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과 잼에 관심을 보이자 엄마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신 분답게 50년대부터 사과와 설탕의 분량 및 그 결과를 정확한 수치로 매년 기록해 온 낡은 저장법 노트를 내게 주셨다.

처음에는 별 의미 없이 수치 정도로만 보이던 이 숫자들이 이젠 모든 페이지마다 엄마의 인생에 있어 짧지만 평온한 순간을 담고 있음을 나의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깨닫고 있었다.

마치 엄마의 발자국을 뒤에서 조금스럽게 따라 밟고 갔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나는 러셀의 가게로 다시 와 흑백 암벽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보고 있었다. 엽서으 제목은 <우유병 속의 암소>였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암소나 우유병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유독 야전 모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러셀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보이며 목성으로 가는 우주선에서 덮었다는 야전 모포를 들어 보이며 얘기했다.

「물건이란, 당신이 가지고 있을 때에만 당신 물건입니다. 영원토록 당신의 물건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함께 할 때 즐기고는 다음 임자가 될 사람도 그 물건을 똑같이 소중히 여겨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

문득 이 철학을 인간 관계에서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다시 그 엽서로 시선을 옮겼고, 암소가 커다란 우유병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