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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나비

다시 시작하는 나비

최측의농간 시집선-00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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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13*188*20mm
ISBN13 9791188672127
ISBN10 118867212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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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깨는 좁은 뜨락이다.
꽃이 피어 있다.

누구의 입김으로 여기에 남은 흔적
이토록 현란하게 흔들리다가
붉은 백 겹의 혓바닥으로 꽃 피어난 걸까.

꽃은 또한 발자국이다.
우리가 큰 소리로 아, ‘확인’이라 외치며
남기는 발자국,
우리는 떠나도 뒤에 남아 홀로 피어나듯.

춤추는 발자국의 길,
당신은 언제나 아프다.

언제나 두고 와 돌아보는 어제처럼
당신의 완결된 어깨의 길,
어쩌면 쓸쓸하게 하늘에 닿아 있을까.

당신의 어깨너머엔
날아가는 커다란 눈, 참 여러 개. ---「당신의 어깨 -시의 장소」중에서

나비를 보았다.

깊은 밤, 내 숨소리 허공을 향해 올라갔을 때.

우리의 기질이 나비의 날개를 가진다면

우리는 다만 있는 일만으로 족하리라. 왜냐하면
버려버릴 것을 모두 가벼운 날갯짓으로 벗어버린 뒤에

우리는 알몸으로 비로소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때에 내가 내 육체를 향해 새삼스러이 말을 걸리라.
“안녕! 예쁜 나여!”

나비는 언제나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찾는다. 그가 말했다.
“가능하면 더 깊은 곳을”

어느 날인가 나는 그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어째서지?

“잘 몰라,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그리고 그는 날아갔다.

나는 덜덜덜 흔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엔 바람이 칠흑이 그리고 핵이 남았다.

꿈꾸는


나는 다시 나비를 보았다, 아니 오히려 가졌다.

내가 모든 여행길의 돌짝밭에서 돌아올 때
조심스러운 비상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나비의 꿈」중에서

우리는 모든 것들의 등 뒤로 돌아선다
시대가 우리에게 잘 맞지 않는
의복처럼 우리를 건드리고 지나간다
안녕 누더기여 안녕

‘건강하게’
정신이 외친다 ‘건강하게’
원칙이여 ‘건강하게’

깜깜하다 바람소리
우리는 숨어서 키웠다 언젠가는
함께 있고 싶었다 어떤 날 미친 듯이
축제를 벌이고 싶었다 순진한 혼(魂)들,

나는 눈물이 나왔다

귀여 문을 열어라 편재(遍在)하시는 귀여 문을 열어라
열려라 콩 참깨 예수그리스도

우리는 요정처럼 자유로웠다

상한(上限)과 하한(下限)까지 하루에
골백번 드나드는 요정 우리는 모든 것들
뒤에서 또 새로이 또 하나의
등이 되었다 흐느끼며

우리는 효율을 건져내려고
많이 삐걱거렸다 저마다 혼자만큼씩
각각, 구체적으로, 삶의 사건과,
만났다, 할 수 없이, 지치며,

우리의 깜깜한 배경 위로
파랗게 불꽃이 지나간다
손톱이 자라고 시대가 흔들린다 ---「매복」중에서

낮에 애들 앞에서 어설픔으로 진저리 치며 그러나 꾹꾹 눌러 참으며 글쓰기와 꿈꾸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고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종일을 굶었다, 견딜 수 없었다, 이, 수없는 말들, 허망함으로 이빨을 가는, 오 떠도는, 우리가 만들어낸, 저 넝마들을.

이 턱없는 삶. 나는 밥풀딱지같이 세계라는 밥그릇의 가두리에 붙어 있다, 용서해다오, 세계여 또는 밤이여,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들어낸다, 바깥쪽으로?

밤에, 지하철 창에 비치는 어떤 한 여자, 안의 짐승이 울부짖었다. 맞아? 틀림없어? 너냐구, 그래? 그리고 묵시처럼 찾아오는 눈물…… 우리가 이름 붙이지 못하는 어떤 알맹이를 향하여 나는 떨며 떨며 서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향해 기어갔다, 날지 말자, 어쨌든 당분간은. 나는 통곡하며 그 여자에게 빌었다, 제발, 너라도 되어야 해, 그렇게 하자, 그것으로라도 나 스스로의 유령이 되지 말아야 한다. ---「지하철에서 -추함에 길들기 3」중에서

감기, 아무렴, 난 감잡고 있지,
이 삶에 대해, 감잡고 있지,
뭔가 삐걱거리는 것을,

잘 안 맞아 돌아가는 것을,

감기, 내 삶에 대한 내 삶 전체의
징후, 내 기질이 내 삶에 대해 가지는 관계,
안에서 어긋나는,

조심조심, 잠재우듯이,
우리는 우리의 성마른 기질을 향해서
달래며 말했다, 그래 얘,
살아남은 게 어디니,

기침을 하며, 안에서 우리의 삶을
밀어내며 가까스로
우리는 말했다,
그게 어디니.

그러나 밤에 기침은 심해졌다. 홀로 있을 때
내성(內省)의 번쩍이는 칼이
우리의 삶을 사정없이 우리의 바깥으로
내몰았다. ---「지옥에서」중에서

푹푹 썩자, 나여, 적극적으로, 썩어문드러지자, 지금은 생생한 나여,

세상에―알아?―내 가슴이 그때―그대의 모욕당한―그―존재의 껍질의―너덜너덜한―게다가―그리고―나는―눈 돌리지 않았어―나는―그―천연색 사진을―꼼꼼히―들여다보았어―

나는 울지 않았어, 왜냐하면 감당했기 때문이야.
나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어. 내 안에서 뽀글뽀글 아주 천천히,
세목의 분노가 치솟아 올랐어. 그래도 나는 흥분하지 않았어.

나는 다 내다 버렸어. 그때 거짓을, 우리가 삶이라고
적당히 겉옷 입혀 흥흥 참아내던 너절한 양식을,
역사라는 미명의 폭력을, 내가 사회라고 부르며
어정쩡하게 기다리던 공동의 운명에의 희망을.

왜냐하면 젊어서 죽은 자여, 나는 죄다 싸안기로 한 거야.
통째로… 아예… 모두…

나는 그대를 안고 사는 거야, 확실히. 나는 공범이야.
아시지. 누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썩어가겠어.
그날 이후로 나는 (아주 열심히 썩으면서)

아무 말도 친구들과… 나누지 않기로 했어…

세계는 덫으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날개를 꺾고,
나는 잠자던 내 피멍들의 까만색 울혈들이
다시 그 덫을 향해 법석이는 소리를 들어.

당당한 파멸에의 예감. 침묵과 침묵의 골에서
날선, 삶의, 시퍼런, 생생한, 기운들이, 죄다, 덫을 향해
일어서는 소리… 꼭 한 번 살고, 꼭 한 번 죽는 자들의…
죽여라, 그럴 수 있거든. 죽여라, 백 번이라도.
---「L씨의 주검에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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