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사람들이 왜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 지 않는지 의아해졌다. 특히 전문 셰프인 내 친구들조차 말이다. 너무 피곤해서, 너무 배가 고파서,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어떤 음식을 내놓는지 보고 싶어서? 밖에서 타코나 간단한 요깃거리, 또는 근사한 식사를 하기 위한 이유로 충분히 납득은 간다. 다만 내게는 집에서 가족, 친구들과 요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휴식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나처럼 본능적, 습관적으로 집에서 요리를 하는 셰프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업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서빙하면서 벌어지는 모든 드라마를 사랑하지만, 살가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집에서 하는 요리의 따뜻함도 그에 못지않게 사랑한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식자재를 모으고, 요리를 하고,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하는 그 어떤 행위보다 심오하며 즐겁다. ---19쪽
운좋게도 나는 요식 업계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왔으며, 버클리에 위치한 셰 파니스 레스토랑의 멋진 주방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내가 가진 최고의 기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큰아들이 여름만 지나면 집을 떠나 대학에 갈 정도로 크도록 여태 아이들에게 요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 헨더슨이 집을 떠나 자기 손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 되자 과연 내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었나, 요리의 기본 원칙 몇 가지를 체계적으로 강조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20쪽
이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주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레시피들을 적어 보낸 것이다. 내가 전화를 받지 못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책이자, 내 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구든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 간편하고 맛있는 요리를 제대로 완성하고, 요리에 실패했을 때 최대한 수습하고, 요리 실력을 한 단계 높이고자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설명을 모아놓은 것이다. ---… 처음에는 곁가지를 다 쳐내고 한 장---章에서 하나씩 딱 열두 가지 레시피를 익혀두면 충분하다. 그후 추가로 열두 가지를 익히면 옵션이 늘어날 테고, 매번 열두 개씩 레시피를 늘려갈 때마다 요리 자체에 대한 통찰력도 깊어져 요리하는 행위의 만족감과 먹는 행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은 물론, 그 만족감과 즐거움, 사랑을 주방과 식탁에서 나누게 될 것이다. ---22~23쪽
주방에서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왜 그렇게 따르릉거리는 타이머에 목숨을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오븐에 넣은 크루통을 태우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오븐에 넣은 음식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늘과 안초비를 다지고,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채소를 씻고, 그 와중에 화제를 바꾸고, 와인을 따고, 크루통을 굽고. “맞는 말이야.” 나는 믿음직스러운 돌림식 타이머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살짝 돌려주는 것만으로 그 모든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거든.” ---40~1쪽
두툼한 토스트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생마늘 한 조각을 토스트 윗면에 문지르고---토스트의 거친 표면이 마늘을 갈아준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질 좋은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다음 소금을 살짝 뿌려주는 것이다. 토마토 철에는 토스트 표면에 마늘과 토마토 반쪽을 문지르고 토마토를 으깨 과육과 즙을 빵에 조금 올린 다음 올리브유를 두른다. 이때 사용하는 재료들이 최상급이면 두툼한 토스트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을 내기도 한다. ---44쪽
콩과 돼지고기는 궁합이 잘 맞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둘의 관계는 어찌나 돈독한지 항상 같이 다닐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잘 어울리는 행복한 커플처럼, 콩과 돼지고기는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괜찮은 재료지만 두 개가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 둘은 조리 방식에 관계없이 어우러진 맛을 내는 법을 아는 것 같다. 베이컨이든, 판체타든, 어떤 종류의 햄이든, 뱃살이든 쪄낸 고기이든, 심지어 돼지고기 한 조각만 있어도 콩은 맛이 확 좋아진다. ---76쪽
나는 키안티 지방의 어느 별장 주방에서 산달이 가까워진 이탈리아의 오페라 가수와 딸을 돌보는 가수의 어머니를 위해 한밤중에 리볼리타를 만든 적이 있다. ---… 막 공연을 끝낸 오페라 가수는 수프를 배부르게 먹고 칭찬을 건넸다. 그녀의 어머니도 수프의 맛을 칭찬했지만,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고 국자를 손에 들고 있으며 앞치마에 묻은 음식 얼룩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미국인인 내가 그 수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고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나는 막 아기가 태어난 아버지처럼 자랑스러웠다. ---96쪽
운좋게 아주 좋은 올리브유를 찾아냈다면 절대 아끼지 말자. 올리브유는 와인과 달리 오래 보관해도 맛이 좋아지지 않는다. 기름은 그 원재료에서 짜내는 순간부터 서서히 산패되기 시작한다. 나와 아주 가까운 요리사 친구의 어머니는 갓 결혼했을 때 근사한 올리브유를 선물로 받았고, 몇 년 동안 그 올리브유를 특별한 날에만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요상한 맛이 났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최근에 아들의 식당에서 신선하고 품질이 좋은 올리브유를 맛본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이국적인 풍미를 내던 그 오래된 올리브유가 사실 그냥 상한 기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올리브유는 그 정도로 애지중지 아낄 필요가 없다. ---109쪽
그날 서서히 역을 출발하는 기차 안에서 기름이 밴 빈 종이봉투를 들고 사프란 향이 은은하게 나는 아란치니의 마지막 한입을 음미하면서 나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하나, 리소토는 분명 만들 가치가 있다. 하다못해 먹다 남은 리소토를 얻기 위한 용도만이라고 해도. 둘, 아란치니를 하나만 사는 녀석은 바보임이 틀림없다. ---209쪽
우리 할머니는 뜨거운 가스레인지 옆에 서서 입안 가득 칠면조 고기를 넣은 채 자못 신나는 표정으로 추수감사절의 노고를 토로하며 이렇게 불평했다.
“나는 칠면조 목이나 먹으련다. 늙어서 목만 먹어도 충분하거든. 나는 신경쓰지 말고 너희들은 어서 가서 식탁에 앉아라.”
그때 할머니가 즐긴 것은 단지 좋은 부위를 양보하고 희생한다는 기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명절용 칠면조에서 뚝뚝 떨어지는 기름과 육즙 속에서 오랫동안 뭉근히 조리한 칠면조 목 부위는 그야말로 맛이 기가 막히니까. ---282쪽
그릴을 다 사용한 후 뚜껑을 꼭 닫으면 미처 연소되지 않은 숯불이 산소 부족으로 꺼지게 되므로 다음번에 그릴을 사용할 때 타다 남은 숯에 다시 불이 붙어 그 결과 연료가 절약되고 보다 넓은 범위에 균일하게 조리용 숯불을 피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만약 여러분도 웨버 그릴로 이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그냥 재를 청소하지 않으면 된다. 특정 시점까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효과가 좋아진다. 물론 결국에는 삽으로 재를 퍼내야 하지만 말이다. ---305~6쪽
일단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거나,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먼저 샤워를 하고 오라고 제안하자. 당사자가 돌아오기 전에 충분히 준비를 마치고 케이크를 오븐 안에 넣을 수 있다. 30분 정도 구운 다음 오븐에서 꺼내 조리대 위에 놓고 식힌다. 여기서 한 가지 경고해두자면 이 케이크는 나이가 들어도 절대 독립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부모님 집에 눌어붙어 있는 자식과도 같다. 케이크 팬 속에서 태어나며, 아무리 말끔하게 분리될 것같이 보여도 팬에서 떼어내려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3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