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를 여행하다가 비엔나에 와 거리를 거닐다 보면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건축물이다. 도시마다 인상이 다르기 마련인데, 크고 화려한 비엔나 건축물을 보노라면 바로크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건축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하지 않았나? 그러니 자연스럽게 비엔나 여행은 바로크 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비엔나 건축물 중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건축 예술의 결정체라 할 만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 p.19
지붕정원Tree tenants에는 250종류의 나무관목, 초목 등을 심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고 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자 했다. 건물의 전반적인 형태는 아파트처럼 삭막한 현대식 직선형태의 건물이 아닌 곡선과 불규칙하게 벽을 작은 단위로 잘라 서로 다른 색과 질감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건물이다. --- p.35
세기 말 비엔나의 화려한 외관, 아니 오늘날 비엔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과 계획도시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도 대개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소위 링 스트라세 건설을 통해 비엔나를 새롭게 재건하면서 시민 계급의 욕구를 무마시키고 선정善政을 베풀고자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1858년부터 1888년 사이에 링 스트라세를 만들고 거기에 각종 기념비적인 건물들을 세워 비엔나 시민들의 생활공간으로 개방한 것은 아무래도 1848년 혁명의 불똥을 꺼뜨리면서 잠재적 불만 요소를 일소하기 위한, 그럴 듯한 개혁이었던 것이다. --- p.77
비엔나에 살면서 생긴 습관 하나.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눈부신 햇살을 보면 칼렌베르크Kalenberg 산에 미치도록 오르고 싶다. 집에서 지하철, 전차, 버스로 갈아타고 거의 40~50분 정도 걸려 오를 수 있는 곳. 비엔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비엔나 도시 북쪽에 칼렌베르크가 있다. 프랑스 니스Nice에서 솟아오른 알프스 산맥이 동쪽으로 내달려 도나우 강 앞에서 끝나는데, 마지막 끝자락이 구릉 같은 산 칼렌베르크다. --- p.92
확언컨대 비엔나커피는 있다. 물론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라는 이름의 커피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말하는 비엔나커피는 다행히도 있다. 외국에서 비엔나 시민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지칭하기 위해 ‘비엔나커피’라고 하는 커피를 팔고 있을 뿐이다. 서울에서, 뮌헨에서, 모스크바에서 ‘비엔나커피’라는 커피를 마셔 보았다. --- p.118
카페 첸트랄에는 작가나 음악가, 미술가뿐 아니라 반유대주의자들과 시오니스트들, 사회주의자들과 국수주의자들이 자주 출몰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한때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도 종종 이곳을 찾았다는 후문이 전해오는 카페 첸트랄. 이곳은 음울한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바람개비 같은 곳이기도 했다. --- p.129
이것은 기기 막힌 메타포다. 클림트는 한 폭의 그림에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음양의 이론을 교묘히 사용하고 있다. 밝음과 어둠을 기본적으로 대비시키면서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 젊음과 노쇠,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희망과 절망, 영원과 순간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듯이, 어느 하나 고정된 가치의 절대값이란 없다. 시각의 영점이란 없다. 사랑 너머에 존재하는 절망과 슬픔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사랑도 변한다. 형태를 바꾸고, 본질도 헷갈리게 만든다. --- p.147
비발디의 말년은 비참했다. 다른 작곡가들처럼 비발디는 별다른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종종 자신의 필사 악보를 쥐꼬리만 한 가격에 팔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비발디를 후원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오스트리아 황제마저 그가 비엔나에 온 뒤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 생활고와 현실에 대한 낙담을 견디지 못한 비발디는 결국 비엔나에 쫓겨온 지 1년 만인 1741년 7월 28일, 세 들어 살던 집에서 극빈자 상태로 자살해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 p.184
요즘엔 이조차 보기 쉽지 않지만, 봄이 되면 한국에서는 집 대문이나 사무실 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한자로 쓴 입춘첩立春帖을 양쪽에 붙여 놓곤 했다. ‘봄을 맞이해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뜻의 소망을 담은 일종의 축하글이라 할 것이다. 이는 집이나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곳을 드나들거나 그 글귀를 접하는 손님들 모두에게 축복을 비는 의미를 담고 있다. --- p.224
햇볕 좋은 날, 케이블카를 타고 알프스 정상에 오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1,300m 지점에 내리면 70km에 달하는 동굴을 돌아볼 수 있다. 그 거리를 모두 다니다간 하루 안에 내려가기 어렵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일부만 돌아본다. 또한 빙하기 동물의 화석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동굴도 방문할 수 있다. --- p.252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쓴다.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기 전에 남의 생각과 행동이 더 크게 와 닿는다.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소위 ‘나와 너는 기본적으로 생각이 비슷해야 한다.’ 라는 강박관념이 ‘나와 너는 기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 라는 의식이 강한 유럽 사람들의 생활공간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몸과 말로 표출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 p.270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여행은 느낌표와 마침표, 쉼표, 가운뎃점, 따옴표, 말줄임표, 그리고 그 외의 친구들과의 여정이다. 인생은 단독의 축제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생성된 한 줄 문장형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다. 그동안 내 여행은 느낌표로 충일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장이 마무리되지 못한다. 한국의 고전문학자로서 비엔나를 통해 내 정체성을 되묻고, 몇 개의 상관성을 지닌 가운뎃점을 찾았다고 고백하면, 너무 늦은 깨달음일까? 내 여행의 마침표를 어느 순간,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찍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비엔나는 천재다!’라는 느낌표 대신, ‘나는 무엇이다.’고 답할 문장을 찾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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