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규정하기 까다로운 수수께끼인 까닭은 그것이 사유를 시작도 끝도, 출구도 입구도 없는 사이의 장소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카버의 단편이 시사하듯,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사랑이 사유에게 있어서 종잡을 수 없는 사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이 공간(interstitial space)을 차지하므로 사유를 멍하게(space out) 만든다. 사랑은 미로 같은 간격 속에서 사유를 시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사이성이 또한 사유를 끝없이 유발하고 활성화시킨다. 베케트의 금언을 사용하자면, 사랑은 사유를 “더 잘 실패하도록” 이끌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게 한다. 사랑은 사유를 정지시키면서 작동시킨다. --- p.25-26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당신은 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나를 사랑해야 해’를 함축한다. 여기서 이리가레는 새로운 사랑의 공식을 제공한다. “난 당신에게로 사랑합니다.” 이 말은 타자를 사랑하는 이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것을 막고 또 다른 주체로서의 타자의 자유를 보증한다. …… 나아가 이리가레는 남근 중심적인 서양철학에 의해 육성된 지혜에 대한 사랑이 사랑에 대한 지혜로 변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랑에 대한 지혜에 따르면, 사랑은 두 주체 사이에, 너와 나 사이의 간격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서로 ‘당신에게로’를 외치는 주체 사이에 있다. --- p.54
사랑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수학적이면서 초수학적이다. “나는 수학적으로 부정확한 것을 말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수학적으로 공언된 것을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듯 라캉 정신분석과 바디우 철학 모두에 수학과 사랑 간의 모종의 관계가 존재한다. 이 관계는 사랑의 단독성이 수학적 형식화와 그 한계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 사랑은 수학적 형식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이러한 형식을 문제화한다. 수학과 사랑의 관계는 형식화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만나는 곳에 있다. 수학은 사랑을 계산하거나 합리화함으로써 무미건조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사랑을 숭배하고 미화함으로써 초월적이고 신비롭게 만들지도 않는다. 수학은 사랑에 대한 형식적 접근을 이끌고, 이 접근은 그 자체의 환원 불가능한 한계를 동반한다. --- p.62
사랑의 주체는 드물다. 사랑이 법을 넘어서고, 법의 미진한 지점에 직면하고, 사랑 안의 법 없음을 다루도록 강제하는 한에서 말이다. 사랑의 과정은 사랑의 주체에게 보수적인 법의 작용과 맞서 싸우고, 법이 실패하는 영역에 관여하고, 위험과 고난으로 가득 찬 사랑의 무한의 창안에 용기 있게 투신하라는 규율을 부과한다. 모든 이가 사랑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 모든 이가 그 시험에 도전하겠다는 용기를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험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려는 사랑의 주체만이 자신의 삶을 통해 인류가 곧 사랑이라는 가설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 p.243
사랑에 대한 정신분석적 개념은 사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사랑은 환영에 불과하다고 보는 모랄리스트나 소피스트의 사랑 개념과는 다르다. 증상이 사랑을 구성하는 것이 사실인 한편, 오직 사랑만이 드러나지 않은 주체적 실재를 드러나게 한다. …… 사랑은 많은 경우 실패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토니 타키타니」의 주인공] 토니는 과거에도 여자와 연애를 했다. 그러나 연애는 사랑과 다르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토니는 자신의 고독을 깨달을 필요가 없었는데, 이는 과거의 연애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주체적 실재에 직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연애는 흔하다. 그러나 증상적 실재와 마주하
거나 증상적 실재로 인해 실패하는 사랑은 드물다. 증상의 수준에 위치한 사랑은 드문 만큼이나 어렵다. 그것이 어려운 까닭은 증상이 사랑에 아포리아(aporia)를 제기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드문 까닭은 증상이 주체적 실재의 예외적 현현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 p.284-285
동반 자살하기 이전에 고르는 자신이 도린과 재차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고르와 도린 같은 헌신적인 사랑의 주체에게 사랑은 시작과 끝의 문제가 아니라 재탄생과 확장의 문제이다. …… 고르에게 동반 자살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는 치명적인 정념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이항대립 너머에 있는 삶, 오직 도린과의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한 삶을 긍정하려는 주체적 결단이다. --- p.355-356
고르와 도린과 같은 사랑의 주체는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으며 죽음과 삶 사이에 있다. 사랑의 주체는 사랑의 이념을 구현하는 섬뜩한 유령으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계속 회자된다. 사랑의 주체에게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삶이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삶과 죽음 너머에서 표출되는 사랑의 이념의 생존(sur-vie)이다. 주체는 사라지지만, 이념은 남는다. 역사와 문학은 사랑의 주체의 몇몇 이름을 남겨 준다. 고르와 도린의 이름도 그중 하나로 기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입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사랑의 이념이다. 이 이념을 사랑에 대한 바캉적 [라캉적인 동시에 바디우적인](Bacanian) 이념이라 부르자.
--- p.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