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학제 간(interdisciplinary) 연구를 지향한다. 철학과 과학에서부터 인류학, 역사학, 언어학, 문학, 종교학, 심리학, 사회학, 언론학, 예술학, 영상학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동시에 이러한 학문 분야에 두루 걸쳐 있는 학문이 문화연구이다. 문화연구가 “학문적인 경계를 무너뜨리고 지식 수용의 방식을 재구성했으며, 그 결과 우리는 문화라는 개념이 갖는 복잡성과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Turner, 2003: 230)라고 했을 만큼 문화를 연구하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 p.21
문화연구는 문화를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문화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입장에 따라 살을 더 붙이거나 뺄 수도 있고, 아예 틀을 바꾸면서 더욱 다양하게 문화를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를 이해하려면 ‘사회 내, 다양한 삶, 방식’ 등의 열쇠말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p.47
구조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삶의 모습인 문화보다 문화의 체계인 구조를 더욱 중요시했다. 구조주의는 인간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직조된 구조에 갇힌 수동적 존재이고 문화는 사회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인식했을 만큼 일종의 ‘구조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구조주의는 구조로부터 벗어나 구조주의를 해체(deconstruction)하고자 했다. 후기구조주의의 영어식 표기인 post-structuralism의 접두사 post는 ‘후, 다음, 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 후, 다음, 뒤를 지향하며 구조주의와 선을 그었던 것이다. --- p.70
영상은 실제 그 자체가 아니다. 실제를 재현한 것이다. 영상을 통해 세상(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인식체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세상(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보이는 대로 모방하는 반영적(reflective)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대상)을 (재)구성해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구성주의적(social constructionist) 접근이다 --- p.96
페미니즘(feminism)과 관련된 논의들은 남녀 간의 정치경제적인 불평등(주로 여성의 불평등이지만)이 (재)생산되는 주요 장소로 문화를 지목한다. 문화적 불평등이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젠더는 이 불평등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을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해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남녀의 성을 사회적으로 구분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 p.158
자본에 의해 잠식된 문화상품과 문화산업에 대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신랄한 비판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 홍대 앞, 홍대 거리인 셈이다. 거리음악과 클럽을 예로 들면, 홍대 거리에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주류 대중음악을 비틀거나 무시하며 조롱 섞인 독설을 ‘날리는’ 비주류 하드코어 밴드들의 공연이 주류 대중가요를 아무 비판 없이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댄스와 파티클럽에 ‘밀리는’ 양상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 p.173
자본주의사회에서 계단은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전쟁터이다. 돈으로 대중문화의 값을 환산하기도 하는 그곳에는 일등지상주의, 승자독식과 같은 냉혹한 계단 문화(stairs culture)가 있다. 특히 대중매체는 계단 문화를 무섭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잔혹동화’처럼 재현한다. 대중문화의 이해는 곧 대중매체의 이해를 뜻하기도 한다. 대중매체는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대, 집단, 계급의 삶과 삶의 의미와 가치, 실천적 행위, 이미지, 재현, 관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 p.203
시간이 지나다보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잊어야 할 것이 잊히지 않거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잊히기 마련이다. 문화적 기억이 기억의 범주 정하기와 구별 짓기, 기억의 선별 과정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일의 기억]은 ‘평화의 소녀상’이나 ‘촛불’처럼 과거를 과거로만 묶어두고 곁눈질하는 우리에게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 p.229
그러나 비록 수적으로는 소수이더라도 소수의 문화는 문화적 다양성의 원천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소수(자)문화(minority culture)는 다수가 경험하지 않거나 못하는(다수는 굳이 경험하려는 의향이나 의지도 없겠지만) 소수의 문화 또는 다수의 경계 바깥에 있는 주변부 문화로서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앞에서 소수(자)문화는 다수가 경험하지 않거나 못한 문화, 다수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난 소수와 다수 사이에 놓인 경계 밖의 문화로 정의한 바 있다. 또한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경제적 요인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며 국가 주도의 문화정책과 문화산업의 논리가 (대중)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앞의 장들에서 충분히 살펴본 바 있다. --- p.239
정치경제적이고 사회문화적으로 소수(자)에 속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는 지배문화/피지배문화, 자본주의 문화/사회주의 문화, 부르주아 문화/프롤레타리아 문화, 전통문화/대중문화 같은 이분법에 갇혀 있던 문화적 모순에 저항하며 이를 해체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사실 하위문화를 비롯해 소수(자)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 p.255
특히 영상을 통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3장에서 살펴봤듯이 우리의 ‘접촉’을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과정이자 도구로 설정하는 문화커뮤니케이션에 기대는 바가 크다. ‘접촉’이란 단지 시선의 ‘교환’만을 뜻하지 않는다. 촛불의 문화정치가 추구하는 공감과 연대를 통한 행복은 영상의 공유를 통한 접촉에서 기인한다. 영상은 공유되어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공감할 수 있어야 연대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외친다. ‘영상으로 공감하라. 영상으로 연대하라.’
---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