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제는 더이상 춥지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을 거야. 비가 한 번 올 때마다 날씨는 추워지고 한겨울이 될 텐데. 이제 곧 네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겨울이 올 거란다. 작은 고양아, 그 삭막한 동네에서, 그래도 조금은 편하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니? 아무 인간도 지나다니지 않는 한밤에는 뛰어놀기도 했니? 네 형제들과 엄마는 네가 죽은 걸 아니? 어쩌면 이미 다들 무지개다리를 건넜거나 다른 동네로 떠나 너 혼자 남았던 거니? 고양이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한다. 길어야 여섯 달이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살겠어?---p.76
와락 쓸쓸해진다. 사람들도 그럴까? 그토록 오순도순 지내던 형제들이 커서 제 아이들을 갖게 되면 눈빛조차 차가워지고 갑자기 서로에게 낯선 존재가 된다. 서로가 생존에 위협이 되는 라이벌일 뿐이라는 듯. 어른이 된다는 건 쓸쓸하고 무서운 일 같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더욱더. 삼색이들이 냥냥 밥을 먹는데 할머니 두 분이 비탈길을 올라오셨다. “고양이들 밥 주나봐?” 나는 찔끔해서 입을 꾹 다물고 할머니들 표정을 살폈다. 내 경계심을 느꼈는지 말을 건네셨던 할머니가 눈빛으로 ‘고양이한테 별 적의 없음’ 신호를 보내셨다.
화열이가 인터넷 커뮤니티 ‘고양이웃네’를 처음 알게 된 건 3년 전이다. 그때 화열이는 이모 집에 살고 있었는데, 사촌 언니가 귀한 품종인 터키시 앙고라 ‘도도’를 키웠기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정이 격한 이모부가 털이 날린다며 도도를 벽에다 던지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져 도도는 다른 집에 보내진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화열이는 검정고시는 보았지만 대학 진학은 보류중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댁을 잠시 지키며 독립한 화열이는 이어 낡은 시장 건물 2층에 방을 구해 머물기로 한다. 편의점에서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화열이 눈에 길고양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띄엄띄엄 사흘에 한 번 밥을 주던 일이 한 새끼 고양이의 죽음을 계기로 매일 빠지지 않는 일과가 된다. 비탈 동네의 베티와 삼색 고양이들, 아비와 다른 길고양이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면서, ‘고양이웃네’ 사람들과도 점점 가까워져간다. 베티 밥을 주다가 만난 베베치킨 배달원 필용이 역시 자퇴를 했다. 언뜻 불량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순수한 성격에, 어릴 때부터 놀라운 미성으로 노래를 해온 필용이다. 필용이는 그저 답답한 학교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풋풋한 사랑이 움트고, 화열이는 아주 작은 일에도 필용이를 떠올린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헤어진 엄마의 소식을 듣고, 화열이는 처음에는 두려움에, 나중에는 반가움에 눈물을 흘린다. 어느새 화열이는 시를 쓰게 되는데,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자 시인인 정운경 선생님을 찾아뵙고 큰 도움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