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도승객의 다수는 출퇴근, 비즈니스, 혹은 친족방문의 용도로 철도를 이용한다. 그래서 객실은 늘 혼잡하고 시끄럽다. 시간에 쫓기는 이들이 많아 고장이나 연발착에 민감하고, 느긋이 철도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소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월 28일, 복선전철로 모습을 바꾼 경춘선에 준고속 2층열차인 ITX-청춘이 투입되어 낭만노선의 명맥을 잇고 있다.
국내에도 관광열차가 있다. 정동진 해돋이, 동백꽃, 매화, 벚꽃, 철쭉 등의 봄꽂놀이, 태백산 눈꽃, 내장산 단풍놀이 열차는 당일 플랜이고, 부산, 경주, 한려수도가 포함되면 1, 2박 플랜이다. 비싸지만 적은 승객이 여러 날을 차 안에서 보내면서 사귀는 수준급 플랜은 없다. 유명 경승지 노선부터 단계적으로 개량하여 이들 노선을 이용한 철도여행 상품을 기획해보자. 강원도와 함경남·북도를 잇거나, 동해안 일대 해변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여행 상품을 만들어보자. 역사가 담긴 한국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도록 플랜을 구상한다. 잘만 하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꽤 끌어들일 수 있다. 이 사업은 남북 철도협력 차원을 넘어 북한의 경제적 자립과 남북 간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마도 2013년 초에 등장할 정부는 현 정부보다 대북 관계에 훨씬 신축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의 남북 간 긴장 강화가 반시대적, 반역사적 흐름이었다는 사실로부터 남북철도협력은 시대흐름에 맞고 역사에 순응하는 상생의 장이 될 것이다. 2020년대의 한반도, 철도가 출퇴근이나 업무용이 아닌 여행수단으로 널리 이용되는 모습을 꿈꿔본다. --- 「1장 철도에는 비전과 로망이 있다」 중에서
고속철도를 보유한 국가는 많다. 일본, 프랑스, 독일은 자체 기술로 고속철을 개발하였고,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한국, 대만 등은 이들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고속철을 도입하였다. 지금이야 빠르고 안전하며 수송 효율과 에너지 효율이 좋은 고속철도로 알려졌지만, 일본과 프랑스에서 구상이 제안되던 무렵에는 정치권과 각계의 반대에 부딪혀 건설이 좌초할 뻔하였다. 최초의 고속철인 신칸센 구상은 1950년대에 일본에서 제시되었는데, 이를 구상한 주역이었던 국철(현 JR그룹) 총재 소고 신지와 국철의 기사장 시마히데는 그들의 구상을 터놓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는 자동차와 고속도로, 항공기 시대의 도래가 회자되던 무렵이라 신칸센 얘기를 꺼내면 ‘왠 때 아닌 철도?’라는 비난의 여론이 되돌아왔다. 또한 국회의원 등 정치가들도 소고의 신칸센 구상을 반대하였다. 이들은 출신지역의 철도개설과 적자노선의 보수정비예산이 신칸센 사업 때문에 축소될 것을 우려하였던 것이다. 이때 국철 출신으로 재무장관이었던 사토 에이사쿠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우니 세계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자”는 것이었다. 소고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산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앞으로 고유가 체제가 지속하여 지구촌 곳곳에 고속철이 들어서면 환경이 개선되고 교통사고 희생자가 많이 줄 것이다. 초기 건설비용이 많이 들지만 세계경제가 성장하면서 주요국의 고속철도망이 확산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수도권 순환고속철과 전국 순환고속철이 선보일지 모른다. --- 「2장 철도발전은 차량제작업과 고속철도망 활용에 달려 있다」 중에서
KTX 개통 후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국민들이 갖는 철도 이미지는 아직도 꽤 어둡다. 역사에는 노숙자와 취객이 빈둥거리고 객실은 시끄럽고 화장실에선 악취가 풍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지의 역사는 면모를 일신하였지만 여전히 노숙자와 취객의 안마당이다. 필자는 공사가 대학생 등을 도우미로 채용하여 러시아워 이외 시간대에 역사와 객실의 질서유지 및 정숙도 제고 계도 요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들이 계도활동에 나서면 객실방송을 늘려 힘도 실어주자. 시간이 지나면서 도우미의 역할이 고객들에게 각인되고 철도와 철도여행의 품격이 차츰 높아질 것이다.
길어도 3시간 전후인 여행을 마친 고객 중 일부는 여행 중의 객실소음으로 꽤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조용하고 안락한’ 여행의 보장 없이 항공기, 고속버스, 승용차 고객을 철도로 끌어오는 것은 난제다. 그런데 노숙자와 객실소음 등 철도의 낮은 품격을 꼬집는 고객의 지적에 공사는 의외로 소극적이다.
