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씬 두들겨 맞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단짝 친구를 만났다. 그는 돌팔매의 명수였다. 그의 손에 이끌려 왔던 길을 돌아갔다. 신작로 저 멀리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친구가 힘껏 돌멩이를 던졌다. 손을 떠난 돌멩이는 정확히 머리를 맞췄고, 일격을 당한 그는 풀풀 황토 먼지를 일으키며 길 위에 쓰러져 뒹굴었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지만 그 역시 또래였을 터.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사택에 사는 아이들과 농가 아이들 사이의 해묵은 불화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막연히 짐작할 뿐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때 그 포물선을 기억한다. 친구의 손을 떠난 돌멩이가 그려내던 그 아득한 포물선, 분노와 갈망에서 시작해 불안과 우려로 이어졌던 짧고도 긴 포물선! ---「내 기억 속 포물선 하나」중에서
나는 말썽꾼이었고 객지에 계신 아버지와 떨어져 홀로 자식을 가르쳐야 했던 어머니는 마음을 모질게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말썽이 극에 달하면 성냥개비에 불을 붙여 새끼손가락 끝마디를 태우셨다. 나는 손목을 잡힌 채 성냥개비 하나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고통을 견뎌냈다.
“이 상처를 보면서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오늘 일을 잊지 마라.”
굳게 다짐하곤 했지만, 철이 들기까지 여러 차례 어머니께 손목을 잡혀야 했다. 통증을 견디는 힘은 그만했는지 몰라도 그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내게는 없었던 모양이다. ---「엄살」중에서
어느 날.
부엌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마당 한쪽에 닭장을 놓고 병아리를 키우고 있었다. 약병아리만도 못한 자그만 녀석이 목이 꼬인 채 어머니 발밑에서 기를 썼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날갯죽지를 부여잡고 모가지를 밟고 계신 어머니도 안간힘을 썼다. 덜덜 떨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객지에 계셨고 대학에 다니던 형은 휴학하고 군에 있었다. 어머니와 작은누나 그리고 여동생, 집안에 남자는 나 하나뿐인데 닭 모가지를 비틀기엔 너무 어렸다.
그해, 스무 마리 남짓하던 병아리들은 다 자라기도 전에 하나둘씩 밥상에 올려졌다. 어머니는 사십 대 중반이었다. ---「열무김치」중에서
어릴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요. 친구한테 들은 말인데요. 우리가 산다는 건 어린아이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나이든 자신한테 전하는 거예요. 살면서 그 이야기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죠. 그 이야기를 자주 떠올리는 건, 어릴 때는 세상을 좋게만 바라봤거든요. 거지도 없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고요. 어린아이의 이야기엔 아주 작고 단순한 게 담겨 있죠. 그런데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저 물건을 사기 위해 일을 하다 보니 잠시 멈춰서 불쌍한 사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죠. 어린 시절 제가 전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삶의 의미라는 것은 그 이야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이가 전하는 말」중에서
대통령이 총 맞아 죽고 군사 반란이 일어났던 그해, 삼치구이와 막걸리가 유명한 모 여대 앞 골목 주점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담배 연기가 주점 안을 안개처럼 휘감고, 더러 소리를 지르고 더러 흐느끼고 한숨을 내쉬고 깔깔대기도 하면서 하루하루가 불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형, 밤길 걸어 본 적 있어요? 알몸으로…”
후배가 물었다. 그는 대학에서 도조를 공부하면서 골목 주점 인근에 친구 몇과 화실을 열고 있었다.
“벌거벗고… 화실 친구들하고 옥상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통금 되고 난 다음 거리로 나갔어요.”
