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이야기를 읽는 청소년 독자 여러분에게 꼭 미리 일러두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지로가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금방 지로를 경멸하거나, 좋은 일을 했다고 해서 또 바로 감탄하지 말고, 한번쯤 여러분 스스로가 지로가 되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즉, 만일 내가 지로와 똑같은 환경이나 입장에 처한다면, 나라면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라는 것입니다. --- p.5
“좋아, 끝까지 자는 척하겠다 이거지. 그럼 여기서 어디 한번 자 봐.”
오타미는 지로를 남겨 둔 채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로는 이쯤에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적은 따로 있었다. 모기떼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분명 엄마가 모기장 속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지로는 몸이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지만 함부로 긁지도 못하고 꿈틀거렸다. 옷도 걸치지 않은 맨살 덩어리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놓여 있었으니 모기들로서는 잔칫날이 따로 없을 터였다. 엉덩이 몇 대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려워 미칠 것 같았다.
지로는 눈을 감은 채 몸부림을 치는 척 조금씩 조금씩 모기장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발부터 살그머니 모기장 안으로 집어넣었다.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야 모기장 안으로 몸을 반쯤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천신만고 끝에 모기장 안으로 몸을 거의 다 집어넣은 지로는 손으로 모기장 끝을 들어 올리고 머리를 집어넣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자칫 엄마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다시 모기장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물론, 몇 대 더 얻어맞을지도 몰랐다.
지로는 일단 엄마의 동태부터 살피기로 했다. 실눈을 뜨고 고개를 아주 조금만 들어서……, 하다가 지로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엄마가 바로 곁에서 팔을 낀 채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눈까지 마주쳐 버렸다. 지로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와중에도 모기떼는 아직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로의 얼굴과 목에 달려들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엄마보다 모기가 더 무서웠다. 마침내 지로는 모기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로…….”
평소와는 다르게 한없이 낮게 깔린 엄마의 음성에는 짙은 슬픔 같은 게 배어 있었다. 지로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대체 누구한테 그런 걸 배웠니? 엄만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오타미는 이 조그만 아이와의 실랑이가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화가 나는가 하면 서글퍼지기도 했고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초장에 버릇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오타미는 기어이 지로의 양쪽 귓불을 잡고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오타미는 그 상태로 지로를 모기장 밖으로 다시 끌고 나갔다.
“날이 샐 때까지 여기 그러고 있어.”
오타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모기장 안으로 되돌아갔다.
마침내 지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지로는 끝내 울음소리는 내지 않았다. 지로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눈물을 닦아 냈다. 목구멍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났다. 모기떼는 사정을 보지 않고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지로는 소리 없이 흐느끼며 모기떼를 피하기 위해 개미에게 에워싸인 한 마리 나방처럼 미친듯이 다다미 위를 굴러다녔다. --- pp.118~120
지로는 어쩐지 자기가 토종닭과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아 씁쓸해졌다. 그때 갑자기 석가산 쪽에서 꼬꼬댁 소리와 날개 퍼덕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늘 도망만 치던 토종닭이, 이게 웬일, 목깃을 잔뜩 부풀리고 레그혼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게 아닌가. 지로의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얼굴도 붉게 상기되었다.
서로 삼십 센티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노려보던 닭이 한데 엉겼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레그혼의 연꽃 같은 깃털과 황색 해바라기 같은 토종닭의 깃털이 어지럽게 날렸다. 닭들의 머리에 달려 있는 볏도 크게 떨리고 있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날개가 요란하게 퍼덕거리고, 두 개의 부리가 맞부딪치며 발톱을 세운 발들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그때마다 토종닭은 금방이라도 나가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한눈에 봐도 토종닭이 약해 보였다.
지로는 자기도 모르게 침이 바싹바싹 말랐다. 아무래도 토종닭이 질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토종닭은 여간해선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조금 사이를 두었다가 흰색과 갈색의 날개가 다시 한 번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이번에는 서로 비슷했다. 그 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몸싸움이 대여섯 번이나 이어졌다.
지로는 목을 앞으로 빼고 숨을 죽였다. 주먹을 쥔 손에 땀이 배었다.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점차 레그혼의 기세가 눈에 띄게 수그러드는 게 보였다. 그럴수록 토종닭의 기세는 점점 매서워졌다. 토종닭도 몹시 지쳐 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신기한 노릇이었다.
드디어 토종닭의 기세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레그혼은 뒤뚱거리며 석가산 뒤편으로 도망쳐 버렸다. 토종닭은 끈질기게 레그혼을 뒤쫓았다. 레그혼이 울타리 밑에 난 구멍을 빠져나가 밭으로 도망치자 토종닭은 그때서야 추격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의기양양하게 석가산 꼭대기로 올라가더니 날개를 활짝 펴 몇 번 퍼덕인 다음 목을 있는 대로 뽑으며 우렁차게 홰를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로가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지로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는데 그 표정 위로 그림자처럼 희미한 미소가 지나갔다. 너무 희미하고 또 아주 잠깐뿐이어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그런 미소였다. 지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지로의 동작에 화답이라도 하듯 석가산 꼭대기의 토종닭도 또 한 번 큰 소리로 울었다. --- pp. 243~245
“아빠! 나, 비겁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