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시문은 복숭아꽃 살구꽃 나의 살던 고향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고, 그렇게 4월의 시골 풍경을 1분 가량 생각하며 난간에 매달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에 그는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나무늘보는 교미를 할 때도 그렇게 동작이 느릴까 궁금했고, 내가 비록 남궁진 때문에 잘못 쫓기더라도 나 자신은 그냥 어디엔가 무사히 존재해야 하는데 나는 어디로 갔을까 생각했고, 실종된 동생을 찾으려고 나는 광고를 냈지만 남궁진은 안 냈으니까 사실은 남궁진이 내 광고 때문에 쫓기는 몸이고, 그런데도 남궁진이 내지 않은 광고 때문에 쫓기게 되자 다시 내가 쫓기는 몸이 되었고, 정시문이 낸 광고 때문에 나를 체포해야 한다면 그냥 나를 정시문이라면서 잡아가면 될 텐데 굳이 나를 남궁진이라고 우기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나를 잡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남궁진은 오래전부터 쫓긴 것이 분명한데 왜 나는 오늘 아침부터서야 쫓기게 되었는지도 시문은 알 길이 없었고, 남궁진이 나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면 내가 남궁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봤자 나한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고, 진짜로 쫓기는 자가 남궁진이 아니라면 진짜 남궁진은 나 때문에 피해자가 된 셈인데, 어쨌든 공장 사람들이 추적하는 인물이 남궁진이라면 그가 내 죄를 뒤집어쓴 채로 쫓기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그냥 어디나 아무 곳에서 자정까지만 잘 숨어 있으면 되겠다고 시문은 계산했다. 피곤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층계를 올라가면서 시문은 스티비원더가 사실은 맹인이 아닌데 여태까지 세상 사람들을 모조리 속이고 맹인 가수 노릇을 해왔노라고 양심 선언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해 보았고, 위층으로 올라간 시문은 깜짝 놀랐다. 그는 환각을 보는 듯 정신이 아찔했다. 2층은 전체가 하나의 방이었다. 그리고 연극 무대처럼 말끔하게 장식해 놓은 아래층과는 달리 이곳은 새로 지어놓기만 하고 사람이 입주하지를 않은 집처럼 썰렁했다. 가구도 전혀 들여놓지 않고, 천장에는 전등조차 달지 않아 전기 배선이 뻗어나왔다. 마룻바닥은 청소를 하지 않아 흙먼지가 쌓였고, 못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속았다는 육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지하실은 어떤가 싶어서 얼른 내려가 보았다. 그곳도 역시 공사를 마무리짓지 못한 공간 같았다. 내부 장식을 안 한 것은 물론이요, 널빤지와 흙손과 전깃줄 따위가 여기저기 제멋대로 쌓였다. 시문은 102A가 함정이라고 판단했다. 백진주의 말마따나 나는 무슨 중대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여서, 타인의 여자를 강간한 사기꾼이 되었고, 시국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천사의 함정에 빠졌으며, 이제는 그의 여자를 범했다고 남궁진까지 나를 추적할 테니, 어쩌면 백진주와 남궁진도 낙타와 한패인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우물쭈물하다가 남궁진에게 붙잡히기 전에 도망쳐야겠어서, 시문은 황급히 도망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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