철도를 이용하면 정확하고 안전한 여행은 물론 ‘조용하고 안락한’ 여행까지 즐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확산되면 지금보다 10% 이상, 고객이 늘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도우미 운영에 들어가는 지출을 넘는 수입이 기대되는바, 이것이 바로 윈윈 전략으로 환경개선과 교통체증 완화, 노숙자 지원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 「3장 철도서비스의 핵심은 고객만족 제고다」 중에서
언제 대형 사고가 터질까 싶어 요즘 철도관계자들의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2011년 6월 6일 새벽에는 의왕역 횡단 지하차도 공사장에서 대형 파일천공기(무게 60톤, 길이 21m)가 전복되면서 가선을 절단하고 선로까지 덮쳤다. 이로 인해 출근시각대를 포함하여 경부선 선로의 75%가 5시간여 불통되었다. KTX를 위시한 철도 전반에서 고장과 사고가 빈발하자 코레일은 같은 해 5월 25일, 20여 명의 외부인으로 구성된 철도안전위원회를 발족시켜 그간의 안전대책과 안전시스템의 점검 평가에 나섰다. 하지만 근래 발생하는 고장과 사고의 특성을 살펴보면 근본적이고 중장기적 시각에서의 대처가 필요한 사안이 대부분이다. 현장에 밝지 못한 학자 중심의 그것도 단기간의 위원회 활동으로 수습될 수 있는 사안은 많지 않아 보인다.
철도안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국토해양부를 필두로 코레일, 철도시설공단, 철도기술연구원, 현대로템과 관련 중소기업 등 관련자 모두가 긴장감을 갖고 해법 모색에 매진해야 한다. 철도안전위원회 같은 임시조직의 진단과 평가, 처방 차원을 넘어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KTX 선로 등 주요 선로 주변 공사장에는 방호공 설치와 감시자 배치를 의무화하고 이들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도록 감리·감독체계를 재정비·강화하여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 지금은 모두가 나서 철도안전을 다지고 다져도 부족할 때다.
--- 「4장 고객이 안심하고 탈 수 있는 철도를 만든다」 중에서
한국철도는 고속철도(KTX) 개통 후에도 여객수송분담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코레일 직원 1인당 손실은 연 4천만 원에 이르고 있다. 기업다운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면 직원 모두가 받은 급여를 공사에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문제는 손실 규모가 매년 커지고 채무가 누적되는데 공사나 건교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한국 철도는 전 소요예산 중 자체수입이 50% 미만으로 절반 이상인 2조 원 상당액을 정부지원이나 차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낮은 자체수입비율은 민영화 등 철도구조조정 대상 목표선인 60~70%를 훨씬 밑돈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공사전환에 따른 인건비와 KTX 운행관련 비용이 크게 증가한 반면 영업수입이 별로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면서 단행된 철도구조조정이 철도적자를 대폭 확대시켰고 조기 반전이 힘들다는 점에서 KTX에 이어 철도구조조정도 ‘정책실패’ 사례로 거론될 지경이다.
일본, 독일, 영국 등 철도 개혁 국가의 경험은 ‘인력감축 없는 철도 혁신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3만의 공사인력은 장기적으로 2만 수준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 경영상태가 최악인 공기업에 연금포함 급여가 연 7~8천만 원을 넘는 이들이 차고 넘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공무원연금 수급(자격)자가 1만 명을 넘으니 인력 감축과 재배치 등의 작업은 다른 기관보다 용이할 것이다. ‘철도는 밑빠진 독’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철도관계자들은 향후 1~2년의 허니문 기간 중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철도, 요구대로 지원되지 않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지 모른다.
