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가져왔어?”
“그게 저, 저…… 내, 내일은 꼭 가져올게!”
“뭐? 너, 뒈질래?”
민서홍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면서 이태균이 인상을 험악하게 지었다.
“못 구해서 그래. 내일은 꼭…….”
“왕째리, 이 새끼 묶어!”
이태균이 덩치가 좋고 눈꼬리가 가늘게 찢어진 똘마니에게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왕째리가 개줄을 민서홍의 목에 걸었다. 그들 네 명 중 키가 제일 큰 다른 똘마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개줄을 잡은 이태균이 민서홍에게 호령했다.
“바닥에 엎드려서 네발로 기어!”
유난히 몸집이 작은 민서홍은 굳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반항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즉시 교실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저 무기력하게 이태균이 끄는 대로 개처럼 끌려갈 뿐이었다.
“야, 이 씝탱이야! 나한테 한번 찍히면 개처럼 살게 되는 거야. 알아?”
- 본문 107쪽
“뭐, 한번 불러서 물어보기는 하겠습니다만, 보나마나 이거 증거 불충분이에요.”
“증거 불충분이라뇨? 내 아들이 그 애들의 괴롭힘 때문에 죽었는데요? 여기 그놈들이 보낸 협박 문자를 보세요.”
“그런 문자야 남자애들은 흔히 장난 삼아 보내요. 솔직히 걔들이 아들을 직접 죽인 게 아니잖아요? 아들이 스스로 자살을 한 거지. 사실 요즘 청소년들 꺼떡하면 죽고 그래요. 집이 가난하네, 외모가 못생겼네, 성적이 떨어졌네, 이성 친구가 변심을 했네, 하면서요. 아주 유행이에요, 대유행! 요즘 애들은 키만 커졌지 마음은 더 약해졌어요. 그렇게 약해빠져서 원!”
담당 형사는 조사도 해보기 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 p.134
두 시간 뒤 이태균 일당은 삼천동 빈 상가 건물을 나섰다. 건물에서는 어느 여학생의 울음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아까 찍은 작품이 제일 잘된 거 같아! 완전 아카데미상 감이야.”
“야, 근데 나는 왜 맨날 4빠야? 내가 뭐 설거지 맨이냐? 다음엔 나도 2빠나 3빠로 좀 하자. 응?”
삼각김밥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태균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알았어, 새꺄! 다음엔 삼각김밥 네가 2빠로 해! 이쑤시개가 4빠 하고. 참! 걔 이름하고 주소, 전화번호 다 저장해뒀지?”
“응! 태균이 네가 시킨 대로 다 해놨어. 만약에 경찰에 어쩌구저쩌구했다가는 가족들까지 가만 안 두고, 오늘 촬영한 이 동영상도 인터넷에 그대로 올릴 거라고 잔뜩 겁을 줘놨으니까 뒤탈은 없을 거야.”--- p. 174
‘이틀째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그놈들이 있는 학교가 너무 무서웠다. 퇴계공원 충혼탑에 기대앉아 하루 종일 보림이 생각을 했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자꾸 떨린다. 보림이의 비명 소리와 그놈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점점 크게 들린다.’
‘아무도 없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경찰도, 대통령도,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냥 자꾸 떨리기만 한다. 무섭다.’
‘보림아, 어디로 간 거야? 연락을 줘. 제발!’
‘너, 설마 잘못된 건 아니지? 전화나 문자 꼭 줘! 손꼽아 기다릴게! 꼭! 꼭!’
구겨진 연습장 곳곳에는 윤빈이의 눈물자국이 별꽃처럼 피어 있었다. 그 별꽃 위로 성혁이의 눈물방울이 또 떨어져 내렸다.
---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