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어깨는 좁은 뜨락이다.
꽃이 피어 있다.
누구의 입김으로 여기에 남은 흔적
이토록 현란하게 흔들리다가
붉은 백 겹의 혓바닥으로 꽃 피어난 걸까.
꽃은 또한 발자국이다.
우리가 큰 소리로 아, ‘확인’이라 외치며
남기는 발자국,
우리는 떠나도 뒤에 남아 홀로 피어나듯.
춤추는 발자국의 길,
당신은 언제나 아프다.
언제나 두고 와 돌아보는 어제처럼
당신의 완결된 어깨의 길,
어쩌면 쓸쓸하게 하늘에 닿아 있을까.
당신의 어깨너머엔
날아가는 커다란 눈, 참 여러 개. ---「당신의 어깨 -시의 장소」중에서
나비를 보았다.
깊은 밤, 내 숨소리 허공을 향해 올라갔을 때.
우리의 기질이 나비의 날개를 가진다면
우리는 다만 있는 일만으로 족하리라. 왜냐하면
버려버릴 것을 모두 가벼운 날갯짓으로 벗어버린 뒤에
우리는 알몸으로 비로소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때에 내가 내 육체를 향해 새삼스러이 말을 걸리라.
“안녕! 예쁜 나여!”
나비는 언제나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찾는다. 그가 말했다.
“가능하면 더 깊은 곳을”
어느 날인가 나는 그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어째서지?
“잘 몰라,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그리고 그는 날아갔다.
나는 덜덜덜 흔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엔 바람이 칠흑이 그리고 핵이 남았다.
꿈꾸는
핵
나는 다시 나비를 보았다, 아니 오히려 가졌다.
내가 모든 여행길의 돌짝밭에서 돌아올 때
조심스러운 비상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나비의 꿈」중에서
우리는 모든 것들의 등 뒤로 돌아선다
시대가 우리에게 잘 맞지 않는
의복처럼 우리를 건드리고 지나간다
안녕 누더기여 안녕
‘건강하게’
정신이 외친다 ‘건강하게’
원칙이여 ‘건강하게’
깜깜하다 바람소리
우리는 숨어서 키웠다 언젠가는
함께 있고 싶었다 어떤 날 미친 듯이
축제를 벌이고 싶었다 순진한 혼(魂)들,
나는 눈물이 나왔다
귀여 문을 열어라 편재(遍在)하시는 귀여 문을 열어라
열려라 콩 참깨 예수그리스도
우리는 요정처럼 자유로웠다
상한(上限)과 하한(下限)까지 하루에
골백번 드나드는 요정 우리는 모든 것들
뒤에서 또 새로이 또 하나의
등이 되었다 흐느끼며
우리는 효율을 건져내려고
많이 삐걱거렸다 저마다 혼자만큼씩
각각, 구체적으로, 삶의 사건과,
만났다, 할 수 없이, 지치며,
우리의 깜깜한 배경 위로
파랗게 불꽃이 지나간다
손톱이 자라고 시대가 흔들린다 ---「매복」중에서
낮에 애들 앞에서 어설픔으로 진저리 치며 그러나 꾹꾹 눌러 참으며 글쓰기와 꿈꾸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고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종일을 굶었다, 견딜 수 없었다, 이, 수없는 말들, 허망함으로 이빨을 가는, 오 떠도는, 우리가 만들어낸, 저 넝마들을.
이 턱없는 삶. 나는 밥풀딱지같이 세계라는 밥그릇의 가두리에 붙어 있다, 용서해다오, 세계여 또는 밤이여,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들어낸다, 바깥쪽으로?
밤에, 지하철 창에 비치는 어떤 한 여자, 안의 짐승이 울부짖었다. 맞아? 틀림없어? 너냐구, 그래? 그리고 묵시처럼 찾아오는 눈물…… 우리가 이름 붙이지 못하는 어떤 알맹이를 향하여 나는 떨며 떨며 서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향해 기어갔다, 날지 말자, 어쨌든 당분간은. 나는 통곡하며 그 여자에게 빌었다, 제발, 너라도 되어야 해, 그렇게 하자, 그것으로라도 나 스스로의 유령이 되지 말아야 한다. ---「지하철에서 -추함에 길들기 3」중에서
감기, 아무렴, 난 감잡고 있지,
이 삶에 대해, 감잡고 있지,
뭔가 삐걱거리는 것을,
잘 안 맞아 돌아가는 것을,
감기, 내 삶에 대한 내 삶 전체의
징후, 내 기질이 내 삶에 대해 가지는 관계,
안에서 어긋나는,
조심조심, 잠재우듯이,
우리는 우리의 성마른 기질을 향해서
달래며 말했다, 그래 얘,
살아남은 게 어디니,
기침을 하며, 안에서 우리의 삶을
밀어내며 가까스로
우리는 말했다,
그게 어디니.
그러나 밤에 기침은 심해졌다. 홀로 있을 때
내성(內省)의 번쩍이는 칼이
우리의 삶을 사정없이 우리의 바깥으로
내몰았다. ---「지옥에서」중에서
푹푹 썩자, 나여, 적극적으로, 썩어문드러지자, 지금은 생생한 나여,
세상에―알아?―내 가슴이 그때―그대의 모욕당한―그―존재의 껍질의―너덜너덜한―게다가―그리고―나는―눈 돌리지 않았어―나는―그―천연색 사진을―꼼꼼히―들여다보았어―
나는 울지 않았어, 왜냐하면 감당했기 때문이야.
나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어. 내 안에서 뽀글뽀글 아주 천천히,
세목의 분노가 치솟아 올랐어. 그래도 나는 흥분하지 않았어.
나는 다 내다 버렸어. 그때 거짓을, 우리가 삶이라고
적당히 겉옷 입혀 흥흥 참아내던 너절한 양식을,
역사라는 미명의 폭력을, 내가 사회라고 부르며
어정쩡하게 기다리던 공동의 운명에의 희망을.
왜냐하면 젊어서 죽은 자여, 나는 죄다 싸안기로 한 거야.
통째로… 아예… 모두…
나는 그대를 안고 사는 거야, 확실히. 나는 공범이야.
아시지. 누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썩어가겠어.
그날 이후로 나는 (아주 열심히 썩으면서)
아무 말도 친구들과… 나누지 않기로 했어…
세계는 덫으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날개를 꺾고,
나는 잠자던 내 피멍들의 까만색 울혈들이
다시 그 덫을 향해 법석이는 소리를 들어.
당당한 파멸에의 예감. 침묵과 침묵의 골에서
날선, 삶의, 시퍼런, 생생한, 기운들이, 죄다, 덫을 향해
일어서는 소리… 꼭 한 번 살고, 꼭 한 번 죽는 자들의…
죽여라, 그럴 수 있거든. 죽여라, 백 번이라도.
---「L씨의 주검에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