“춥잖아! 왜?”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목을 꺾고, 유령처럼, 적막한 밤거리를 헤매고 있는 벌거벗은 청춘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느낌이… 달라요. 느낌이…”
반짝, 흐릿하던 후배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 ---「야행」중에서
그해, 여단 본부는 신촌 모 대학에 주둔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비상이 걸렸고 완전군장(전쟁에 투입될 때의 군장)을 한 채 용산역에 집결했다. 일체의 정보가 차단되었다. 국내 정세에 관한 일방적 교육에 세뇌된 병사들은 마침내 전쟁이 터진 것으로 생각했다. 용산역은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은 급하게 휘갈겨 쓴 편지를 철로의 조약돌에 묶어 역사 밖으로 내던지기도 했다. 탑승한 열차에는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검은 장막이 드리워졌다. 혼란 중에 누군가의 연막탄이 터져 열차 안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공포 속에 마침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흐느낌이 높아졌다. 사수는 서울 출신이었다. 어두침침한 장막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열차의 방향을 가늠했다. 북인가, 남인가? 잠시 후, 철컥철컥! 사수는 한강 철교를 지나는 소리임을 직감했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은 아니다. 전쟁이라고 해도 전방은 아니다! ---「산딸나무 꽃을 보았다」중에서
대학 입학 후 10년째 객지 생활을 하며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까 말까 한 아들 녀석이 한다는 말이.
아들 : 아빠, 왜 자꾸 엄마한테 대들어?
나 : 대들다니?
아들 : 따지잖아?
나 : 내가 언제?
아들 :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 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여인과 싸워 이기는 법」중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환란이라는 IMF를 거치면서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 났고 아파트 빈터에 천막을 치는 가장들의 사연이 연일 뉴스의 앞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겁이 난 아내는 쌀부터 샀다. ---「페인트칠에 관한 기록」중에서
작품의 배경이 된 그 시절 얘기다. 장항동에서 일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데 시간이 애매했다. 길가 음식점에 들어가 국밥을 먹는데 손님이라곤 나하고 그 사내뿐이었다. 먼저 식사를 끝낸 사내가 계산대 앞에서 고개를 꺾은 채 무어라 중얼댔다. 반 울음 섞인 주인의 음성이 내 귀를 때렸다.
“돈이 없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나도 죽을 지경이야. 당신이랑 저 양반, 오늘 달랑 손님 둘 받았다고!”
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주인은 가슴을 쳤고, 나는 연거푸 물 잔을 들이키며 타들어 가는 목젖을 적셨다. 오래된 그 기억 속에서 나는 또한 고개가 꺾인 사내이고 주인이기도 하다. ---「다짐」중에서
“나 말이야…”
“……?”
“아침에 여기 나와 앉아 있으면 행복해. 행복하다는 게 현실적으로 느껴져. 나무들이 내뿜는 향기 속에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 [대부3]의 마지막 장면 기억나? 한적한 시골 마을 우물가 근처, 은퇴한 마이클 콜레오네가 말쑥하게 차려입고 지팡이를 기대 둔 채 의자에 앉아 있고, 볼품없는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그 주위를 어슬렁대고 있어. 생애를 돌아본 사내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무너져 내리지. 모래성처럼! 그렇게 온전히 고독하고 평안한 죽음이 있을까? 나도 그렇게 죽고 싶어. 어느 해 이맘때쯤 여기 이 의자에 앉아서.” ---「수목들」중에서
“들소2? 덧칠이 거듭될수록 미궁이 깊어져. 덧칠하는 화가 입장이 되어봐. 그는 이제 들소, 들소1은 물론이거니와 화가1의 손길까지 따라잡아야 해. 그러면서 자기가 보고 듣고 이해한 것들로 다시 덧칠하지. 내가 고민해온 많은 문제가 거기서 비롯돼. 누구도 들소를 직접 만날 수가 없거든. 우리가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건 들소1이야. 아니, 들소2 들소3 들소4야. 세상은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어.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무수한 누군가에 의해 덧칠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그 누군가 속에는 당연히 자기 자신도 포함돼. 자기가 자기를 덧칠하는 거지. 자기 인생은 물론 자기가 속한 세상까지 말이야. 어디 그뿐인가? 생각해 봐. 내 어머니가 오롯이 내 어머니일까? 그 어머니의 아들이 오롯이 그 어머니의 아들일까? 기억이 선명할수록 덧칠은 더 두꺼운 법이야. 왜 그럴까? 소중하거나 아프기 때문이지. 사랑, 그리움, 애착이나 연민,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야. 이제 그런 감정들을 여럿으로 확장해 ‘덧칠의 연대’라고 부르면 어떨까?”
“그럴 필요가 있겠네. 동굴 밖으로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길 원한다면 말이야.”
“그래도 당분간은 맨몸으로 맞서고 싶어. 동굴 속 그 원시인처럼 ‘미개한 나’로 말이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들소는 몇 번째 들소일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