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향은 충청북도 충주다. 여기서 우리란, 나와 필자(중정 한병현 박사)를 의미한다. 필자와 나는 같은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특히 고등학생 시절 같은 하숙집 그것도 같은 방에서 고락을 같이 했다. 즉 한 이불을 덮고 잔 사이란 말이다. 그것도 2년씩이나. 더욱이 같은 대학교에 갔다. 또한 같은 이과를 전공하고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였다. 이만하면 부부보다 더하지 아니한가? 그랬는데,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쭉 같이 가는구나 했는데, 나이 50이 넘어서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외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강지처인 나를 두고.
사실 그가 미국으로 유학 가서 사회약학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귀국 후에 한 박사는 담대하게 문과를 넘보기 시작했다. 소위 문학자, 철학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더니 언젠가 『주역』을 연구한다고 했고 더욱 깊이 파 들어가더니 마침내 그 속에 완전히 빠지고야 말았다. 아니, 그는 어쩌면 문학과 철학, 그리고 주역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한 박사는 수 년 전, 『사회약료』라는 세계적인 대 저서를 만들어냈다. 그것을 접한 나로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새로운 개념,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를 여는 선구자로서 그 분야에서 우뚝 서 있게 된 것이다. 이상하다.
내가 아는 그는 분명히 약학을 전공한 이학박사(Ph.D)였는데 그 체(Identity)가 이상하고 낯설다. 언제부터 그가 문학, 형이상학의 대가가 된 것일까?
도저히 나로서는 가늠도 못하는 세계와 개념, 그리고 현상을 그가 명쾌하게 설명하고 갈파하고 있기에 마냥 궁금했다. 그런데 누군가 말했다. 문과와 이과의 최고 경지에까지 공부를 하다보면 같은 곳에서 만난다고… 아,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애초에 이 두 영역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다가 그 만나는 다리에서 저리로 넘어간 것이리라. 그렇게 그는 자신만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 것이리라. 그래서 나도 한 번 그 세계를 이해해 보려고(나도 한 때 공부를 좀 했으니까) 무진장 노력을 해보았다. 그러나 허사였다. 나에게는 역시 어려웠다. 그래서 포기하려던 찰나, 그가 주역의 세계를 비교적 쉽게(?) 써놓은 이 저서 『중정 주역』을 접하게 되었다. 의외로 풋내기인 나도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이 주역의 세계가 너무 어려워서 평소에는 언감생심, 접근하지 못하다가 쉽게 풀이해 놓은, 마치 소싯적의 ‘표준전과’와 같은 우리 중정의 저서를 만났기에, 조금이나마 그 주역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우리 태극기의 유래가 주역이며 부도전괘(不倒顚卦)로 구성되어 있다든지, 도서관(圖書館)이란 말도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비롯되었고, 포정해우(?丁解牛)의 고사에서 관기회통(觀基會通)이 나왔으며, 첨성대의 모습이 방형(方形, 사각형)과 둥근 원형으로 된 것도 주역의 이편지책(二篇之策)을 본받아 구현된 것이라는 등의 설명에서 그저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중정 주역』은 육포다. 즉 곱씹어야 제 맛이 난다. 그러나 그 깊은 의미를 여전히 나로서는 백퍼센트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는 맛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최소한 대화는 할 수 있지 않은가 하고 감히 생각해 본다. 그러나 여전히 이처럼 위대한 학문을 연구하여 이렇게 책으로까지 엮어내는 나의 친구가 경외로울 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나이를 먹고 인생을 뒤돌아보면, 누구나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보다는 친구를, 개인 보다는 사회를 걱정하게 되는 것 같다. 즉 인간에게 이타심과 배려심이 쌓이면서 처세 등의 지혜가 생기고 나아가서는 우주론적인 철학에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고의 덕목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니까. 그러한 애정이 깔린 이타심과 배려를, 이러한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하는 우주론적 철학이 주역일진대, 이 얼마나 위대한 학문인가. 그래서 오늘 난, 나의 친구가 엮어낸 이 저서를 한번 읽어 보시라고, 그 새로운 세계를 한 번 느껴 보시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해 드리는 바이다. 특히 어지러운 작금의 세상에서 한줌 마음의 평화와 만족을 얻어 가시라고, 감히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 허민강 (서울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