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도둑 “잡히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누가 내 얼음을 자꾸 훔쳐 가는 거야?”
바다 위로 떠오른 태양이 말없이 토로를 비추고 있습니다. 도대체 속내를 알 수 없는 난해한 녀석입니다. 이글이글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너울너울 환한 빛을 쏟아내는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에요.
“저 녀석인가?”
토로는 태양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해는 말이 없습니다.
토로가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얼음 도둑! 잡히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북극여우 핑글이 “마음속에 핑글이 빙글빙글 맴을 돌아.”
“나쁜 석유 녀석!”
토로가 씩씩거렸습니다.
“석유가 나쁜 게 아니야.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 석유 채굴이 시작된 후부터 소중한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나고 있어.”
핑글이가 눈물을 보이자, 토로가 손등의 털로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울지 마. 이제 내가 친구가 되어 줄게.”
토로의 말에 핑글이가 살짝 미소를 짓습니다. 그 미소를 놓치지 않고 토로도 따라서 활짝 웃어 보입니다. 토로와 핑글이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핑글이는 자꾸 토로의 마음속을 찾아왔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토로의 마음속에 찾아와 빙글빙글 맴을 돌다 떠나곤 했습니다.
추위 본능 “오늘부터 추위는 내가 접수한다.”
‘여기 더 머물다간 언젠가 나도 죽고 말 거야. 그래, 오늘부터 추위는 내가 접수한다! 기다려라, 추위야! 이래봬도 내가 추위 타는 곰이라고.’
토로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할머니, 저는 추위를 찾아 떠날 거예요.”
며칠 사이 할머니의 얼굴이 무척 안 돼 보였어요.
“잘 생각했다, 토로.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거야. 하지만 넌 반드시 해 낼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니까.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바다코끼리 할머니는 평소답지 않게 비장한 말투로 토로를 격려해 주었어요. 엄마와 헤어질 때도, 핑글이를 보낼 때도, 그리고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토로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나약하게만 느껴집니다.
“제가 꼭 얼음을 찾아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몸 건강히 안녕히 계세요.”
토로는 바다코끼리 할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추위를 찾아 떠나는 토로의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시베리아호랑이 수다다 “너도 알고 보면 괜찮은 녀석이야.”
강물에 빠진 토로가 좀체 나오려 하지 않자 조급해진 호랑이가 타이르기 시작합니다.
“토로! 나는 곰을 트럭으로 실어다 줘도 안 먹어. 혼혈 곰들이 늘어난 뒤부터 우리도 가려 먹는다고.”
“…….”
“그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앞으론 농담도 가려서 할게. 화 풀어.”
호랑이가 쩔쩔 매는 모습을 보자 토로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정말이지?”
“암, 정말이지 그럼. 그러니까 얼른 나와! 물고기한테 물리면 독감 걸려!”
호랑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토로가 물속에서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요동을 치기 시작합니다.
“앗, 따가워! 뭐지 이건?”
호랑이가 말한 물모기떼의 습격이었습니다.
멸종위기동물 비행선 “북극을 부탁해!”
달려가던 수다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토로를 구해낼 방도는 없었습니다. 수다다는 토로가 비행선에 빨려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토로의 발을 입으로 꽉 물었어요.
하늘에서는 비행선의 빛이 토로를 끌어당겼고 땅에서는 수다다가 토로를 잡아당겼어요. 하지만 비행선의 월등한 힘을 수다다가 감당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중략)
“엄마, 우리는 정말 우주로 가나요?”
엄마 곰은 비행선 안을 가득 메운 동물들을 둘러보며 우주 도시로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행선이 땅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 이제 우주로 가는 건 시간문제야.”
우주선은 비행 기간이 길지만 목적을 달성하면 곧바로 도착지를 향해 갔습니다. 엄마 곰은 연구원들의 대화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어요.
“아가야, 엄마를 믿어. 너를 절대로 우주 동물원 신세로 전락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북극의 겨울 “북극은 내가 지킨다!”
“토로, 꼭 살아남아야 해. 넌 이제 북극의 미래야! 네가 죽으면 북극도 끝이란 걸 명심해.”
엄마 곰이 자신의 코끝을 토로의 코끝에 갖다 댔어요.
콕콕, 약속…….
“사랑해, 아가야.”
엄마 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총에 맞았을 때도 울지 않았던 늠름한 엄마 북극곰이 토로를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면서 눈물을 보인 것이에요.
“살포 준비!”
어느새 가까이 온 연구원들이 토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어요.
뿔용은 토로를 강제로 방주에 태우고 자신의 새끼 알도 실은 뒤 문을 닫았어요. 토로의 방주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까만 하늘로 동동 떠올랐습니다.
“발사!” (중략)
토로의 외침을 시작으로 하늘에서 굵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습니다. 토로의 바람대로 북극에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북극에 겨울이 왔어!”
감격에 겨운 토로가 목청을 높여 외쳤습니다.
“토로, 약속대로 추위를 찾아 돌아왔구나.”
바다코끼리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중략)
“엄마! 듣고 있어요? 북극에 겨울이 왔어요!”
미래의 지구 어디쯤에서 엄마 곰이 토로의 외침을 듣고 있을까요? 토로가 울먹이며 다시 크게 외쳤습니다.
“북극은 울지 않을 거예요! 북극은 제가 지킬 거니까요!”
다시는 북극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도록 버려두지 않겠다는 듯, 눈은 쉬지 않고 끝도 없이 흩날리며 북극을 하얗게 물들였습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