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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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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90g | 128*208*20mm
ISBN13 9791187273035
ISBN10 118727303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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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자의 발아래 있는 것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다 지나온 길 위의 흔적,

빛에 민감한 그는 실체 뒤에 서서 언제나 또 다른 크기의 무엇을 준비 한다 다시 가야할 길이 저만큼 휘어졌다

자세히 보면 한평생 우리는 커다란 실체 하나를 헌 신발처럼 그렇게 끌고 왔구나, ---「그림자를 위하여」중에서

지느러미만 잘린 귀상어가 바다로 다시 던져지고
구멍 난 몸에 코 잘린 코뿔소가 초원에 버려졌다

코가 향한 방향으로만 순리대로 살아온 이들에겐
더 이상 GPS가 필요 없어졌다

순풍을 따라만 가는 데도 돌부리가 있고
법을 지킬수록 더 가난해진다는 낮은 이곳

땅에서 조금만 높아도
거기는 하늘이라서
날개가 있는 그들의 세상이라서
그림자 방향도 제 마음대로 했어
역풍도 마음껏 즐겼어

겨드랑이 움츠리고 순풍 따라 가는 이들 앞은
무수한 목구멍, 전환할 수 없는 방향

관성에너지는 위치에너지 아래로 자꾸 기어들어갔고
귀는 더 고분하게 눈은 더 나지막하게

단지 180도 방향의 차이
그거 빼면 모두 똑 같은 조건인데
날개 따위가 뭐 별거냐는
성자(聖者)의 기도소리를 오늘 또 들었어 ---「바람의 방향」중에서

땅과 7할의 시간이 직각으로 서 있었고 평행으로 누웠던 3할의 시간이 육신의 시간이었다(각도의 시간)
▷ 날숨으로 폐가 비워지자 누운 채로 4면체의 나무 통속으로 이관되었다(네모의 시간)
▷ 산화와 냉각과 분쇄 과정을 거쳐서 열기와 수분 다 제거된 한 줌만으로 둥근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동그라미의 시간)
▷ 타인의 마른 눈물 수집하다가 사진틀 속에 갇혔다(평면의 시간)
▷ 애당초 누구의 눈물이었는지 누군가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는지(망각의 시간)
▷ 하릴없는 공간과 시간 멈추니 펼쳐지는 불구속(허공의 시간) ---「시공 변천사」중에서

나 없이 곧은 삶이 가능하겠냐고
겉치레만 하고 있으면 다냐고
뼈가 살을 조롱했다

살은 말없이 떠났고
뼈는 전신마비가 되어 누웠다

허물로만 여겼던 살의 부재가
시리도록 그리운 날
직립보행의 어제를 뼈는
오래도록 추억하며 울었다

살은 오지 않았다 ---「뼈가 눕다」중에서

네 한순간의 그 격분
내 소롯이 받아 주리라

하나, 찾아가는 땅 속 그 은신처 앞
구리 침 한 번은 맞아야 한다

그렇게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죄
번개처럼 빠르게 숨겨주지 않느냐,
---「피뢰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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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래 시인의 시편들에는 고향의 하늘과 별이 있다. 늙은 언덕과 옛사람이 있다. 시간의 강에는 빛과 소리의 잔물결이 일렁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있다. 높이 차오른 달빛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자식의 이름을 길게 부르던 어머니의 그 음성처럼.
옛 시간을 돌아보면 “헌 신발처럼 그렇게 끌고” 온 것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 속에는 매화와 박꽃이 고요히 피어 있고, 나뭇가지처럼 골목이 나 있고, 친근한 얼굴들이 설핏 비치고, 묵음처럼 바위처럼 사랑이 오래 앉아 있다. 회상이 따뜻한 이유요, 이 시집이 정답고 포근한 까닭이다.
-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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