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옹호란, 사상사적으로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강조하고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나아가 부추기기도 하는 극우파적인 이데올로기다. 인종 편견, 신앙 편견, 약소국 억누르기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무력 침략을 감행해도 좋다는 파시즘적 가치관을 고수한다. 친일파가 ‘친미파, 독재권력 옹호, 민주화운동 반대, 평화통일 반대, 개혁과 개방 반대, 노동자·농민 등의 관점이 아닌 재벌과 상류층 이익 옹호, 사회복지보다 성장 일변도의 신화 옹호, 해외 파병 지지, 국가보안법 지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지지, 일본의 대북 강경책 지지, 박근혜식 국정교과서 지지, 이명박·박근혜 등 지지, 태극기 부대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터이다. 따라서 촛불혁명과 친일문학은 너무나 궁합이 안 맞고, 남북 민족화해와 평화의 시대와도 걸맞지 않다. ---「[추천사](문학평론가 임헌영)」중에서
친일 인사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참회한 예도 드물지만, 후손이 선대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김동환의 삼남 김영식은 부친이 친일문인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다’며, 역사적 평가에서 공과가 교차된 선친의 행적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분명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총경으로 은퇴한 김영식은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사죄하기도 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04 김동환, 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중에서
문인들의 친일 행위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시기를 지나면서 이들의 반민족적 일탈이 매우 위태위태하게 치달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본인이 얼마나 체감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자기 부정과 굴욕의 수사들 너머에 최소한의 민족적 정체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다.
노천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친일에 대한 변명이나 해명도 따로 보이지 않으니, 일말의 갈등이나 번뇌조차도 상정해 볼 수 없다. 정말 그는 친일부역, 그 반민족적 선택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던 것일까. 노천명의 친일은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는 시기까지 일관되게 이루어졌다. ---「07 노천명, 여성 화자를 앞세운 친일시들」중에서
“애국문학자가 제작한 위대한 문학 작품은 그 한 자 한 구절이 포탄이며 전선 장병이 목말라하며 후방의 국민에게 요청하는 비행기이기 때문에 우수한 문학자를 결전하(決戰下) 생산 각 부분에 계속 투입하고, 그들에게도 생산 수량 전임제랄까, 일정한 기간 내에 국가가 요청하는 우수한 문학 작품을 생산시키자.”(「결전문학의 수립을 위해(決戰文學樹立の爲めに)」, 『문학보국』 1944년 8월호) ---「12 이무영, 총독상을 수상한 농촌소설가」중에서
그는 또 농촌 생산 현장의 ‘총후보국’을 독려하면서 지식인의 분발도 촉구하였다. 「지식인」(『동양지광』 1942년 7월호)에서 과거에는 ‘숨쉬는 편리한 농기구’ 정도에 지나지 않던 농민이 ‘열렬한 국가의식’ 아래 새로 태어났다고 칭송하였다. 그는 ‘놋쇠제품 헌납운동’에 참여하고, 쌀 절약을 위해 모내기 때에도 도시락을 싸 오고, 생산 확충을 위해 밤잠도 안 자며 가마니를 짜는 등의 모습을 보여 주는 농민과 견주어 이제 간신히 시국에 눈을 뜬 지식인으로서 부끄럽다고 자책하기도 하였다. ---「14 정비석, 낙원 일본을 칭송하던 『자유부인』의 작가」중에서
1943년 4월에 최재서는 『전환기의 조선 문학(轉換期の朝鮮文學)』을 발간하였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먼저 가 버린 아들 강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면서 “네가 죽었을 때 나는 막 태어난 『국민문학』을 너의 추억과 함께 키워 가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이 “일본 국가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르기까지의 혼의 기록”이라고 하였으니, 이 책은 황국신민 최재서의 ‘국가 정체성 발견 기록’이라 할 만하다. ---「23 최재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문학’ 완성」중에서
여기에 실린 단편 소설 「선령(善靈)」(『국민문학』 1944년 5월호)은 「고요한 폭풍」(1941) 이후 주인공 박태민의 정신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 어느 날, 한 시인이 그의 연재소설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아부하는 꼴이란 볼 만하더군!” 하고 냉소하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 그를 때려눕힌다. 착잡한 심리 상태가 민족적 양심을 지적한 시인에 대한 폭행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는 권고받은 문학대회에 출석하는 대신 만주로 떠난다.
임종국은 이 작품의 주인공 박이 ‘이미 이성을 상실해 버린 친일파들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한다. 짙어지는 ‘패전의 음영’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자신들의 선택에 대하여 ‘자기혐오’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혼을 팔던 이들 부역 문인들의 본능적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25 이석훈,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을 꿈꾼 작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