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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특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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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34g | 140*210*20mm
ISBN13 9788966551088
ISBN10 896655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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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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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나머지 한쪽 다리와 튼튼한 두 팔이 있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채소 행상 박 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우리라고 해서 못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맞아요, 맞아. 다들 신체의 일부만을 잃었을 뿐이에요.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죠.”
박 씨의 말에 백수 청년 송이 목이 부러질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맞소. 여긴 우리 말고 아무도 오지 않았소.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게요. 지금 이 순간 가장 멀쩡한 건 우리들이란 말이오.” ---「오합지졸 특공대」중에서

나의 조부는 그렇게 나라를 팔아먹고 식민 제국에서 위세를 떨치던 자의 양아들로 자라났다. 식민 제국 관리의 양아들이 되었을 당시 그는 결코 어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저간의 사정을 짐작으로나마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사실들을 모르는 체했다. 마치 부모를 여읠 때 모든 기억을 도륙당한 듯, 그는 자신의 친부모에 관한 한 바로 어제의 일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렇듯 철저히 식민 제국 관리의 양아들로 환골탈태한 그는 아무런 죄의식도 거리낌도 없이 제국의 앞잡이로 잘 살아갔다. 그는 성실했고 충성스러웠으며 잔인했다. 그러므로 그는 한 시대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악어의 눈물, 그는 먹잇감을 삼킬 때만 눈물을 흘렸다. 먹이가 좀 더 부드럽게 그의 목구멍을 지나가도록, 그는 고문으로 피떡이 된 먹잇감 앞에서 거짓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짠맛 뒤에 느껴지는 단맛은 실로 다디달았다. ---「성스러운 피 : 해커」중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미륵의 얼굴이었다. 어쩌면 나 또한 갖고 있으나 스스로 잊어버린 얼굴인지도 몰랐다. 나는 홀로 감동하여 결심한 듯 뇌까렸다.
“무얼 하겠다는 생각은 없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나는 청년이 했던 것처럼 미소 지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사막의 한복판을 가리켰다. 청년이 돌아서서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저곳에 가지 않을 겁니다.”
청년과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 내가 가리킨 그곳에는 거대한 무덤이 펼쳐져 있었다. 하마터면 그곳에 영원히 묻힐 뻔했다. ---「거대한 무덤」중에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중얼중얼 타령조의 넋두리를 하는 판근의 눈에 께적께적 눈물이 고였다. 겨울밤이라고도 봄밤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밤, 판근은 따뜻한 방을 두고 마루에 나앉아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했다.
‘그 밤 내가 죽이려던 것은 누구였을까?’
밤에도 꽃은 지는지 어둠 속에서 뚝뚝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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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지의 소설은 늘 세계의 원본과 낱개의 인간들이 마찰하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심연이 어떻고, 내면의 숨결이 어떻고 하는 관념적 엄살로 직조된 산문들과는 종자가 다르다. 끝없이 좌절하는 일상과 절망을 감내하는 정신의 크기도 범상치 않고, 온갖 마이너리티들의 숨결을 통해 서사와 지성의 결합을 엮고자 하는 지적 근성도 갖춰져 있다. 하층 서사의 긴장을 견뎌내는 문장들, 민중적 장면 묘사의 역동성을 놓치지 않는 질박하고 섬세한 문체는 압권이다. 신나는 일이다. 인간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광활하게 텅 빈 문명의 내부를 우리는 장차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박혜지는 한사코 굼뜬 걸음으로, 초라하고 허술한 약소자의 사생활에서 첨단의 인간관계와 윤리를 발굴해간다. 섣불리 주목 받고 조명 받으려는 시류에 결코 매이지 않는 이 고독한 ‘서사 정신’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 김형수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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