아누 엔릴의 서』에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두크의 별(목성)이 천계 목양자(오리온)의 경계를 넘어가면 신들의 분노가 내리는 것도, 월식 현상이 나타나면 아모리인이 화를 입는 것도 모두 옛 문서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대 수메르인이 말이라는 짐승을 몰랐던 것도 그들 사이에 말이라는 글자가 없었기 때문이지. 문자 정령의 힘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너나 내가 문자를 사용해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우리는 문자 정령에 혹사당하는 하인이다. 하지만 정령이 가져오는 피해가 상당히 심각하지. 나는 지금 그것들을 연구하는 중인데, 자네가 역사를 기록한 문자에 의심을 품게 된 것도 말하자면 자네가 문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정령이 내뿜는 독기가 옮았기 때문이네.
---「문자 사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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