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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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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707g | 140*210*35mm
ISBN13 9788970599946
ISBN10 8970599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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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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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는 1919년 선언에서 그곳을 ‘공예가와 예술가 사이에오만한 장벽을 세우는 계급 구분’이 극복되는 곳으로 정의한다. 목표는 새롭고 보편적인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디자이너는 예술가의 창의성과 미의식에 공예가의 기교 및 생산에 주력하는 태도를 결합하는 동시에 사회적 인식과 책임감을 가진다.
바우하우스는 실험적 디자인에 교육학적 초점을 맞추어 학제적 추론과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열린 마음과 게슈탈트Gestalt 의 본질에 대한 동시대적 논쟁이 견습생과 학생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필요한 실용 기술과 이론을 공부하면서 바우하우스 학생은 더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바로 디자인에는 우연이 없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디자인 문제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사물을 마치 처음 보듯이 보고 디자인 과정을 기초적 현상과 과정으로 기꺼이 단순화하는 것이다.
24쪽, 토어스텐 블루메, 「바우하우스의 지금과 내일」에서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건축,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단순히 과거의 박제로 남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일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술과 기술이 통합된 기능주의 디자인’을 탄생했고 ‘국제주의 양식 건축’을 완성했으며 대량생산된 일상용품의 획기적 개선을 불러왔다. 바우하우스의 조형 사상과 방법론은 현대 산업 디자인의 모태이다. 특히 이텐, 알베르스, 모호이너지의 조형교육은 현대에도 디자인 기초교육의 규범처럼 전해진다. 세계 디자인대학의 교과 내용 중 많은 부분은 100년 전 바우하우스 프로그램에 빚을 지고 있다. 바우하우스에서 생산한 산업 제품은 디자인의 고전이 되었으며 타이포그래피 등은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기본이 되고 있다.
45쪽, 김종균, 「바우하우스의 역사」에서

1922년 그로피우스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예술과 기술-새로운 통합’을 내건다. 나아가 1924년 여름 바우하우스 생산의제 원칙에서 바우하우스와 그 후의 기본 방침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 “진보하는 기술이나 새로운 소재, 새로운 구조의 발견과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조형 활동을 행하는 인간은 그 대상을 전통과의 생생한 관계 안에서 찾아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실습에 관한 사고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획득한다. 그 능력은 기계나 타는 것이 있는 활기 넘치는 환경과의 확고한 관계, 어떠한 일을 고유의 법칙에 따라 낭만화하지 않고 유희 없이 조형하는 것, 전형적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기본 형태와 색채로 한정하는 것, 다양성 안의 단순함, 공간과 재료, 시간, 자금을 낭비 없이 이용하는 것이다.” 기초교육도 이러한 방향으로 변모하였다.
63쪽, 신희경, 「바우하우스 기초교육의 의미와 오늘날의 의의」에서
바우하우스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데사우 교사 건물 그 자체이다. 이 교사의 역동적 구성, 비대칭적 평면 구성, 부드러운 백색 표면과 수평적인 창문, 평지붕 등이 바로 1920년대 국제주의 양식을 대변하는 바우하우스 건축의 특징이 된다. 건축 공간 2,630㎡(약 800평)의 데사우 바우하우스 교사는 그로피우스가 품었던 건축적 비전을 실현한 것이었다.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의 지붕 아래 놓는 것, 즉 교육, 노동, 주거, 오락, 운동이 한데 모일 수 있는 공간이 그것이다.
86-87쪽, 김주연, 「바우하우스 건축」에서

바우하우스를 개교했을 때만 해도, 그로피우스는 여학생도 남학생처럼 자유로운 인간임을 인정하는, 당시로는 꽤나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자기 암시라도 하려는 듯 그로피우스는 “아름다운 성과 강한 성과 같은 성별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평등만이 아니라 의무에 있어서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숙녀 대접은 기대하지 말라. 작업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장인일 뿐이다”며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편견을 타파하려는 메모를 남겼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에서 남녀평등의 이상은 애석하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여초 현상에 놀란 남성 마이스터의 위기의식이 다시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망령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97-98쪽, 고영란, 「바우하우스 담론의 다층성: 공예, 산업 디자인, 직조 공방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에서

바우하우스는 조형예술 및 공예와 건축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모든 예술 활동을 결합시켜 새로운 건축의 구성 요소로 재통합함으로써 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운동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중심으로 한 유리 공방은 합리적인 근거와 필요성이 충분했고 바우하우스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되는 공방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을 위해서는 유리공예, 페인팅 등의 기술 습득과 조형 훈련을 필요로 하며, 이런 기초과정을 습득한 뒤에는 건축 공간에 수공 작업과 조형예술을 융합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도 근대건축에서 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스테인드글라스는 충분히 미래 지향적 가치와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150쪽, 김정석, 「바우하우스 유리 공방」에서

