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는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고 그레타가 다시 내게 물었다. “혹시 숲에서 어린 소녀를 만났어요?”
“네, 만났어요. 숲에서 나오자마자 자갈길에서요. 왜요?” 내가 놀라서 되물었다.
“소녀가 일곱 가지 꽃을 꺾어달라고 하던가? 하지 밤에 베개 밑에 둘 거라면서?” 군나르가 물었다.
“네.” 나는 축축한 바지를 살짝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도와줬어요?” 그레타가 물었다.
“아니요,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럴 힘도 없었고 또 그럴 기분도 아니었고.”
그레타가 놀란 얼굴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죽음의 저주?” --- p.41~42
어느새 나는 그들이 아무리 기이한 얘기를 해도 따져 묻지 않고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숲을 수색하며 그들과 나눈 대화를 곱씹다 보니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그레타는 앞으로 며칠 동안 내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을까? 세 가지 시험이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힘든 걸까? --- p.121
전화기가 귀를 뜨겁게 달구었고 손에 땀이 흥건하게 찼다. 나는 유령이 여전히 거울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지금은 유령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다 내 신세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대표님, 정말 진지하게 묻는 건데요.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엘피이벤트에 따라갈 수 있는 겁니까? 내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주실 수는 없나요? 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고 저는 마술을 아주 잘하잖아요, 안 그래요?”
“마술을 잘하는 건 맞아. 그리고 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
폰투스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계속 말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다시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 p.290~291
폰투스가 전화를 끊었을 때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댐이 무너진 듯 감정이 복받쳤고 한탄의 소용돌이가 솟구쳤다.
“평생을 예술에 바쳤는데. 엿 같은 삶을 통째로! 모든 걸 예술에 바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돈벌이가 좋은 직업을 가졌을 겁니다. 어쩌면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헬리콥터를 타고 출근하는 사장님처럼요. 청소년 시절에는 마술에만 전념하기 위해 아주 멋진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어요. 그만큼 내 인생에서 마술이 중요했다고요. 이제 어떻게 먹고살죠?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마술뿐인데. 내 한 몸 제대로 건사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여자를 사귈 수 있을까요? 나는 외톨이에 가난하고 벌써 마흔다섯 살이나 됐어요. 내게 즐거운 하지 축제를 기원해준 사람은 전자 제품 할인점 직원뿐이었고요.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 --- p.293
티베덴 주민들은 눈물 신을 지하 왕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아스팔트 보행자를 제물로 바쳤었다. 투덜대고 이기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 사라지더라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을 그런 사람을 골라서.
투덜대고, 이기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 묵직한 불길함이 나를 엄습했다.
그레타와 군나르의 집에 처음 갔던 날 저녁이 생각났다. 그때 그레타가 이것저것 사적인 질문들을 많이 했었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부모와 자주 연락하는지, 형제자매가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물었었다. 그럼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안톤 씨를 걱정할 사람은 없겠네요?
나는 기운을 차리고 벌떡 일어섰다. 무릎이 휘청거렸다.
노부부와 변덕 신은 내게 단순해 보이는 과제를 주었지만, 나는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이제 나는 그게 뭔지 확실히 알았다.
그들은 나를 투덜대고 이기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눈물 신의 제물이 되어도 걱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으로.
--- p.385~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