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로켓으로 우주에 가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어떤 상식도 과거에는 상식이 아니었다. (…) 19세기에 로켓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로켓이 오늘날의 로켓형 폭죽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행거리도 짧았고 과녁에 명중시키기도 어려웠다. (…) 당시에 로켓은 한물간 600년 전 기술이었고 대포는 최첨단 기술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때에는 로켓 같은 구닥다리 기술로 우주에 간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럼 우주 비행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켓이 답이다.” 로켓의 아버지들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우주공학사상 최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려 600년 전 기술이 우주로 가는 열쇠였다니, 정말 놀랄 일이다. --- 「제1장 - 지구에 ‘무언가’가 싹트다」 중에서
마거릿 해밀턴이라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젊은 여성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해밀턴은 ‘소프트웨어’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에 어떤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는 아폴로 11호를 착륙 직전에 발생했던 위기에서 구했다. (…) 해밀턴은 생각했다. ‘만약 실제 비행 중에 우주 비행사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어떻게 될까? 우주 비행사도 사람이다. 사람은 실수하는 법 아닌가?’ (…)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해밀턴 팀은 아폴로의 소프트웨어에 중요한 기능을 탑재했다. 만약 컴퓨터가 멈출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일단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우주 비행사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프로그램만을 다시 실행하는 기능이었다.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한 경고 번호를 정했다. 바로 ‘1202’였다. --- 「제2장 - 작은 한 걸음」 중에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대학원생 게리 플랜드로Gary Flandro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1983년에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전갈자리에서 사수자리에 걸친 대략 50도 범위에 늘어선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1976년부터 1978년 사이에 탐사선을 쏘아 올리면, 이 네 행성을 모두 순서대로 거쳐 갈 수 있었다. (…) 1983년 이전에는 1800년경에 같은 기회가 있었다. 물론 그때는 탐사선을 쏘아 올릴 기술이 없었다. 다음 기회는 22세기였다.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마침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고 행성 탐사선을 만드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을 무렵에 175년에 한 번 있는 기회가 찾아오다니 말이다. (…) 행성은 고독하게 우주를 수십억 년이나 떠돌면서 계속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고대인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느꼈던 ‘운명’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 「제3장 - 우리가 아는 우주」 중에서
기술자들은 보이저 2호의 궤도에 관한 ‘비밀’을 밝혔다. 행성과 위성의 위치 관계상, 타이탄을 방문하면 천왕성과 해왕성으로는 갈 수 없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1호의 궤도는 타이탄으로 가는 쪽이었다. 그런데 2호의 궤도는 둘 중 한 궤도를 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토성에 접근하는 각도와 거리를 조정함으로써, 스윙바이 후 목적지를 변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술자들이 숨겼던 비밀이었다. (…) 보이저의 임무를 계획한 JPL의 기술자 로저 버크도 이 음모를 꾸민 사람 중 하나였다.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관료주의에 맞선 기술자의 작은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전 인류의 영구적인 이익을 위한 일이었지요.” 1981년 8월, 토성은 그 거대한 중력으로 보이저 2호의 궤도를 바꿔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게 했다. 아직 그 누구도 다가간 적이 없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향한 여정이었다. --- 「제3장 - 우리가 아는 우주」 중에서
마스 2020 계획에서 엔지니어가 맡는 업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착륙 후보 지점을 선정하는 일이다. 기술자들은 과학자들이 선정한 각 후보 지점에서 탐사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을지 해석한다. 또 다른 일은 탐사차의 자동운전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 화성 탐사차 개발이라고 하면 아주 근사한 일 같지만, 내가 평소에 하는 일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매일 수만 줄이나 되는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 일하다 지쳐 피곤할 때면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상상에 빠진다. 몇 년 후에 이 탐사차가 화성에 도착해서, 내가 만들고 있는 소프트웨어에 따라 붉은 땅 위를 달릴 것이다. 그리고 탐사차가 채집한 화성 암석이, 수십 년 후에는 지구로 돌아올 것이다. 이 탐사차를 통해 사상 최초로 외계 생명체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즉,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대발견에 조금이나마 공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상상이 항상 나를 북돋아 준다. 나는 눈을 뜨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 「제4장 - 우리는 고독한가?」 중에서
유로파 클리퍼에는 얼음 투과 레이더를 탑재해 유로파의 바다를 감싼 얼음 껍질의 구조를 파악하고, 얼음 속에 숨어 있는 액체로 이루어진 물 주머니를 찾을 계획이다. 유로파 클리퍼 다음에는 유로파 착륙선 계획이 진행될 예정이다. 아직 구상 단계지만, 이 계획이 승인되면 2024년쯤에는 착륙선이 발사된다. 유로파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다. (…) 전지용량과 방사선 때문에 착륙선은 유로파에 착륙한 뒤, 약 20일밖에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5년이나 걸려 유로파까지 간 다음 20일밖에 살지 못하다니, 매미의 삶이 떠오른다. (…) 유로파 착륙선은 수명이 무척 짧기에 채취할 수 있는 표본은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다. 임무에 드는 비용을 고려하면, 대단히 비싼 삽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사상 최대의 발견을 할 가능성이 있는 삽질이다. --- 「제4장 - 우리는 고독한가?」 중에서
2017년 12월을 기준으로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발견한 행성 수는 2526개에 이른다. 이 중 30개는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해비터블 존Habitable Zone) 안에 있고 크기가 지구의 두 배 이하인 행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외계 행성을 수백 개밖에 몰랐는데, 저예산 우주망원경 단 한 대 덕분에 행성을 무려 수천 개나 발견한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오직 백조자리 일부만을 관측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구와 같은 궤도를 도는 행성이 운 좋게 통과를 일으킬 확률은 약 200분의 1이다. 이런 조건인데도 무려 수천 개 행성을 발견했다. 관측 결과에 따라 추정해 본 결과, 은하에는 행성이 수천억 개나 존재할 것이라고 한다! ‘천억’이 대체 얼마나 큰 숫자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제5장 - 호모 아스트로룸」 중에서
칼 세이건의 공상과학소설 『콘택트』에는 어떤 기계를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거대한 구조물이 말없이 인류를 다음 단계로 인도했다. 이런 외계인의 메시지는 무슨 내용이었을까? (…) 어쩌면 ‘은하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이 쓰여 있지는 않을까? (…) 만약 은하 문명과 연결되면,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보다 훨씬 더 폭발적이고 비연속적인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이는 마치 베이징원인을 현대로 데려와서 인터넷을 쓰게 해 주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외계 문명과 처음으로 접촉한 날은 스푸트니크, 가가린, 아폴로 11호, 그리고 외계 생명체를 발견한 날 등과 함께 인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이는 이른바 인류의 성인식이다. 그리하여 호모 사피엔스는 우주의 사람인 ‘호모 아스트로룸Homo Astrorum’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 「제5장 - 호모 아스트로룸」 중에서
때때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이동한다는 발상 자체가 인류의 고정관념 아닐까? 나사 JPL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공동 개발한 ‘온사이트OnSight’라는 시스템이 있다. JPL이 가진 화성의 삼차원 데이터를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Microsoft HoloLens라고 하는 가상현실 안경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화성 탐사차 조종사는 가상현실 속에서 화성을 걸으면서 탐사차에 지시를 내릴 수 있다. (…) 그러면 인류는 지구에 육체를 둔 채, 수백 광년에서 수천 광년 떨어진 세계를 탐사할 수 있다. 그저 삼차원 영상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세계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꽃향기를 맡으며, 발바닥을 통해 흙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제5장 - 호모 아스트로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