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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학 설계자들

한국 언론학 설계자들

방송문화진흥총서-19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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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534g | 152*225*15mm
ISBN13 9791189706739
ISBN10 1189706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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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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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복산은 1947년 2월 18일 자로 미 군정청 학무국으로부터 조선신문학원으로 인가를 받아 비로소 한국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언론학 교육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 또한 나의 논문이 생각보다 늦어지자 “논문이 별거냐”면서 격려해 주었다. 이 말은 논문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해 빨리 쓰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후 스승이란 제자에게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전수하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제자가 학문과 관련해 할 일을 일깨워주고 이를 이행하도록 용기를 심어주는 조언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곽복산 교수는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무기정간을 당했다가 복간되자 5명의 자녀를 집안의 돌림자가 아닌 동아일보의 동자를 돌림으로 해서 지은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 「한국 언론인들의 스승, 우당 곽복산」 중에서

야농 선생은 “이 당시 한국의 신문은 오로지 침략주의의 배격에 있었고, 신문기자는 모두 애국자였다. 참으로 한국 신문의 구호는 애국과 독립 그것이었다”라면서도 이렇듯 치열한 한국 신문계의 투쟁도 ‘한일합병’이란 일제의 압도적인 군사 행동에는 당할 도리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온갖 제약을 박차가면서, 한국의 현대화를 꾀한 신문의 업적은 찬연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한국의 신문사는 글자 그대로 민족의 투쟁사요, 근대사로부터 현대사를 꿰뚫는 민족 이면사이기도 하다는 평가였다. 또한 언론자유를 비롯한 출판·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부르짖는 언론 투쟁사였으며, 실로 온갖 자유와 해방과 독립의 전취 기록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 「한국 언론사 연구의 시작, 야농 최준」 중에서

이해창은 1930년대 후반에 일본에 건너가서 당시 생소했던 신문학을 전공하고, 1940년대에는 신문사 기자 생활을 통해서 학문적 이론을 실제로 경험하는 한편, 학문의 이론과 현실적 실무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와 문제점을 연구 대상으로 하면서 해방 후 처음으로 신문에 관한 전문지『신문평론(新聞評論)』을 발간했다. 그는 1950년대에 우리나라 대학에서 처음으로 신문학 과목을 개설, 강의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이래 이화여자대학교에 신문학과를 창설, 대학에서 언론학 전공의 위치를 다져 놓는데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 “왜 당신은 신문학을 전공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언제나 “신문학 이외에는 하고 싶은 과목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 「신문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 우범 이해창」 중에서

다른 대학들의 언론 관련 학과들은 거의 ‘신문방송학과’라는 명칭을 붙였으나, 서울대학교는 ‘신문학과’라는 종래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것도 희관의 고집(?) 때문이었다. 학과 명칭을 ‘신문방송학과’라고 하면, 종래의 신문학의 연구·교육대상을 확대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신문과 방송에 관한 학문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학”은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출판 잡지 광고 홍보 선전 연극 영화 그리고 대인 커뮤니케이션 등 인간사회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그 연구, 교육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희관이 타계하신지도 올해로 벌써 40년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에 대한 사모의 정이 더욱 애틋해지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그건 나도 점차 늙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생전에 나를 아껴주셨기 때문일까? --- 「한 눈 팔지 말고 공부나 하시게, 희관 임근수」 중에서

1947년 남한에 정착한 직후 정충량은 종부의 옷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발판 삼아 과감한 도전을 한다. 가정주부에서 언론인으로의 파격적인 신분 변화는 그의 태생적 성향과 성장 과정으로 미루어 그렇게 돌연한 것은 아니었다. … 60년대 언론인 정충량에게 집중되다시피 한 이와 같은 국제사회 활동은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 냉전 시대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6.25 전쟁을 겪은 후 여성의 사회 진출과 전문화라는 시대적 명제가 막 새 순을 싹틔우려 하고 있던 즈음에 우연과 필연을 동반한 한국의 대표주자 여성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업이었다. 그리고 정충량은 그 책무를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개화기의 쓰개치마를 벗은 한국 여성들이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다고 하겠다.
--- 「전환 시대 여성 언론인이 걸어온 길, 정충량’ 중에서