1923년 모호이너지가 부임하기 전까지 헤르베르트 바이어는 이텐, 칸딘스키, 클레에게 영향을 받았다. 화가들로부터 형태와 색채를 배우면서 그가 일했던 기능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자유로운 회화 사이에서 갈등했고 어떤 하나의 스타일에 경도되지 않으면서 프로젝트마다 스스로 익힌 시각적 기법을 다양하게 적용했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익힌 건축 드로잉과 공간에 대한 감각에 더해 바우하우스에서의 회화와 다양한 표현 방법에 대한 경험은 후일 바우하우스 이후 그가 평면과 공간, 디자인과 예술의 영역을 넘나드는 전천후 디자이너로 활약할 수 있도록 했다.
175-176쪽, 김현미, 「바우하우스의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서

모호이너지는 총체작품이라는 이념을 통해 회화, 조각, 사진, 영화, 설치, 디자인 등 모든 예술 매체의 경계뿐 아니라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마저도 해체하려고 했다. 그는 모든 매체를 넘나들면서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의 목표였던 삶과 예술의 일치를 추구한 전위적 총체예술을 원했다. 이를 통해 그는 궁극적으로 미래의 유토피아적 인간인 ‘총체적 인간whole man’ 즉 모든 감각 기관이 고도로 발달하여 풍부한 감성을 지닌 인간 그리고 동시에 뛰어난 지성을 소유한 인간, 따라서 다가올 복잡다단한 사회에 잘 적응하고 선도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고자 했다.
216쪽, 박상우, 「바우하우스의 매체미학:모호이너지를 중심으로」에서

즉 논리와 기초적인 지각 요소에서 보편 언어를 얻어내려고 했던 논리실증주의 철학자들과 기술과 예술을 통일하고 기초적인 지각 요소인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로부터 형태를 구성하려는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의 작업은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당시 모더니즘 운동에 속한 예술가와 철학자 들은 모두 간단하고 기능적인 것에 집착했다. 또한 20세기 유럽과 특히 미국에서 상당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과학주의적이면서 기계 중심적인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영역을 모더니즘적이고 포드주의적인 생산방식과 일치시키고자 했다.
257쪽, 채승진/이정열, 「바우하우스와 과학주의」에서
바우하우스 여성 디자이너들의 활약은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여성이 집단적으로 전문 분야에서 혁신적이고도 영향력 있는 업적을 낸 최초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금속 공방에서 바우하우스의 대표적 작품을 다수 제작했던 마리안느 브란트를 비롯하여 아동용 목가구와 장난감을 제작했던 목조 공방의 알마 지드호프 부셔와 다른 몇몇 여성 디자이너는 바우하우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작품과 이후의 생산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바우하우스 안 여성 디자이너를 재조명하고, 이들의 삶과 이후 평가의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276쪽, 진휘연, 「바우하우스 여성 디자이너들과 산업화」에서

바우하우스 무대의 조형적, 개념적 특징은 시각예술에 근접한 회화적 감각으로 무대를 구성하던 20세기 초의 연극 운동과 당대 아방가르드 미술이 추구했던 ‘혁신’이라는 시대적, 미술사적 흐름 안에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바우하우스의 다른 공방에서도 나타나는 소위 바우하우스 스타일이라 불리는 형식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이는 수학적 계산에 따른 무대 공간의 건축적 구성과 색채의 활용을 통한 기하학적인 디자인 등의 경향과 결부된다. 바이마르 시기의 초기 바우하우스에서는 비이성적이며 낭만주의적인 경향과 기술주의와 이성주의적 성향 등 대립되는 양면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차츰 데사우 시기를 거치며 ‘기술’과 ‘추상’이라는 두 요소와 결합되면서 현대적인 공연예술의 형태로 변모해나갔다.
305-306쪽, 양옥금, 「바우하우스의 무대: 시대와 징후를 담은 실험 혹은 놀이」에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후 1953년 독일 남부 울름에 바우하우스의 계승을 목표로 울름조형대학이 설립된다. 베를린에서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은 지 20년 만이었다. 울름의 초대 학장 막스 빌은 1927년부터 1929년까지 데사우 바우하우스에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오스카 슐레머에게 사사했다. 울름의 신 교사 건축 계획을 작성했지만 그래픽 디자이너이면서 산업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그는 산업 생산을 시대적 원칙으로 인정하고 경제적, 기술적 조건에 맞추어 합목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다만 그의 미적 관념은 도덕적이고 사회적 가치와 연결되는 동시에 독특하면서도 강력해서 일상용품의 높은 미적 수준을 통해 삶을 도덕적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346-347쪽, 이주명, 「바우하우스의 금속 작업과 울름의 산업 디자인: 기능 탐구의 여정」에서

