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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리뷰 총점9.5 리뷰 22건 | 판매지수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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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86g | 130*205*30mm
ISBN13 9791162850275
ISBN10 1162850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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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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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들이 남편을 동네 청년들과 함께 트럭에 태우고 있었습니다. 어제도 굶고 오늘도 굶은 남편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요. 팽나무 아래 동네 사람들과 가슴 졸이며 앉아 있던 나는 가슴이 뛰었어요. 두려움에 떠는 남편의 눈빛이 느껴졌어요. 남편이 너무나 가여웠어요. 마침 바로 마을 동녘 길가에 빵장수가 있었어요. 난 주머니에 꼬깃꼬깃 모아두었던 돈을 꺼내 빵을 사러 뛰어갔어요. 저 트럭이 출발하기 전 달려가야 할 텐데. 난 빵 한 봉지를 사들고 허둥지둥 달려갔어요. 차 위로, 온 힘을 다해 그 빵을 탁 올렸어요. 순식간에 트럭은 “빵”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떠나버렸어요. 말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이 빵 나눠서들 드시라고 말도 다하지 못하고……. 난 돌아서서 엉엉 울었어요. 울고 있는 내게 누군가가 말했어요.
“꼭 다시 돌아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난 찐빵을 안 먹습니다」중에서

늙은 무릎을 꿇고 새벽이 오기까지 봄밤을 지새운 한 여인이 4·3 행방불명인 묘비를 닦고 있습니다. 기억의 얼굴을 닦고 있습니다.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얼굴입니다. 한때는 4월 제주, 이 봄날에 눈물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유죄였던 시절, 꽃이 아름답다 해도 유죄였겠지요. ---「사무치는 그 꽃길을 걸었습니까」중에서

제주국제공항은 누군가에겐 그렇게 아픈 공간이다. 4·3 70년 동백꽃 배지 하나씩 가슴에 달고 비행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여쁘지만 하얀 눈 위에 뚝뚝 지던 동백꽃 목숨들처럼 아리다. 비행기는 여전히 굉음을 내며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고, 햇살은 찬란하다. 하지만 한 귀퉁이에선 아픈 비명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기뿐이겠는가.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인권의 무덤이 이 땅의 곳곳에 있다. 강요당한 망각의 역사, 인권을 일으켜세워야 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 ---「활주로의 무덤들」중에서

70년 전 정방폭포에서 부모가 학살되는 장면을 보았던 80대 김복순 할머니는 폭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맡겨두고 어머니만 희생된 곳이 성산포 터진목임을 뒤늦게 알았다는 칠순 딸 강숙자에게 이곳은 아픈 공간이다. 아흔의 해녀 오순아. 학생복 입은 채 표선 백사장에서 집단 희생된 남편은 당시 열여덟 살. 그 모래밭에서 모래 범벅 남편의 주검을 찾고 통곡을 삼키던 그해, 그는 열아홉 새색시였다. 이 늙은 해녀에게 이곳은 슬픈 기억의 공간이다.
하여, 제주의 길은 누군가에겐 저미는 길이다. 언젠가 4·3을 모르고 제주를 말하던 한 음악가가 4·3을 알고 난 후 이렇게 말했다.
“그 이전, 내가 수없이 제주를 다니며 다 안다고 당신에게 말했던 그 풍경을 이제 지워달라." ---「애도의 길을 따라서」중에서

죄 없이 육지 형무소에 갇힌 한 여인은 갓난아이가 죽자 찬 바람 쌩쌩 부는 전남 목포의 한 파출소 빗자루 위에 주검을 올려놓고 왔다고 눈물을 흘린다. 젖이 퉁퉁 불은 수용소의 또다른 젊은 엄마는 “빨갱이 새끼에겐 젖도 주지 말라”는 저주의 목소릴 들었다. 밤엔 산이 무섭고, 낮에는 아래가 무섭다고 울부짖던 젊은 여성들은 4·3의 비극이 “시국 탓”이라 말한다. 국가의 폭력에 희생됐으나 이들은 누구를 원망해야 좋을지도 몰랐다. 이들의 감춰진 목소리는 여전히 4·3 역사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꽃 같은 청춘의 생 위에 쏟아진 광풍에 휩쓸려 평생 뒤틀린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들, 4·3의 가장 가혹한 시간이었던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1949년 2월까지 키보다 높은 눈을 짐승처럼 헤치며 헤매야 했던 여인들, 아이가 아이를 업고 죽어가던 모습을 눈물 없이 지나쳐야 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애도의 길을 따라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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