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은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원전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당분간 원전 설비용량이 더 늘어나고 수십 년에 걸쳐 원전 축소가 진행되는 더딘 탈원전 정책도 이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이다. 원전 없는 나라를 상상하지 못하는 이들의 말처럼 우리에게 원전은 정말 불가피한 선택일까? 흔히 원전 건설의 이유로 꼽히는 원전의 경제적 비교우위나 전력수요의 지속적 증가, 에너지 안보 강화의 필요성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적절하지 않다. 단적으로 원전의 경제성은 인·허가 및 건설 기간, 기술의 표준화 수준, 외부 비용의 내부화 방식 등에 의해 좌우되는 정치경제적 제도의 산물이다. 따라서 기술혁신과 규제 제도, 사회적 저항을 고려하지 않고 원전의 경제성을 논하는 것은 논란을 키울 뿐이다. 또한 전력수요의 증가는 원전을 건설하는 이유인 동시에 지속적인 원전 건설의 산물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원전을 계속 짓기 때문에 전력수요가 특정 방향으로 증가하는 것일 수 있다. --- pp.14~15
미국 정부가 중수로 기술(중수로, 중수 생산 시설, 중수형 연구로)의 채택을 핵무기 개발 의사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중수로를 추가 도입할 수는 없었다(CIA, 1978). 그러나 이중적 핵기술 개발에 대한 전략적 고려와 중수로 개발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연구개발부문의 기대가 맞물리면서 중수로는 선택지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이것은 기술자립을 우선시하는 연구개발부문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전력공급부문 간의 잠재적 균열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여기에 발전설비산업의 복잡한 기술 제휴선까지 고려하면 원전모델의 미래는 예측 불가였다. --- p.115
원전 국산화·표준화 구상은 원전 산업구조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실행계획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원전의 경제성은 의심받았고, 설비계획은 계속 축소되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한국중공업은 사업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원자력연구소의 경우 연구?사업 병행 모델에서 조직의 활로를 찾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력공기업집단의 형성은 설비제작부문과 전력공급부문의 조직적 목표를 조율하고 연구개발부문을 하위 주체로 편입시킴으로써 막연하게 존재하던 기술자립 패러다임이 국가적 차원의 국산화·표준화 계획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서구 원전산업의 침체까지 맞물려 공격적 기술추격을 위한 기회의 창이 열렸다. 원전의 경제적 비교우위는 의문의 대상이 아니라 신속한 원전 국산화·표준화를 통해 선취해야 할 과제로 전환되었다. --- p.167~168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의 신설은 예산 확보의 불확실성을 크게 줄였다. 애초 기대했던 3원/kWh보다 적긴 했지만 원자력발전을 지속하는 한 안정적으로 연구개발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은 한전의 간섭 없이 과학기술처와 원자력연구소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부문은 상용화가 어렵고 경제성이 낮은 분야라 해도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한전이 지원을 꺼렸던 고속증식로 및 중·소형 원자로 개발, 듀픽 등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 p.237
원전 의존적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발전주의적 에너지 공공성이 꽃피었다. 전력공기업집단은 원전 국산화·표준화를 이끌며 ‘에너토피아’라는 사회기술적 기대를 실현시키는 데 앞장섰다. 전력공기업을 매개로 한 가격 통제가 가능했기에 예기치 않은 원전 설비 과잉은 값싼 전기소비사회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전력공기업집단을 통해 값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보편적인 전기 소비가 가능한 사회, 누군가는 이 사회를 에너지 공공성이 실현된 사회라 부를지 모른다. 다만 공론장과 시민성, 생태적 지속가능성 등 공공성에 함축된 다른 요소들이 누락된 만큼 ‘발전주의적’ 에너지 공공성이라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 공공기관을 통한 보편적 전기 소비는 실현되었지만 정책 결정 과정은 폐쇄적이었고 값싼 전기소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숙고는 없었다. 원전을 매개로 에너지 공공성은 발전주의의 문턱을 넘었지만 민주주의와 생태주의 앞에서 멈춰 섰다. --- p.256
갈등의 배경에는 사회적 합의기구, 나아가 운동 전략에 대한 입장 차이가 존재했다. 다시 말해 열린우리당 등을 매개로 정부와 협상을 추진하자는 쪽과 정부가 방폐장사업을 중단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들러리 서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이것은 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 한 협상파와 영광 등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 사이의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 지역단체들은 “지역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서울 단체만 협의하고, 지역과는 별개로 정부에서는 환경단체와 수없이 논의했다고 할 때는 중간에서 입장 취하기 어렵”고, 그 사이 “지역은 쑥대밭”이 된다며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에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반핵국민행동, 2004b). 이들이 원론적인 차원에서 합의기구 구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국면에 대한 판단이 서로 엇갈렸고, 이를 충분히 내부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까지 반핵국민행동은 각 지역과 단체별로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에 다시 논의하자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리기를 반복했다. --- pp.320~321
