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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잊혀진 전쟁의 상흔

베트남, 잊혀진 전쟁의 상흔

이용준 | 한울 | 2019년 03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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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58g | 153*224*20mm
ISBN13 9788946066137
ISBN10 89460661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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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에도 베트남은 한 번도 강대국에게 평화를 구걸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2,000년의 역사를 통틀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한 번도 회피하거나 주저한 적이 없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섣부른 타협을 하지도 않았고, 강대한 적국에 대항하기 위해 다른 어느 나라의 힘을 빌리려 하지도 않았다. --- p.34

우리는 교장을 말리려 애쓰는 교사들을 오히려 만류하고 30여 분 동안 노인의 피맺힌 절규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그의 수십 년 한이 조금이나마 풀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환영하라는 지시를 상부로부터 받았을 텐데 오죽하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까 생각했다. 연설이 끝나자 그는 기진맥진하여 교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 --- p.116

나는 여전히 연신 흐느끼며 눈물을 닦고 있던 늙은 베트남 교육부 직원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마당 한가운데, 즉 우리 바로 앞 십여 미터 거리에 뭔가 위령비같이 생긴 것이 세워져 있었다. 예감이 아주 좋지 않았다. 설마. ‘하느님, 제발 이곳만은 안 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 p.143

참석했던 유지들이 교대로 인민위원장의 형님인 내게 와서 축하한다고 건배를 제의했다. 눈물 나도록 우정 어린 제스처였다. 그 자리에서 과음으로 순직하는 한이 있어도 그들의 제의를 사양할 수 없었다. 함께 마셔주기만 해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과거사는 소리 없이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주는 대로 모두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마셨다. --- p.165

먼 훗날, 베트남전쟁을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다음 세대에 그곳을 방문하게 될 한국인은 한국 정부가 왜 그런 구석진 곳에까지 가서 학교를 지어야 했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처럼 인구 밀집한 대로변에 번듯한 학교를 짓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벽지마을 구석의 옹색한 부지에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학교들을 지었는지 이상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 p.218

우리가 그처럼 베트남 중부지방의 전쟁 피해 지역들을 누비고 다녔던 것은 과거사에 대한 참회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어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고자 했던 일은 단 한 가지, ‘한국민은 베트남인의 친구’라는 사실을 그곳 주민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과거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어떠하든 지금의 한국인은 그들의 친구이며 그들에게 친구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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