--- 「5장 철도 운영적자 줄여 국민부담 덜어준다」 중에서
최대 철도기업인 코레일은 만성적인 영업적자 체질에서 벗어날 조짐이 없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레일의 민영화, 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의 통합(건설부문 제외), 민간투자 경천철의 총괄기관 신설, 철도정책과 산업 전반의 재편방향에 대한 국내외 컨설팅기관의 자문 등 여러 대안이 검토될 수 있다. 짐작컨대 경쟁력 강화의 구체적인 방향은 2013년 2월의 신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그 방향에는 철도 차량과 신호시스템 분야의 기술경쟁력 강화, 투자재원의 유효활용, 철도운영에의 민간 활력 도입, 산업 내 리더십 회복 등이 포함될 것이라는 점이다. 관련하여 필자는 2010년대 철도 개혁의 흐름을 ‘집중과 슬림화’로 규정하고 싶다. 그간의 분할·분립 과정에서 철도부문이 필요 이상으로 분권화되고 예산과 조직이 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과 슬림화로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추가적인 경쟁력 강화 추구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철도기관의 수장 경험자와 현장에서 일하는 간부 철도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건설비리로 복마전으로 불리웠던 구 철도청이다. 공기업으로 바뀐 지금은 경영공시 등 제도와 주변 여건이 많이 달라졌다.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실현가능한 통합안을 모색하자. 그간의 철도 개혁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가 유효한 전략의 하나일 수 있다. --- 「6장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 혁신 통해 경쟁력 높인다」 중에서
2006년 3월 우리 철도노조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2003년 6월 이후 32개월 만에 재개된 파업은 철도의 공공성 강화와 구조조정 반대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나흘을 버티지 못하고 철회되었다. 명분이 약해 내부 흡인력과 외부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게 주된 이유였다. 정규직 중심의 공사노조가 현업에 복귀했지만 비정규직인 KTX 여승무원들이 3주 이상 농성을 지속하면서 노노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노조는 2002년 3월, 4월의 파업에서 민영화 반대, 인력충원, 해고자복직 등을 주장하였고 2003년 6월 파업에서 공무원연금 승계, 고속철도 건설부채 정부인수 등을 요구, 상당 부분을 관철시켰다. 정규직 노조의 이 같은 집단 실력행사가 2005년에 발족한 공사의 외주확대와 이로 인한 비정규직 양산의 한 원인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행히 이번 파업을 통해 대형 노조의 ‘밀어붙이기식’ 파업이 언제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정부가 다소의 혼란과 피해가 있더라도 노사 간의 자율적 결정을 지켜보면서 위법자 단속에 충실했다는 점도 주목할 변화다. 5월 말의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지만 법무, 행자, 노동, 건교부 등의 정부부처는 관행이던 물밑교섭을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처리를 강조, 지금까지와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솔직히 말해 노조원 대다수가 포함된 정규직의 기득권 양보와 회사 측의 배려 없이는 여승무원 등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 힘들다. 노조가 여승무원의 정규직화를 진심으로 지지한다면 스스로 일정 수준 양보해야 한다. 슬로건뿐인 지원은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여성단체 역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정치가와 정부, 사측 외에 정규직 노조를 함께 다그쳐 양보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에 의한 ‘기회의 공평’ 이상으로 ‘보상의 공평’ 확보가 화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 「7장 철도인의 처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 중에서
서울의 땅 밑을 달리는 지하철, 하루 이용객이 700만 명을 넘어 이용객 수로 보면 세계 3대 지하철의 하나다. 평소 지하철과 전철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요즘 승객이 부쩍 늘었음을 실감한다. 자동차 연료 값이 높아지면서 자가용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는 지하철 객실 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줄줄 흐르던 땀이 금방 식는다. 그래서 그런지 출퇴근 시각이 아닌 때에도 서울의 지하철과 전철 안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지하철 승객 중 노인 비중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일부 노인은 소일삼아 지하철과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고 출퇴근 시각에도 승차하여 혼잡도를 가중시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싼 요금과 폭넓은 무임승차제로 인해 지하철이 노인과 학생으로 붐비면서 비즈니스맨이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교통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의 주요 도시 중 서울만큼 지하철 요금이 싼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도쿄와 뉴욕도 2천 원 전후로 우리보다 높다. 요금이 높아지면 뉴욕 지하철 등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이용객이 줄 수 있지만 서울 지하철의 경우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004년 7월에 도입된 버스와 지하철 환승요금체계로 시민들의 지하철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에서는 이용객 증가 못지 않게 이용객의 쾌적도 유지가 중요하다. 정상요금을 내고 이용하는 비즈니스맨 등이 대거 몰려들 때 서른일곱 살(2011년 기준) 서울 지하철의 오랜 꿈인 흑자경영 전망도 함께 돌아올 것이다. --- 「8장 지하철과 전철, 조금만 더 잘하면 세계 최고다」 중에서
운행 중 무사고를 자랑하던 신칸센 차량이 2004년 10월 23일의 니가타조에쓰 지진으로 인해 주행 중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도쿄-니가타 구간이 두 구간으로 나뉘어 장기간 변칙운행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명 사고는 없었지만 위기일발의 사고였다. 선두 객차가 탈선, 30도 이상 기운 상태에서 간신히 멈췄기 때문이다. 망가진 선로의 복구, 고가구축물 보강공사, 탈선열차의 제거 등을 거쳐 동 노선이 완전복구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진 발생에서 2주가 경과한 지금도 강한 여진이 발생하여 복구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동 사고는 천재라고 하지만 신칸센의 안전신화를 불식시켰다는 점에서 신칸센으로서는 대단한 불명예스런 사고였으며 따라서 강력한 지진에도 탈선하지 않을 열차개발이 당면과제로 급부상하였다. 대형 천재가 철도기술 개발을 촉구하는 셈이 되었다.
신칸센의 개발 과정을 보면 미키, 마쓰다이라, 가와나베 같은 각 부문에서 출중한 실력을 가진 연구자들이 묵묵히 개발한 분야별 고도의 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기술을 집대성하고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등 기술관리?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9장 철도의 그랜드디자인, 신칸센 사례에서 배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