하늘 같은 대선배와 이제 첫 발을 떼는 조건부 방송원보(放送員補) 사이라 노정팔은 나를 기억할 수 없었겠지만, “공부하라, 방송을 공부하라”라는 그의 훈화가 지금도 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노정팔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15년여 후인 1988년, 그가 KBS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나는 “진정한 방송인은 높은 창작 의욕과 심오한 사고력, 성실성을 갖춰야 한다”라는 그의 신념을 내 방송 인생의 이정표로 삼고, 지평을 넓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가 공적, 사적 생활에서 지극히 검소하고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음은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청렴한 공직 생활이 몸에 밴 터라, 그는 1950년대 KBS 사원 조합에서 AID 자금으로 마련한 국민주택으로 입주한 세검정 자택에서 작고하기 전까지 거주했으며, 냉난방 시설도 말년에 가서야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 「외길 50년 한국 방송계 거목, 노정팔」 중에서

박유봉 교수는 50년대에 독일에서 공부한 이론을 독일 방식대로 신문학(짜이퉁스뷔쎈샤프트
Zeitungswissenschaft) 그리고 이론의 이름이 바뀐 신문학(푸블리찌스틱Publizistik), 또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말로 번역된 공시학(公示學)을 연구하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당시로서는 선구적 역할이었다. … 박유봉 교수에겐 그가 평생 연구하고 가르친 학문 외에 기록할 만한 또 한 가지 특성이 있었다. 그가 참으로 유별난 호주가(好酒家)란 점이다. 유별나다고 쓴 것은 자신의 건강은 물론 타인에게도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그와의 술자리는 주변 모두를 즐겁게 했기 때문에 표현한 것이다. 60, 70년대에 언론현장에서 일하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나이든 대학원생들은 어쩌면 강의의 시작보다 끝나는 시간을 더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나기가 무섭게 무교동이나 광화문 뒷골목쯤으로 즉시 자리를 옮겨 낙천적이고, 호탕하고, 그리고 속이 후련해지는 뒤풀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독일 신문학 연구의 선구자, 인석 박유봉」 중에서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무엇인가? 지적 매개로 연결된 스승과 제자인지, 인간적인 관계에서 교육을 매개로 연결된 것인지, 가르침과 실천으로 인성과 품성을 보여주었던 롤모델이었던 것 같다. 그때에 교수는 학생들을 뒷바라지해주고, 보호해주는 책임감이 분명하였다. 취업관계에서 연결하였고, 함께 걱정하는 일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당시 대부분 학생들은 장용 선생님의 외모에서 풍기는 기세에 눌려 편하게 대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도 거리를 늘 유지하는 편이셨다. 흔히 속정은 있는데 겉으로는 냉엄한 분이라는 인상이었다. 장용 선생님은 학과의 미래와 과거를 연결하는데 애정을 기울이셨다. 동문회 모임은 물론 수학여행 등 학생들 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졸업생들이 초대하는 자리나 모임에도 가급적 참석하는 편이었다. 사정이 생기시면, 나에게 당부를 하여 꼭 참석하도록 부탁을 하셨다. --- 「말처럼 세로운 세상을 찾아 달린, 동호 장용」 중에서

그는 일생의 전반은 군인과 음악인으로서, 후반은 방송인과 언론학 교육자로서 활약했다. 일생의 전반을 신문인과 인쇄인(출판인)으로, 또 후반을 발명가, 외교관, 정치인으로 살았던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 KBS-TV 방송국장 시절 운전기사가 아침마다 집에 오는데 “국장님이 저의 집 보다 못 살아서 면구스럽다”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때도 그는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황기오는 자주 이사를 했다. 몇몇 제자들이 이사를 도와준 적이 있는데 모두가 셋집이었다고 한다. 또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에는 월 말에 빈 월급봉투를 들고 오면서 “우리 제자 등록금이 없어 내 월급을 다 주었어요”라고 했더니 부인이 “잘 하셨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볼 때에도 돈에 관한한 정말 대책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작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소암천 황기오」 중에서

그 뒤 박정희 정권이 유신 체제를 빙자해 장기, 영구 집권을 획책하게 되자 후석은 언론계에서 물러나 유신정권에 맞서 재야의 거물 인사로 사회참여에 앞장서는 투사가 됐다. 그는 참으로 용감한 언론계(출신)의 몇 안 되는 투사, 아니, ‘지사’로 주목받았다. … 바로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로부터 얼마 후 5.18 광주의 피바다를 거치며 집권한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 단상에 후석이 임석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그것은 아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거함 ‘타이타닉 호의 침몰’의 소식에나 비길 충격을 여러 사람에게 안겨주었다. … 김정남은 이러한 후석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분은 그 무렵 너무 지쳐 있었고 그리고 자신을 지켜나가기 힘들 만큼 가난에 쪼들리고 있었다”고 적어놓고 있다. ‘영웅들은 지쳐있던 것(L’heros sont fatigue’s)’일까? --- 「우리 시대의 언관(言官) 사관(史官), 후석 천관우」 중에서

