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voting)의 사전적 의미는 ‘사적 모임이나 선거에서 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선택(choice)’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공직자를 선출하는 선거(election)에서 유권자들이 행하는 선택행위이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가 그러한 종류의 선거이다. 민주주의와 선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데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없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선거 없이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없다. --- pp.11~12
사회학적 접근법은 선거 과정 속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태도 형성과 변화, 그리고 발전 과정을 체계적이고 동태적인 방법으로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적 관점은 사회적 집단에 대한 일체감이 투표행태와 같은 정치적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투표행동이 사회경제적 지위, 종교, 기타 사회적 속성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데, 이는 투표 선택이 오랫동안 이러한 요소와 상호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집단은 유권자의 신념체계, 가치체계, 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 동일한 경험을 하거나 서로 교류하면서 유사한 신념 혹은 가치체계를 형성한다. --- p.39
현재 한국에서 유권자의 선택과 정당체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균열은, 지역균열, 세대균열 그리고 이념균열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의할 점은 한국이 2002년 이후 점진적인 ‘장기 재편성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사회균열의 영향력이 시기별로 변화하고 부침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지역마다 다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는 세 가지 균열이 중첩, 교차하고 있다. 먼저 세대균열은 이념균열과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연령이 낮은 세대는 진보적, 연령이 높은 세대는 보수적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역은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투표 선택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 p.64
정당일체감을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궁극적인 요인으로 간주하는 미시간 학파의 입장은 1950년대에 진행된 일련의 연구들을 집약해 1960년에 출간한 『미국 유권자』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술한 것처럼 미시간 모델에서 정당일체감은 유권자가 안정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정 정당에 대한 심리적 애착심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서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정당일체감이 ‘심리적인’ 태도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시간 모델에서 얘기하고 있는 정당일체감은 머릿속에서 합리적(rational)이고 인지적(cognitive)으로 계산되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예를 들어 특정 정당이 나한테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을 주었고 어떤 손해를 입혔는지 계산하는 것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정서적(affective) 유대감이 형성될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 p.72
유권자가 특정 정당을 선택할 경우 해당 정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현실화할 것인지에 대한 확률이나 예감이 어디에 근거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유권자의 ‘예감’이 과거의 업적과 경력에서 근원하는지, 정당 정책이나 후보자의 공약에서 근원하는지, 아니면 양자가 유기적으로 관계되었는지에 따라 합리적 선택 이론에 대한 이론적 시각이 분화되고 있다. --- p.103
한국의 선거에서 이념과 이슈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통령 단임제와 정당체제의 불안정성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이슈 투표도 과거에 비해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이슈 투표의 중요성도 점차 커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 p.151
정치학에서 인지심리학적 접근법은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는 ‘왜’ 그리고 ‘어떻게’ 정치적 요인을 선택해서 정치적 판단에 이르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연구 방법이다. 인지심리학은 개인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자체보다는 그 요인이 어떠한 인지 과정을 통해 각 개인의 행위와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 p.156
모든 경기에서 규칙이 중요하듯 대의민주주의에서도 선거와 관련한 제도, 특히 유권자의 선호(표)가 정치적인 결과(의석)로 어떻게 전환되는지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제도는 어떠한 형태로든 유권자의 투표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선거제도가 어떻게 설정되었는지에 따라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가 달라질 수 있다(Farrell, 1997; Taagepera and Shugart, 1989). 이러한 이유로 선거제도는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그 결과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Knight, 1992). --- p.190
대의제를 좀 더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대표를 되도록 많이 선출하거나 선거를 자주 치르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자는 더 많은 대표자를 통해 더 많은 주권자의 목소리를 정치 과정에 투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후자는 대표의 책임을 따질 수 있는 권리를 주권자에게 더 자주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더욱 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은 더 많은 비용을 수반한다. 대표를 많이 뽑거나 선거를 자주 치르게 되면 그만큼의 정치비용이 추가되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비용이 적당한지에 대해서는 이념적·학술적 논쟁과 함께 주권자인 국민의 합리적 판단을 요구한다.
--- pp.224~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