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떤 개인의 세상 모험담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가치가 있고 출판되었을 때 인정받을 만하다면, 이 이야기의 편집자인 필자는 이 작품이야말로 그에 합당한 모험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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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고도 진중한 분이었던 아버지는 내 계획이 무엇인지 예견하셨다. 그리고 진지하고도 훌륭한 훈계의 말씀으로 나를 말리셨다. 어느 날 아침, 통풍(痛風) 때문에 서재에 갇혀 살다시피 하던 아버지가 나를 불러 이 문제에 대해 따뜻한 말로 타이르셨다. 굳이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떠나려는 것이 단순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려는 마음 때문이 아니냐고 따져 물으셨다. 또한 아버지는 자신의 뜻에 따라 내가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당신이 좋은 곳에 나를 소개해 줄 것이고, 내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재산을 모아 편안하고 즐겁게 인생을 살 수 있는 전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배를 타고 모험에 나서는 자들은 아주 지독한 팔자를 타고난 사람들이거나 대망(大望)을 품은 월등한 사람들로, 진취적인 사업을 일으키고 남들이 가지 않는 비범한 길을 선택하여 유명해지려는 사람들이라고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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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정말 끔찍한 폭풍이 불어 왔다. 이제 뱃사람들의 얼굴에서도 겁에 질리고 놀란 기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선장은 불철주야 배를 지키려 애를 썼지만, 내 옆을 지나 선실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여러 번 혼잣말로 이렇게 기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 모두 끝장날 지경입니다. 다 망할지도 모릅니다.” 맨 처음 난리법석이 났을 때, 나는 삼등칸 내 선실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때 심정은 설명하기 힘들다. 처음 참회할 때의 심정으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아주 확실하게 짓밟고 스스로 마음을 굳게 닫아 버린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죽음의 고통은 이미 지나갔으니 이번 폭풍은 처음처럼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말한 것처럼 선장이 내 옆을 지나가며 우리 모두 끝장날 판이라고 말하자, 끔찍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선실에서 나와 밖을 내다봤는데, 그토록 암울한 광경은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파도가 산더미처럼 솟아올라 3~4분 간격으로 우리 배를 덮쳤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온통 곤경에 처한 모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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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열흘 내지 열이틀을 지냈을 때, 책과 펜, 잉크가 떨어지면 시간 계산을 놓칠 수도 있고 심지어 안식일과 일하는 날도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나는 칼을 이용해 커다란 기둥에 대문자로 도착한 날짜를 표시하고는 그 기둥을 대형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 내가 처음 상륙한 해변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나는 1659년 9월 30일에 이곳 해안에 왔다.’라고 새겨 놓았다. 이 사각형 기둥 옆면에는 매일 칼로 눈금을 표시를 했는데, 7일째 되는 날은 나머지 날보다 두 배 더 길게 표시하고, 매달 첫째 날에는 그 긴 눈금보다 두 배 더 길게 표시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달력을 만들어서 매주, 매달, 매해 시간을 계산했다.
다음으로 할 얘기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여러 번에 걸쳐 배에서 가져온 많은 물건들 중에는 가치는 덜하지만 전혀 쓸모없지는 않은 물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들인데, 대표적으로 펜, 잉크, 종이, 선장·항해사·포수·목수가 갖고 있던 짐 꾸러미, 나침반 서너 개, 계산 도구 몇 가지, 해시계, 망원경, 해도(海圖), 항해 서적 등이다. 나는 이것들이 내게 필요할지 아닐지를 몰라서 일단 한꺼번에 그러모아 가져왔다. 그리고 훌륭한 성경 세 권도 발견했는데, 내가 영국에서 가져온 짐에 들어 있던 것들로 다른 내 소지품과 함께 챙겨 온 것들이다. 그리고 포르투갈 책도 몇 권 있었는데, 그중 두세 권은 로마 가톨릭 기도서였다. 나는 함께 발견한 다른 책들을 포함하여 모든 책들을 조심스럽게 챙겨 두었다. 참, 그리고 배에는 개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되는데, 그 녀석들의 별난 역사는 때가 되면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듯싶다. 어쨌든 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모두 데려왔고, 개의 경우에는 내가 처음 짐을 해변으로 싣고 간 그날 혼자서 배에서 뛰어내려 해변까지 헤엄쳐 나를 찾아왔다. 이후 이 개는 여러 해 동안 나의 충직한 하인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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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는 재미있는 모험담이자 생존기의 원형으로서, 오늘날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 모험담과 생존기의 모티프로 이용되거나 재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본 우리는 지금 우리가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는 윤리적인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