한국 TV방송의 전설은 최창봉에서 시작된다. 최창봉을 한국 방송의 설계자며 개국 전문가라고 한다. 거의 모든 한국의 방송을 그가 개국하였기 때문이다. 1956년 HLKZ-TV 개국 연출을 맡아 한국 최초의 TV PD가 되었다. … 1971년, 정국은 어수선했다. 편파방송으로 KBS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정부는 동아방송 최창봉에게 다시 KBS를 맡겼다. 최창봉은 KBS가 정부로부터 독립하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KBS 공사안’을 정부에 내놓았다. 절대 불가능하다 했지만 그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그러나 최창봉은 또다시 KBS를 떠나야 했다. 1989년, 최창봉은 노조 문제로 복잡한 MBC의 새 사장으로 선임됐다. 갈등 속에서 ‘사실의 시대’를 선보였다. 임기를 마친 후 그는 서울대학 특임교수로 방송 강의를 맡았다. 그리고 2016년 12월 28일에 돌아가셨다. 향년 91세였다. --- 「한국 방송의 개척자, 최창봉」 중에서

남애 안춘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판학과 서지학을 일으킨 ‘책의 학자’였다. 그는 61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2만여 권이 넘는 장서를 모은 대수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열정이 배어든 열람거(洌南居, 남애의 상도동 서재)에는 언제나 풍성한 책의 도열로 넘쳤다. 그러한 ‘책의 대창고’ 안에서 오로지 책과 더불어, 그 성 안에 영어됨을 더 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인, 그야말로 ‘책 바보’로 살아간 인물이 남애 안춘근이었다. 이 때문에 고고학자 김원룡은 그런 남애를 가리켜 ‘한국 서치(書癡)의 서치’라 했고, 국내 최고의 잡지 수집가이며 연구가인 백순재는 ‘삶보다도 그 사랑보다도 책, 책을 사랑한 이’라고 평설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탐서 방법’을 경청하게 되었다. “진본이란 가지런히 정돈된 서가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지. 사실은 서점주의 금고 속에도 있긴 하나, 그보다도 더 귀한 책은 넝마나 파지더미 안에 있기 마련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럴 때 필자 의 머리를 타격하는 무엇이 있었다. --- 「출판 사랑 남애 안춘근」 중에서

김규환은 ‘공부하는 언론과 언론인이 돼야 한다’는 소신을 구현하기 위해 특유의 실천력과 추진력을 발휘하여 ‘언론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교육 기관’의 설립을 성사시켰다. 그 첫 번째 출발점으로 서울대에 신문연구소를 설립하고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한국신문연구소의 재출발을 성사시켰다. … 평소 김규환과 교분 관계가 깊었던 최종수 교수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분주한 가운데서도 ‘한국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체계적이고도 결정적인 저서’를 낼 것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1985년 7월 5일 56세라는 그렇게 많지 않은 연세에 작고했다. 그의 때 이른 타계는 그 자신을 위해서나 한국 학계를 봐서도
지극히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한국 매스컴학의 이정표를 세운, 남정 김규환’ 중에서

영원한 저널리스트’ 박권상 선생은 정작 그가 믿는 언론관을 드러내는데 어지간히 인색하다. 물론 그가 쓴 ‘자유언론’을 신봉하는 글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논객으로서 단호히 자유언론을 지키려한 그의 ‘레지스탕스적’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그 자세는 그가 창백한 서생이 아니라 ‘독립불기(獨立不覇)의 소신’(구 신문윤리강령의 표현)을 지킨 투사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가 전두환 폭력정권의 탄압 끝에 필화를 겪으면 서도 오랜 동안 끈질기게 쓴 「동아시아론」을 보면 군데군데 이를 뒷받침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 그러다가 박 선생의 언론관은 1990년대 중반부터 완전히 탈바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언론이 ‘사실’에 유념하되, ‘진실’ 탐사에 보다 매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사실 보도를 넘어서 진실 탐사로의 여정, 박권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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