1937년에 뉴 바우하우스가 야심찬 기획으로 연 결과물 전시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 (중략) 데사우 바우하우스의 내용을 토대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 미국의 실용주의와 산업 지향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예술산업협회 측에서 보기에 유럽식 교육이라는 것이 산업적이기보다는 예술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유토피아적이며 기능적이기보다는 근원적이고 실용주의적이기보다는 인본주의적이자 사회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모호이너지는 유럽식 개념의 교육과 문화 실천을 산업주의적 편향을 갖는 미국식 개념과 어떻게 융화하여야 하는가라는 큰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370-371쪽, 정의철, 「모호이너지의 실험과 비전, 시카고 뉴 바우하우스」에서

바우하우스와 BMC(블랙 마운틴 칼리지)가 진보주의적인 교육의 취지를 공유하고 있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개인의 창작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한 점에서 바우하우스의 철학은 듀이의 입장과 상응한다. 또한 알베르스가 바우하우스에서 가져온 많은 요소들 즉 이론에 앞서 실천을 강조하는 점, 실행을 통해 배우는 점, 예술이 아니라 연습하고 배우는 것study, not art 을 강조한 점, 순수 예술을 상위에 두는 위계질서를 거부하는 점, 예술을 상품commodity이 아닌 경험으로 인식하는 점 등은 BMC의 취지와 잘 어울렸다. 두 학교는 확고한 이론을 다루는 학술적인 전통적 수업과는 다르게 학생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동기 부여를 하고자 했다.
391-392쪽, 김희영,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의 요제프 알베르스 교육을 통한 바우하우스 교육의 연계와 전환」에서

70여 년 전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바우하우스 전시는 이미 관람객과 전시 공간, 전시 오브제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당시 그로피우스는 관람객이 작품을 관람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전시 디스플레이의 형태를 취했고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정보와 의미에 주목하기보다 이 모든 것이 사회적, 정치적 기술로 하나의 통합적인 경험으로 전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이런 혜안은 100년 전에 만들어져 14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바우하우스를 우리가 아직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며, 이들이 남긴 업적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가야 하는 정당성이라고 할 수 있다.
426쪽, 권민정, 「바우하우스 전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바우하우스를 향한 두 개의 다른 시선」에서

바우하우스는 동시대적인 잠재력을 창의적으로 촉발시킨 국제적인 학교이자 실험실이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적지 않으니 마땅히 어떤 분야의 기원처럼 언급될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더 신화화하고 부각하는 것은 그만큼 후대에 이어지는 실험이 큰 파급력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우하우스는 하나로 묶일 수 없다. 많은 갈등이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실험이 존재했다. 14년간 풍파를 견디면서 지나온 교육체계가 어떻게 일관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우하우스의 신화는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은 이후에 지속된 일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오늘날 바우하우스는 당대의 예술가가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시도했던 것을 발견하고 참조할 아카이브로서의 가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45쪽, 김상규, 「아카이브로서의 바우하우스 전시: 바우하우스는 어떻게 역사화 되는가」에서

1966년에 정시화가 발표한 「Bauhaus의 예술교육」은 바우하우스를 우리 디자인계에 체계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글로서 이론적 토대가 미약했던 당시 한국 디자인 교육계의 지적 풍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었다. (중략)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디자인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해 바우하우스를 주목했던 정시화와 안상수가 대학 시절 각자의 모교에서 교지 창간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안상수는 1972년에 정시화에게 원고를 청탁하여 「디자인 교육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일찍이 1960-970년대 한국 현대 디자인 교육의 여명기에 디자인 이론과 역사 그리고 디자인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정시화와 안상수. 이 두 사람이 한국 디자인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바우하우스를 주목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469-470쪽, 강현주, 「정시화를 통해 살펴본 한국 대학에서의 바우하우스 수용」에서

바우하우스는 공예라는 문으로 들어가 디자인이라는 문으로 나왔다. 바우하우스를 거치는 동안 공예는 디자인이 되었다. 선언문에서 드러나듯이, 창립 초기의 바우하우스는 중세적인 색채가 가득한 공예 학교였다. 이는 바우하우스가 윌리엄 모리스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바우하우스는 윌리엄 모리스의 중세적인 언어와 그와 유사한 표현주의에 그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언어, 자신의 문법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기계 시대의 조형 언어인 ‘디자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바우하우스는 단지 하나의 디자인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조형 언어, 즉 디자인이라는 문법 자체를 만들었다. 이 점이 바우하우스 이전과 이후의 모든 조형적 실천과 바우하우스를 구분해 주는 것이다.
478쪽, 최범, 「바우하우스, 대문자 디자인의 탄생과 의미」에서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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