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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유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로봇 유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승민 | 새움 | 2019년 04월 2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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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92g | 136*200*20mm
ISBN13 9791189271558
ISBN10 118927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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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한 가정용 로봇이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주인 박 씨를 살해한 로봇은 5년 전 구입한 유론 1세대 로봇으로 자세한 살인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한 주민의 제보에 따르면 박 씨가 평소 로봇을 학대하는 것 같았다는 증언이 전해진 가운데 로봇조사국 요원이 해당 로봇을 긴급 체포했으며…….’
나와 서호 씨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됐다. 서호 씨의 심장이 또다시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 순간 내 심장도, 아니 이스튬 펌프도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이스튬 펌프」중에서

말 한마디에 변화하는 유나의 표정이 사람처럼 느껴져서 나도 좋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은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선의로 행동해도 상대는 악의의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서른이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아직도 그런 순간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한데 유나와의 소통은 어느 정도 공식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적어도 내가 선의로 한 행동에 대해 악의로 맞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기 전에 그 진의를 먼저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프로세스를 가동할 것이라는.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반려 로봇을 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악의를 악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많은 로봇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잔인하게 학대를 당하고 있겠지만. ---「로봇해방조직」중에서

만약 이렇게 홀로 달리다가 인적 없는 산길 같은 곳에서 방전이 된 채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 며칠, 몇 달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는다면. 비가 내리고 눈이 쌓여 겉은 부식되고 내부로 습기와 벌레들이 파고들어 회로와 시스템이 망가지면.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말하는 죽음의 단계에 이르는 것일까. 폐기와 죽음은 뭐가 다를까. 로봇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긴 한 것일까. 파워를 끄면 그게 곧 죽음 아닐까. 인간이 삶의 끝을 마무리하는 숭고한 절차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그리고 그 의식이 인류의 오랜 역사와 궤를 같이 해온 것을 보면 그들의 죽음은 로봇의 온ㆍ오프와는 근원적으로 다른 것이겠지. ---「죽음과 방전 사이」중에서

“임신이 가능한 로봇은 곧 섹스도 가능하다는 걸 의미해요. 이래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로봇들이 인간에게 기여하고 봉사하던 역할, 그 본질적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고요. 인구 절벽 문제 해결이니 생산 가능 인구 증대를 위한 획기적 대안이니 하는 말들은 그냥 구실일 뿐이에요. 심지어 그들은 렌탈 마케팅까지 준비하고 있어요. 지겨워지면 언제든지 바꾸라고.” ---「죽음과 방전 사이」중에서

모든 진실과 거짓들이 서로의 경계를 파괴하며 폭력적으로 뒤엉키는 세상. 이 혼란스러운 땅에 발을 디딘 채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생존자」중에서

“유나, 이곳에 갇혀 지내면서 하루 종일 어떤 상상을 하는지 알아? 하루에도 몇 번씩 밖으로 나가는 상상을 해.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질 광경을 그려보지.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그리고 그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지 매일매일 더 잔인하게. 그러니 아마도 내 상상이 현실만큼이나 충분히 끔찍할 거라고 생각해. (…) 고마워. 네가 있어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그리고 길게 입을 맞췄다. 유나의 입술은, 닳지도 늙지도 않는 그녀의 입술은 여전히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따뜻하다.”
“온도 감응 장치가 서호 씨의 입술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해요.”
“그래? 그걸 이제야 알았구나.”
---「생존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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