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明德)이라는 두 글자는 『시』·『서』·『좌전』에 많이 보이는데 『논어』·『맹자』에 오게 되면 오로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르침으로 삼고 효제충신(孝弟忠信)을 요체로 삼아, 한 번도 명덕을 언급한 적이 없다. 명덕이라는 두 글자는 그 뜻이 너무 커서 오직 성인의 덕을 찬미할 수 있을 뿐 배우는 사람이 받들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인의충신(仁義忠信)을 가르침으로 삼아 위아래에 통용되고 인간의 도리를 포괄해 빠뜨리는 게 없는 것이 더 좋은 방도이기 때문이겠다. 명덕을 인심(人心)을 칭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그 뜻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주 심한 경우다. 주희의 『대학장구』(大學章句)에는 명덕을 풀이해, “비어 있고 신령하며 어둡지 않아[虛靈不昧] 많은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대응한다”라고 하였는데 ‘명’(明)이라는 글자에 깊이 집착해 그 말이 본래 성인의 덕을 찬미한 말인지 몰랐다. 『서』(書) 「강고」(康誥)에는 한 글자로 “덕”(德)이라 했고, 「요전」에 역시 “준덕”(峻德)(높은 덕)이라 해서 모두 “명”(明)을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자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허령불매(虛靈不昧)라는 네 글자는 본래 선(禪)과 관련된 책에서 나온 말로 불교의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이치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 성인의 책에는 원래 이런 이치가 없으며 이런 말 또한 없다. 서로 상반되는 것이 불과 얼음 정도가 아니다.--- p.13~14
의로움[義]과 이익[利]의 구별은 유자의 첫번째 의무다. 의(義)와 이(利)의 관계는, 얼음과 숯불이 같이 있지 못하고 향기로운 풀과 냄새나는 풀이 함께 섞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利)를 구하면 의(義)를 따를 수 없고 의를 좋아하면 이(利)와 뒤섞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공자가, “군자는 의를 잘 알고, 소인은 이를 잘 안다”(「이인」 16장)라 하고 맹자가,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양혜왕 상」 1장)라고 한 것은 이런 뜻이었다. 의를 따라 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기뻐하고 복종하며 사람들이 친밀히 여기고 떠받들어, 저절로 안정과 부유와 존귀와 번영의 효과를 이룬다. 단지 의가 이(利)이겠거니 여기고서 실행한다면 이것은 이익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利)를 실행하는 것이라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의義를 실행하면서 이(利)를 구하는 것은 그 폐단이 인(仁)을 빌려 “이(利)를 따라 행동하는”(『논어』 「이인」 12장) 지경에 이르게 된다.--- p.49
성인과 거리가 이미 멀어 경(經)은 부스러기만 남고 말은 빠진 게 많아 세상의 공부하는 사대부들은 스스로 최고의 보배라 여기면서도 실은 사악한 말에 의해 잘못된 것인 줄 몰랐다. 지금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오랑캐 풍속에 완전히 빠지지 않은 것은 다행히 공자와 맹자가 남겨 준 가르침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유자(儒者)들은 선택이 정밀하지 못했고 식견이 철저하지 못했다. 많기만을 탐내며 얻기에만 힘쓰다 도를 해치는 정도가 이렇게 심각한 지경까지 이를 줄 몰랐다. 『대학』은 본래 『예기』 안에 있는 것으로 한 편의 글이기는 해도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상세하지 않다. 고정(考亭) 주씨(주희)에 이르러 처음으로 경(經) 1장, 전(傳) 10장으로 나누어, 경은 공자의 말이고 전은 증자(曾子)의 뜻으로, 문인(門人)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견해는 주씨가 마음으로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에서 나온 말이지 고증(考證)한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후학들은 스스로 분별할 줄 모르고 공자의 말을 단지 증자가 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도를 해친 게 더 심하다 하겠다.--- p.61~62
중(中)이라는 글자에 대해 종전 제유(諸儒)는 깊은 사고가 결여돼, 혹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을 중이라 하고 혹 “한 편으로 쏠리지 않고 기대지 않는 것”을 중이라 했는데 모두 합당하지 않다. 중이라 함은 두 끝[兩端]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으로 강(剛)과 유(柔), 대(大)와 소(小), 후(厚)와 박(薄), 심(淺)과 천(深) 그 둘 사이의 중간을 중中이라고 한다. “양 끝을 잡아 그 중간을 백성에게 썼다”(『중용발휘』 6장)고 말한 것이 그 예다. 또한 중에는 강(剛)하지도 않고 유(柔)하지도 않으며 온당(穩當)하고 평정(平正)하다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중은 반드시 권(權)이 필요하고 그런 다음에 합당함[當]을 얻는다. 가운데만 잡고 권이 없으면 하나로 정해져 변화가 없는 폐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맹자는, “가운데[中]만 잡고 융통성[權]이 없는 것은 하나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진심 상」 26장)고 한 것이다. 순임금과 탕임금이 가운데[中]를 잡은 일 같은 경우는 권을 말하지 않았어도 권이 자연스럽게 중에 있다.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권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중은 반드시 권을 핵심으로 한다. 소위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을 중이라고 풀이하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권을 써서 합당함을 얻은 이후에 중이 놓이는 것이지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 바로 중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한 편으로 쏠리지 않고 기대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은 중이라는 뜻에서 더욱 멀다.--- p.71~72
사서 체계는 단순한 독서법이 아니다. 사서 체계는 주자가 구상한 이상적 사대부를 형성하는 기본 프레임이다. 여기에 『대학』의 중요성이 있다. 주자가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해 「대학」을 “덕德에 들어가는 문”[人德之門]이라 칭한 것은 독자가 거대한 성리학 체계에 들어가는 문도門徒가 된다는 의미를 명시한다. 『논어』·『맹자』를 성리학의 틀 안에서 해석한다는 전제를 수락한다는 뜻이다. 진사이의 『대학정본』은 이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명이다. 『대학장구』의 ‘개념에 치우친 해석’을 거부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심에 두고 사변으로 감쌌던 개념들을 파기한다. 진사이의 『대학』 읽기는 주자와 완전히 다르다. 진사이는, 대상/사물[物]이해에는 근본[本]과 말단[末]이 있으므로 근본에 힘써야 한다는, 순서중심으로 읽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때 물物은 백성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윤리적으로 보면 이때 물은 인륜이 된다. 백성을 우선으로 한다는 사회적 대의가 중요시되면서 사변성이 탈락된다. 사회 운용의 청사진으로 『대학』이 변한다. 변용과정은 언어표현의 탈바꿈이 아니므로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p.196~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