방폐장 부지 선정 이후 제도적 공간의 개방은 어디까지나 기술관료적 접근법의 정당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혹여 제도적 개방으로 인해 원자력계의 이해관계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구체화되면 의사결정 과정은 다시 폐쇄되었다. 즉, 신규 원전 건설 등 원전 축소가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거나 원전 분야 연구 개발이 위협받을 것으로 예상될 경우, 반핵운동의 참여는 다시 차단되었다. 정부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거나 원전 추진을 위협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환경단체의 참여를 허용한 것일 뿐 의사결정권을 공유할 의사는 없었다. 하지만 반핵운동이 현저하게 약화된 상황에서 소수의 전문가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의 한계가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반핵운동진영이 참여를 거부할 명분은 마땅치 않았다. 이로 인해 소수의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참여의 딜레마를 안고 거버넌스 기구에 참여하여 미시적인 전문성 경합을 벌이다 논란 끝에 탈퇴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정부가 참여적 절차를 활용하고 찬반 대결이 미시적인 전문성 경합으로 치환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대중적인 반핵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한층 더 어려워졌다. 이처럼 기술관료적 접근과 참여적 접근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정부는 저항의 강도를 낮추고 원전 추진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부는 반핵운동을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원전 추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연한 통치 전략으로서 혼종적 위험 거버넌스의 활용법을 찾았다. --- pp.353~354
1970년대 이후 원전 산업구조와 규제양식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원전체제의 분기가 가속화되었다. 원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규제 영역을 아우르는 사회기술적 조정이 이뤄져야 했다. 단적으로?산업구조가 안정화될수록 반핵운동에 대한 대응력이 높아졌고 규제 강화로 인한 원전의 경제성 하락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반대로 규제양식의 쟁투적·독립적 성격이 강해질수록 원전 건설이 지연되고 규제가 강화되면서 원전의 경제성이 하락했다. 따라서 원전체제의 발전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전 산업구조와 규제양식의 공진화를 살펴봐야 한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초기 단계에서 각국의 원전 추진 전략이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공통적인 현상에 가까웠다. 일정 시점이 지난 뒤 반핵운동이 확산된 것도 유사했다. 그러나 추진 전략을 실행하는 세력과 반핵운동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기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가 원전체제의 발전 경로를 분화시켰다. --- p.391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산업화 및 산업보조화 전략의 측면에서 기존의 원전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 없는 탈핵에너지전환을 추구했다.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고려할 때 값싼 전기소비가 한계에 도달했으나 정부와 여당은 산업계와 상당수 시민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전기요금 현실화를 회피했다. 지난 몇 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의 상대적 인상 폭이 컸던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았다. 전력 및 에너지 소비의 왜곡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원가회수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산업용 경부하 요금제조차 건드리지 않았다. 가격 현실화를 주저한 만큼 수요관리로의 전환은 선언에 그칠 공산이 컸다. 원자력계와 보수진영은 이 지점을 파고들며 값싼 전기소비사회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한편, 원전산업 육성에 대한 미련은 탈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의 병행이라는 논쟁적 상황을 초래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정책의 분리를 꾀했다. 2018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UAE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 완공식에 참석해서 바라카 원전은 “공사 기간 준수, 안전성, 경제성 모든 면에서 모범”이라고 평가하며 “바라카 원전 건설 성공에 힘입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수주를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18a). 원자력계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의 원전을 누가 믿고 사겠냐며 원전 수출을 위해 탈원전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기술이 사장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들에게 원전 수출은 탈원전 정책을 흔들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 pp.420~421
복잡한 퍼즐을 쉽게 풀기는 어렵다. 오히려 에너지 전환에 대한 파편적인 시각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갈등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탈원전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질 거대한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탈핵에너지전환과 맞물린 문제들을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탈핵에너지전환이 그리는 미래가 봄에는 미세먼지,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한파, 그리고 일 년 내내 원전 걱정을 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탈원전과 탈석탄, 기후변화 대응을 종합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탈원전과 탈석탄, 기후변화 대응이 결합될수록 성장 모델의 전환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에너지 산업이 자본주의적 혁신을 주도하면서 획기적인 탈동조화(decoupling) 기술을 개발하고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지배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탈핵에너지전환이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다거나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혹여 재생에너지 시장을 선도한다고 해도 경제성장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다면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더 많이 쓰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른바 ‘성장 없는 번영’의 길을 찾지 못한다면, 탈핵에너지전환은 끊임없이 논란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 압축적 전환을 이룰 수 있을까?
--- pp.44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