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둘러싼 산업’(The Leonardo Industry)이라 불리는 분야는 다른 예술가들을 탐구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다층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니아들은 여기에 쉽게 빠져든다. 나는 이 분야에 약 50년간 몸담고 있으면서 그 모든 것을 보았다. 나는 위대한 학자들은 물론 평범한 연구자들과 수집가들, 큐레이터들을 상대했다. 때로는 과장된 예술 세계의 자아들, 수상쩍은 딜러들, 번지르르한 경매인들과 투쟁했다. 주류 학자들과 저자들, 유사 역사학자들과 공상가들과도 조우했다. 나는 점점 불어나는 ‘레오나르도 괴짜들’ 군단과 싸웠다.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해주다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심한 모욕을 받기도 했다. 나는 학계와 미술관에서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살얼음판을 걸었다. 때로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레오나르도스럽지 않다는 비판의 포화를 받았다. --- p.7
[최후의 만찬]과 같이 심하게 손상된 작품의 실제 복원 작업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작품에 대한 덧칠이 현재 남은 [최후의 만찬]의 파편들의 접착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설사 이 점이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니었다 해도, 1960년대 중반에 내가 본 그림은 그다지 보기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 p.90
모나리자를 마치 감옥에 가두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 밖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일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두 번이나 이런 식으로 모나리자를 만난 적이 있다. 한 번은 1994년에 혼자서 보았고, 그리고 2010년에는 레오나르도의 열성적인 팬들 및 연구자들이 모이는 국제적인 자리가 있어 이들과 같이 보았다. --- p.100
나중에 나는 [모나리자] 속에 나타난 풍경과 코덱스 레스터에 드러난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의견 간의 지속적인 유사점을 찾아냈다. 사실 이 단계에서 나는 그가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알프스산맥의 산과 언덕들의 배치를 보여주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 쓴 《회화에 관한 논문》에 나오는 한 단락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는 산이 어떻게 흐르는 강물에 의해 침식되는지, 특히 무너지거나 최소한 갈라지게 되는지를 설명했다. 산사태가 계곡을 가로막는 것에 대해서는 ‘마치 산들이 복수라도 하듯 강의 진로를 가로막고 호수로 바꾸어 버리며, 결국 시간이 지나 무너진 산으로 생긴 댐이 전에 있던 강의 흐름에 따라 새로이 침식될 때까지 느리게 흐르는 물은 마치 이들을 달래는 듯 움직인다.’고 언급했다. --- p.110
우리의 발견에 대해 빈치의 권위자들과 스카이프로 통화하며 의논한 결과, 우리는 발표회가 포함된 기자회견을 2017년 6월 13일 빈치의 레오나르디아나 도서관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생가]에 대한 뉴스는 완곡한 어조로 에둘러 말하고, [타임스]지가 ‘빈치의 어머니(Ma Vinci)’라고 제목을 붙인 장에 집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카테리나 리피가 레오나르도의 생모라는 우리의 제안은 아주 도발적인 것이었다. 이데알레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관(빈치의 성 아래쪽 납골당에 있는 개인 미술관)의 설립자이자 관장인 알레산드로 베쪼시(Alessandro Vezzosi)는 카테리나가 노예였다는 이론의 열정적인 신봉자였다. 우리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그는 강연대를 노려보며 격렬하게, 그리고 눈물겹게 우리의 의견에 반대를 표시했다. 청중들도 웅성대며 이 논쟁에 참여했는데,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대부분 ‘우리 편’이었다. 경쟁 구도의 기록 해석들은 일종의 신체 접촉 운동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 같은 관계가 되었다. --- p.123
레오나르도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결코 평범한 법이 없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실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처럼 놀라운 변화를 거친 피렌체 르네상스 회화는 없었다(레오나르도의 미완성 작품인 [동방박사의 경배]의 경우 유동적이고 명료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상대적으로 즉흥적인 방법만으로도 더 낫게 만들 수 있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을 더 자세하게 분석할수록 실제 회화에서의 브레인스토밍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 p.173
그러나 2017년 10월 10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열리는 경매에 리볼로프레프가 [구세주]를 등록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경매에 참여한 이들에게 해당 그림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연락을 받았으며 런던의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내용에 동의한다고 다시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실제 구매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작품의 가격은 1억 달러 미만에서 4억 5,000만 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예술 작품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고, 이 일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나는 코멘트를 요청하는 미디어에 둘러싸였다. 3주 후 이 작품을 사우디아라비아의 두 왕자 중 한 명이 구입했다는 소식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리스티는 아부다비의 문화관광부가 만들고 있다는 새롭고 엄청난 규모의 ‘세계적 박물관’,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다고 발표했다. 이 박물관은 레오나르도의 작품 [라 벨 페로니에르(La Belle Ferronniere)]도 소장할 예정이다. 결국에는 공공 미술관에 보금자리를 찾았기를 바랄 뿐이다. --- p.291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을 토대로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재구성’하려고 온 힘을 쏟았다. 그가 자연의 모습을 ‘사진처럼’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사진은 자연의 인상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연이 내재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이를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인상과 느낌을 창조하려고 했다. --- p.332
레오나르도는 광대한 세월에 걸쳐 대지가 지금처럼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의 천재성은 뛰어나기 이를 데 없는 논거 속에서 드러난다. 그가 제시한 증거들은 화석의 층을 관찰한 결과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도출되는데, 이 화석 지층은 껍데기가 있는 생물들이 서로 다른 층의 자생지에서 번성했다가 길고 연속적인 세월에 걸쳐 지층 안에 묻혀 생성된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 성서 속에 등장하는 짧은 홍수는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레오나르도는 이러한 변화가 단지 수위의 국부적 변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지표면의 거대한 융기와 침몰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중력 중심부에 비교적 가까이 있는 불규칙한 모양의 대륙, 그리고 구체인 지구를 부분적으로 감싸고 있는 물이 지속적이고 전 지구적 규모로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심지어 그는 나중에는 지브롤터 해협이 지중해만큼 넓어지고 나일강처럼 연장될 것이라는 추측까지 했다. 전에 다양한 글들을 읽었지만, 내 생각을 구체화 시켜준 것은 오직 레오나르도의 원대하고 웅장한 비전의 전체적 맥락에 따라 자세히 예를 들어 설명해 둔 코덱스의 글들뿐이었다. --- p.334
진짜 레오나르도는 연금술, 점성술, 수상술과 같은 신비로운 학문과는 별로 연관이 없었다. 그는 위대한 세상을 만든 절대적인 창조를 믿었고, 이 세상은 논리와 수학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과학과 예술은 신을 섬기는 이 세상의 방법이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브라운이 말하는 ‘신을 향한 끝없는 죄악의 상태’에 놓이지 않았다. 레오나르도가 그의 종교계 후원자들과 교류하며 남아 있는 문서 자료를 보면 충돌이나 갈등의 흔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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